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 길 잃은 문재인농정, 초심을 묻다

코로나19 발생 1년을 견딘 농업을 대상으로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반응·대응하고 있는지, 농민단체들은 ‘불통’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정부는 소득안정과 농산물 가격안정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자평하는, 서로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편으론 마침표를 향해가고 있는 문재인농정의 가시적 결론은 존재하고 있는지, 존재하고 있다면 코로나19와 혼합된 상황에서 피부에 닿고 있는지, 이런 진단을 위한 레벨의 수위조절을 위해‘건강 체크’형식의 일문답이 필요해 보인다.

문재인농정의 색깔이 가장 순수했고, 농업·농촌·농민의 아픈 곳을 가장 잘 파악했던, 2017년 5월 대통령 후보시절 발언에 방점을 찍고, 이를 기준으로 행위의 결과 여부를 점검해 본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는 200여명에 달하는 농업전문가로 구성된 ‘농수축산 특보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서 문 후보는 “더는 이 땅에 농업이 희생산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농업평등’을 타이틀로 걸고 대권에 도전했다.

그때 내논 농정 공약의 모든 중심엔 시장불안, 소득불안, 경영불안, 재해불안이라는‘4대 불안요소’를 적시했다. 현재의 ‘탄소중립’ ‘지역균등뉴딜’ ‘디지털유통’ ‘스마트농업’ 등과 분명히 비교된다. 4대불안요소를 해소하는 방법과 도구, 열쇠 등을 총 동원한 것이 농정공약이고, 공약의 목표는 당연히 불안해소였다.

이런 정권 초기의 농업·농촌·농민‘생활 밀착형’공약에 대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농산물 개방으로 농업시장이 불안했었는데 괜찮으십니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문은 더욱 열었는데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공약에 앞서 수입개방에 휘둘리는 농산물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틀은 잡아놨는데, 안에 채운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농정이‘온실 청사진’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나 농식품부 또한 철저하리만치 개방농정에 대한 성찰이나 제어력을 갖춘 대책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2019년 WTO 농업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사태를 초래했고, 2020년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최종 서명,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검토 등 잇단 메가FTA 추진방향을 국가계획에 포함시켰다.


개도국 지위 포기는 향후 어떠한 국제 협상자리에서라도 농업과 관련된 우대조항을 내세울 수 없고, 농업수출국들과 같은 조건의 경쟁과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국제사회에서 유일하게 농업보호장치 역할이었던 보호막이 사라진 것이다.


RCEP·CPTPP는 농산물 추가개방을 의미한다. 이들의 협정문 조항에 SPS(위생과 식물위생조치)를 완화하고,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을 제한하는 조치가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농산물 양허제외를 불허한다’는 강력한 협정 내용 또한 ‘높은 수준’의 수입개방이 예고된 사안이다.


이러한 일련의 국제 이슈가 농가살림을 강타하고 있음에도 여론을 수렴하는 공청회 한번 가져본 적 없다는게 농민단체들의 불만이다. 


박근혜정부 때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개방 관련 ‘무대책’은 내부시장의 농산물 가격폭락, 채소가격안정제 예산삭감 등 정책 시스템 자체가 문란하거나 농민들과의 갈등을 발생시켰다.


농학계 한 교수는 “다국적 수입개방이 이어지면서 연쇄적이고 노골적인 가격폭락 사태가 시작됐다. 아로니아사태에서 보듯 대체작목도 이미 방법적 선택에서 실패했다. 정부가 농업과 농민을 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안정의 희생양으로 농가소득이 불안했었는데 괜찮으십니까?’ 

2018년 농가소득 4천만원이 달성되면서 정부의 단골 홍보용 소재가 됐다. 정부측에 따르면 2017년 3천824만원, 2018년 4천206만원, 2019년 4천118만원, 지난해 4천310만원 등으로 안정소득을 구가하고 있다는 것. 이를 정책의 효과라고 내세우고 있다. 주요 품목의 가격안정과 재해보험·직불금 등 농가 경영안정 지원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는게 정부의 분석이다.


