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의 현실에서 갈등분열이 초래되는 상황을 굳이 급하게 추진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법안의 순수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국회 농해수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의 농어업회의소법 관련 최근 발언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법률 심사가 무산된 농어업회의소법이 현 정부 내에 시행이 어려울 전망이다.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이자 농업분야 핵심 농정공약이었던 농어업회의소법은‘농어업인의 정책 참여’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2010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추진돼 왔다. 19, 20, 21대 국회까지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그때마다 다른 이유로 폐기되거나 시기를 놓쳐 무산됐다. 


결국, ‘그것 꼭 해야 해?’. 10년간의 시범사업 자료를 놓고, 농민단체간 찬반이 갈리고 있다.국회 농해수위 야당쪽에선 이미‘정쟁사안’으로 예고해 논 상태다. 총론은 공감하는데, 각론에서 설립 여부에 대해 의견이 나뉘는 농어업회의소. 이대로 농업회의소가 운영되면 농민단체들의‘독’이 될 것이라는 반대 주장과, 일단 ‘약’이 되니 첫 걸음부터 떼고 고쳐나가자는 옹호론에 양보의 틈이 안보인다. 농어업회의소 설립 문제는 문재인정부 농정의 마지막 그림이다. 그만큼 남은 불쏘시개를 총동원해 추진력을 키워야 한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농민단체 자체의 정체성과 연결짓는 여론도 만만찮다. 농정 분권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농업회의소가 만들어지면 협의 대상이 아니라‘행정 말단조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이 반대 논리다. 입장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만들어서 고쳐나가자”&“농정분권 없이는 관변화된다”
   2월 임시국회서 무산… 농민단체 찬반 양론으로‘정쟁사안’ 

 

“개정법률안, 정부가 다시 만들어 와라”= 2월8일 농식품부가 농어업회의소법 제정 관련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할 때만 하더라도, 의원 발의 입법제안 내용이 별 이상없이 무난하게 통과되리라 기대하는게 대세였다. 20대 국회 수정안과, 21대 국회 발의법안 4건에 대해 해당 상임위인 농해수위에서도 법안소위 상정 안건으로 심의가 예고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18일 임시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갑자기 심의안건에서 제외됐다. 3일전인 15일 가톨릭농민회, 전여농, 전농, 쌀생산자협회 등이 농업회의소 설립을 반대한다는 입장의 성명을 냈다. 


농해수위 소속 야당측 의원들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 했고, 결국 법안소위에서 배제됐다는 전언이다. 농해수위는 이후 농식품부측에, 농어업회의소 설립 건은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핵심 정책이니 만큼 정부가 입법안을 내는, 정부안 형식으로 다시 발의 과정을 진행하자고 주문한 것으로 확인했다. 22일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권을 얻어, 이에 대한 입장표명을 했다. 이 의원은“농정파트너로의 농업회의소 법제화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법안과 관련해서 농민단체의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다”면서“농민들의 대의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현장의 의견수렴도 필요하고 농민단체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갈등과 분열이 초래될 수도 있는 문제를 급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개호 농해수위원장도 이런 이유로 심사를 유보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회의 주문대로 정부안이 발의되더라도, 정쟁사안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같은 맥락에서 문재인정부 내에 법제화 과정이 요원하게 된 것이다. 

 

“지방농정 활성화, 자치농정 변화의 초석”=지난 15일 30개 농민단체 연합조직인 한국농축산연합회는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농어업회의소 설립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연합회는 “농어업회의소는 농업계의 권익을 대변하는 민간 자율기구이자 공적 대의기구로 지역과 단체, 품목 등 전체 목소리를 대변하는 법적 조직”이라며“혹여나 우려점에 대해서는 권한과 역할을 법이나 정관에 정확히 명시하고 이런 기류를 사전에 차단, 예방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선 설립하고 문제점을 고쳐나가자는 입장이다.


이들 연합회 소속 단체들은 특히 농어업회의소에 대한 지난 10여년간의 시범사업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수많은 성공사례와 실패사례 등을 축적했고, 이를 통해 한국형 회의소 모델 수립의 밑거름이 충분히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부분의 시범사업 실패 요소는 농업회의소 법제화가 미비해서 발생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지자체 역시 농업회의소의 운영 활성화와 기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을 계획해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원 라인의 단절을 절감했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성공사례로는 체계적인 농정참여 시스템 정립, 현장 농민들의 농정참여 빈도, 지자체와의 농정 파트너십 형성 등을 꼽았다.


연합회측은“향후 불투명한 10여년 후의 농업·농촌의 미래를 보다 진취적으로 변화시키는 초석이 될수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설립 추진을 위한 법제화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또한 17일 별도의 성명을 통해“정책결정의 파트너는 물론 자치농정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초석이 돼야 할 것”이라며, 치열하게 논쟁하더라도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찬성입장을 피력했다. 

 

“농정 자치분권 없이는 옥상옥과 관변화일 뿐”=전농을 비롯‘농민의길’연대 농민단체들은 현재의 상황에서‘법제화가 만사’가 될 수는 없다는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농업회의소 법제화에 앞서 법안대로 수평적 농정 파트너가 될려면, 중앙 집중된 농정에 대해 자치 분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례로 대통령 자문기구인 농특위와 정부가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중앙 집중적인 현재의 농정이 유지되는 한 지역 농업회의소는 유명무실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정부사업의 위탁 부문도 문제를 제기했다. 농협이나 기술센터, 도농업기술원, 농산물품질관리원 등의 업무와 겹치는 임무에 대해 선제적 정리작업없이 법제화를 먼저 할 경우, 농업회의소의 역할이나 존재가 어떤 위치에 있을지 뻔하다는 것이다. 실제 의원발의한 법안 내용을 보면, 회의소의 임무는 정책참여, 자문·건의, 조사·연구, 교육·훈련, 정보·자료수집·제공, 협력, 위탁업무 등으로 부여하고 있다. 이들 업무를 두고 기존 기관과‘밥그릇 싸움’이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고 있다. 


정책 참여와 관련된 예산이나 농업회의소 경비 지원 부문 또한 녹록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와 유기적인 관계여야 하는데, 정책을 놓고 예산 경쟁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예산 편성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구조에서는, 소통과 참여보다는‘관변조직’내지 ‘관변화’라는 주변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다.


여기에다 ‘농민의길’과 농해수위 야당측은, 현재 정부가 의도하는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이유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들은“법안의 순수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회의소 설립을, 특정인을 중심으로 주도적·사적 컨설팅 정책으로 가려한다”고 말하고 있다. 


농업관련 주요 관직 인사와 농업회의소 설립 정책의 연관성 의혹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정부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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