덤바우 가장자리를 굽이굽이 돌아 내려가는 개울이 여전히 메마릅니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장맛비가 여러 차례 내리고 소나기도 가끔 쏟아지기도 하는 칠월 중순인데도 그렇습니다. 다른 지방은 폭우 탓에 이런저런 피해도 생겼다는데 우리 마을은 모내기를 겨우 마친 후로는 쪼그라든 저수지 물이 차오를 기색이 없습니다. 가물다고 하기에는 촉촉하지만 쓰자고 들면 물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풀만 신났어.” 아내가 고추밭 곳곳에서 일어서는 바랭이를 철천지원수처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말입니다. 바야흐로 바랭이의 계절입니다.


 아내와 김매기를 하면서 보니까 토양의 수분 상태가 무척 좋습니다. 젖지도 마르지도 않은, 갓 쪄낸 떡처럼 쫀득합니다. 


“비가 덜 오니까 좋은 일도 있네.” 곁에 있으려니 하고 아내에게 말을 거는데 앞에 있었던 아내는 훌쩍 다른 이랑으로 넘어가 있군요. 아내는 홀로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일거리를 타고 흘러간다는 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마주친 일을 쪼개 작업을 구분해 한 가지씩 하려는 제 방식과 정반대입니다. 제 기준으로 보면 아내가 일하는 방식은 좀 산만해보입니다. 이러 했다가 저거 했다가 그거 하는 식이죠. 한마디로 질정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맘때면 비닐 씌운 고추 이랑은 배를 쭉  찢어 벌립니다. 두줄심기를 하니까 그게 가능합니다. 오래전 한여름 대낮에 토양온도계로 비닐 속 온도를 재보았더니 거의 80도에 육박하는 고온이었습니다. 뿌리가 버티겠나 싶었고, 견디더라도 극도로 쇠약해질 게 예상되었습니다. 유기물로 덮어주면 좋겠는데 마땅한 꺼리도 없었고, 다 덮을 양도 안 되었습니다. 고민에 빠져있던 제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찢으면 되지.”


 “와, 콜럼버스의 달걀이네,” “꼭 그렇게 잰 체 하면서 말해야 해?” 아무리 생각해도 기막힌 비유입니다. 달걀을 세우려면 깨트려야 한다는 식의 전복적 사고를 아내는 하는 겁니다. 아내는 일찍이 고라니 방지망으로 그물을 쓰면 좋겠다는 말도 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걸 어디서 사와?” 이러고 말았거든요. 지금은 사방팔방에 그물망이 고라니 방지용으로 쳐져 있으니 아내의 선견지명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아내는 비닐의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는 고랑 가에 무성했던 풀을 베어 올려놓는 일을 반복합니다. 가끔 기운 고추를 일으켜 세우고 필요하면 미리 준비한 짧은 끈으로 묶어주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일의 맥락을 따라가며 일하는 셈입니다. 


반면 저는 따로 합니다. 그래서 일의 순서나 경중을 모른다는 말을 듣습니다. 저도 말합니다. “급한 일부터 해야지!”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도대체 손발이 안 맞아!” 제가 일을 무미건조하게 하는 것 인지도 모릅니다. 휴대폰에 담아둔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를 즐기는 것도 그 심심함을 달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네요. 음악 소리가 들리면 아내는 여지없이 끄라고 말합니다. 일의 맥락을 물처럼 타고 흐르니 리듬감도 있어 아내는 음악이 필요치 않은 것이겠죠.


 “이리 와 봐.” 쥐똥참외군요. 맛없기로 소문난, 크기도 작은 참외인데 매년 저절로 나서 자랍니다. 너무 맛이 없어 애들이 장난감으로 삼았다고 전해지는데, 저렇게 나는 걸 보는 게 우리부부의 장난이군요.


“그거 보라는 게 아니라 빨리 웃거름 좀 주라고.” 그럴 줄 알았습니다.“다 준비해뒀거든. 비닐 배나 빨리 갈라.”땀이 적은 아내인데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5월부터 계속되는 고온이라 아내나 저나 좀 지치는군요. 대낮을 피해 일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다른 농민들도 그러더군요.


 쉬는 참에 아내가 갓 피어난 해바라기를 올려다보는군요. 왜 저 꽃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아내는 우뚝 서지 않았냐고 되묻습니다. 해바라기처럼 떳떳하고 당당하게 맞서야만 하는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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