농가소득은 농가가 1년간 농사를 포함해서 모든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을 일컫는다. 순수 농업소득, 농업외소득, 이전소득 등이 합쳐진 것이다. 농식품부는‘농가’라는 이유로, 농업과 관련없는 소득이 발생해도 이를 농업정책과 연관된 농가소득으로 잡고 있다.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가정경제에 부족해서 다른 일로 돈을 벌어오거나, 농민의 자식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까지 전부 농가소득으로 집계한다. 


엄밀히 따지면 농업소득과 이전소득에 국한된 분석이 필요하다. 농업정책과 직접 연관된 농업소득의 경우 27년째 1천만원 초반대에 머물러 있다. 지난 20년간 평균 물가상승률은 2.3%인데 반해 농업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향후 10년간 전망치도 연간 1.8%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되는 공익직불제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공익직불금은 이전소득으로 잡는다. 공익직불제 시행연도인 2020년 이전소득은 직불금과 코로나19 관련 지원금을 합쳐 2019년보다 17.5% 많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소득안정대책인 농업소득 안정대책은 아니다. 공익직불금 또한 당분간 늘어날 것 같지 않다. 농민들의 경제적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농자재값 상승으로 농가 경영이 불안했었는데 괜찮으십니까?’ 

생산단가가 안맞는다. 2018년, 2019년 배추, 무, 양파, 대파 등의 농산물이 40%이상 가격폭락을 겪으면서 아예 밭에서 산지폐기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천편일률적인 수급대책 ‘산지폐기’. 일선 농민들은“그나마 현정권은 산지폐기를 선제적으로‘일찍’해서 다행”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다.


최근 농업전망에서 밝혀진 2020년 농업교역조건을 보면, 지난해보다 농약비 22.8%, 비료비 7.3%, 영농자재비 5.0%, 종자·종묘비가 2.9% 각각 뛰었다. 여기에 노임과 임차료가 전년보다 3.2%, 2.6% 상승했다. 사료값도 3.9%, 가축구입비는 2.4% 올랐다. 국제유가가 하향안정세를 유지했던 2020년도가 그랬다는 얘기다.


헌데 한육우, 고추, 딸기 등 생산물은 전반적 하락세를 보였다. 곡물류가 쌀값 상승의 이유로 전년대비 1.9%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청과물이나 축산물은 흉작과 구제역·AI·아프리카돼지열병 등으로 피해 주인공이 됐다. 여기에다 올해 또한 청과물, 축산물 등은 생산량 증가라는 이유로 가격하락이 불보듯 하다는 관측이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투입되는 농자재값은 전반적인 상승세가 점쳐진다. 국제유가, 국제곡물가 등의 상승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AI·구제역 등 각종 재해로 불안했었는데 괜찮으십니까?’

기후변화가 빈번한 상황도 고스란히 농가피해만 누적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2017년 이상고온과 폭염으로 가축 500만마리 이상 피해가 발생했고, 다음해인 2018년 7~8월 전국적 폭염으로 과수 일소피해 및 농작물 피해 2만2천500ha, 가축폐사 908만마리 등이 기록됐다. 2019년에는 역대 최대 많은 태풍, 다나스·링링·타파·미탁에 의한 농작물 침수 농경지 유실·매몰 등이 발생했다.

지난해는 사상 유례없는 장마와 홍수, 냉해, 9월 태풍‘마이삭’까지, ‘총체적 농업 붕괴 사태’를 가져왔다. 1조371억 상당의 피해를 가져온 집중호우는, 복구비용만 3조4천억원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농업분야에서 재해지원과 재해보험은 현실적인 다양한 문제를 낳았다. 구호차원의 재난지원금과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따른 농작물재해보험. 농작물은 농업재해 조사대상으로는 포함되지만 특별재난구역 선포 기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돼도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된 농가는 정부 재해지원금 대상이 안됐다. 빈번히 발생하는 ‘재해 사각지대’가 여실히 드러난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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