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석

국립농업과학원 기획조정과장

 

 

신체가 백 냥이면 눈은 90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소리이다. 실제로 우리가 인지하는 감각의 3분의 2는 눈을 통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성이 차는 인류의 습성은 과학의 발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우주로 쏘아 올리는 탐사선도, 생명의 비밀을 담은 유전자 지도도, 우리 몸을 꿰뚫어 보는 CT나 MRI도 결국은 보이지 않던 부분을 보이는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룬 성과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미생물 분야도 포함된다.


미생물이란 너무 작아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을 뜻한다. 원생생물, 진균, 세균, 바이러스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미생물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아도 집단의 덩치는 매우 거대하다. 지구 생명체 다양성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인류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생물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물은 곤충이었다. 돌림병은 나쁜 공기 또는 하늘의 노여움 때문이었으며, 발효 잘 된 빵은 부패한 것으로 간주해 신에게 제물로 바치지도 못했다.


지난 1674년 네덜란드의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관찰한 미생물의 존재를 알리면서 비로소 인류의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게 됐다. 최근에는 모래 알갱이 하나에 무려 1만 개에서 10만 개의 미생물이 서식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사람 몸속에 사는 미생물의 수가 인체 전체 세포의 수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이 정도면 밀접한 정도를 뛰어넘어 미생물과 잘 뒤섞여 함께 살아가는 것 아닐까.


미생물은 농업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식물의 병을 억제하거나 방제하기 위한 친환경 미생물제를 비롯해 파밤나방과 같은 해충을 없애기 위한 미생물 살충제, 염류나 고온 등 작물 환경장해와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미생물 등은 이미 농업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술들이다. 최근에는 축산분뇨를 활용한 미생물 연료전지 기반 기술과 음식물 쓰레기에 미생물을 섞어 천연비료를 만드는 기술, 미생물을 이용해 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줄이는 기술 등이 개발되면서 관련 분야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올해, 농촌진흥청에서 폐플라스틱과 화학농약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미생물을 선발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환경개선미생물연구단이라는 벤처형 조직을 신설했다. 기존에 보고된 미생물보다 분해 속도가 뛰어난 미생물을 발굴하고, 이를 개량해 실용화 가능한 플라스틱, 잔류농약 분해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지구 전체 역사를 1년이라고 가정하면 인류는 12월 31일 밤 11시 30분에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미생물은 무려 3월에 등장한, 까마득한 선배 생물이다. 그들의 존재를 정확히 인지한 것도 300년 남짓 됐으니,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인류와 미생물은 초면에 가깝다.


인류가 알고 있는 미생물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미생물이 훨씬 많을 것이며,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미생물이 우리와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손을 뻗어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