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표선농업협동조합 고철민 조합장

최근 제주 서귀포의 한 농업인이 표선농협 고철민 조합장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표선면에서 농사짓는 사람 중에, 그것도 젊은 사람 중에 이만한 농사꾼도, 조합장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최연소 농협이사‘신지식인 지정자’‘한라산 자생난 증식기술 특허’‘몰래 농사짓는 조합장’등 수식어를 쏟아냈다.

어떤 조합장인지 궁금하면서도, 마지못해 만나보는 냥 짐짓 귀찮은 티를 내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고 조합장을 만났다. 작은 키의 검게 그을린 얼굴, 부리부리한 눈의 강렬한 눈빛, 딱부러지는 말투에서 느껴지는‘군바리’(군인) 냄새 등등 첫 눈에 느낌은 보통의 조합장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그만큼 생각도 남다를까? 표선농협 사업성과에 대한 이야기 보다 조합장의 지난 이력과 남다른 신념에 대한 궁금증 해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됐다.

 

   농협 주인은 조합원 아닌 직원?
“그래야 수익 내서 이익 나눠줘”

2015년 취임할 당시 표선농협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13년 적자가 2년 연속 누적돼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물론 조합원들에게‘신뢰받지 못하는 조합’으로 낙인 찍혔다. 고 조합장은 취임 일성으로“반드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은 물론 표선농협을 제주 제1의 농협으로 탈바꿈시켜 놓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고 조합장은 하나로마트, 농협주유소, 보험사업 등 조합내 모든 사업장을 독립회계로 전환하고 책임경영토록 했다. 그러면서 매일같이 사업장을 돌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아니‘닦달했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사업장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말단직원에게 현장실무와 어려운 점을 물어가며 해결방법을 고민했고 끝내 업무성과를 높일 수 있는 개선방안을 찾아 적용시켰다.


“표선농협의 주인은 조합원이 아니라 직원이다. 주인인 직원이 벌지 않으면 조합원이 손해를 본다.”
농협의 정체성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크게 어긋나는 말이다. 하지만 조합에 돈이 있어야 조합원에게 이익을 돌려준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고 조합장은“신용사업과 각종 수익사업에서 이익을 내서 경제사업과 지도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조합의 진정한 업무라고 보면 직원은 어떻게든 수익을 내야 한다”며 농협직원들의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특히“단순히‘얼굴마담’이나 하려고 조합장이 되지 않았다. 내실없는 조합장은 조합장이 아니다라고 생각했고 조합원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천혜향’농사를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고 강권하고, 수익을 내라, 성과를 내라 닦달하면서 정작 자기 일은 제대로 못하게 되면 시쳇말로‘꼰대’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물론이고 조합원에게‘농사 못 짓는 조합장’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출근하기 전, 새벽 5시부터 농사일을 했고, 퇴근 후에는 곧바로 농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마치‘결벽증’에 가까운 조합장의 이런 성정은 원예학을 전공했던 대학생 시절부터 드러났다. 대학에서 ROTC학군단 생활을 하던 2학년 무렵 한라산에 자생하는 ‘한난’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이것을 증식해서 사업을 하면‘대박’이 날 것이란‘촉’이 와서 실험실에 파묻혀 실험에 몰두했다. 그 흔한 미팅 한 번 하지 않고 틈만 나면 한라산을 돌아다녔다는 것. 해병대 장교생활로 잠시 중단되긴 했지만 군복무 후 농협‘영농지도사’로 입사하면서 다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한난’증식기술 개발에 성공해 특허를 받았고 전국 독점판매까지 일궈낼 정도로 사업이 크게 성공했다. 이런 성과가 높이 평가돼 정부가 인정하는‘신지식’으로 지정되는 영광도 안았고, 나이 서른일곱이던 2001년 농협 사상 최연소 이사에 오른데 이어 2013년 감사직을 거쳐, 마흔아홉 이던 2015년 조합장에 당선됐다.


“경험상, 살면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제는 조합원과 직원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을 찾는다면 정말 크게 성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억세디 억센 농사꾼들 사이에서 나이 어린 조합장이 주눅이 들 법도 하지만 업무에 있어선 평소 소신을 강하게 밀어부쳤다. 또 직원들의 업무여건이 개선되니 자연스럽게 각 사업장에서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고, 덕분에 표선농협 조합장 5년 동안 꽤 많은 일을 해냈다.


우선 5년 전 적자상황을 한 해만에 흑자로 돌려 세웠고, 이후 1년만에 7억원, 이듬해 20억원, 지난해 30억원 순수익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신용사업, 일반사업, 경제사업 등 모든 분야를 합산한 당기순수익이 27억5천여 만원에 달했다. 전년에 비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전형적인 면단위 농협에서, 특히 금융사업 점유률이 높은 제주내 농협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순이익을 남긴 것은 이례적이다. 덕분에 지난해 출자배당과 이용고배당 등을 통해 14억원 가까운 금액이 조합원에게 돌아갔다.

 

엄격한 품질의‘명품감귤’명성 쌓아

이런 성과의 바탕에는 공선출하사업, 농작물재해보험료 지원 등 경제사업과 지도사업이 있었다. 잘 지은 농산물은 책임지고 팔아주어 가격을 보장해주고, 혹여 재해를 입을 것을 대비해 보험가입을 권유하고 보험료까지 지원해 주니 조합원들은 물론 일반 농업인과 소비자, 관내 상인들까지도 농협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 덕분이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다. 공선출하사업의 경우 처음 1~2년은 아무도 안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가 적자에 허덕이던 상황에서도 16억원에 달하는 비파괴선별기를 새로 설치하고 자체 품질등급을 마련해 고품질 농산물 계통출하를 유도했고 좋은 품질의 농산물은 반드시 제값을 받고 팔아 정산해 주었다.


“제값을 받아준데도 좋은 물건은 상인한테 넘기고 꼭 나쁜 것만 농협에 출하했다. 하지만 명품 기준에 맞는 감귤이 단 1%만 나와도 기준 변동이나 속박이 없이 팔고 제값을 정산해주니 소비자는 물론 조합원들도 진가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감귤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명품, 프리미엄, 특, 상, 보통 등 5개 품질등급을 반드시 지키도록 출하를 유도한 결과, 지금은‘명품감귤’하면 표선농협 감귤을 꼽을 정도로 시장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또‘농사만 지으면 표선농협이 반드시 팔아준다’는 인식도 생겼고, 적자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APC도 비파괴선별기 이용률이 높아져 흑자로 돌아선지 오래, 지금은 확대 이전할 계획을 세워야 할 정도로 활성화됐다.


특히 조합원 대상으로 농작물재해보험의 자부담 보험료를 최고 30%까지 지원해주면서 보험가입이 크게 증가했다. 5년전 45가구에 불과했던 것이 올해 상반기에만 555가구로 15배나 늘었다. 표선농협은 바람이 많은 제주특성을 감안해 원예시설 보험의 경우 자부담금의 30%를, 과수나 밭작물은 10%을 지원해주고 있다. 현재 고 조합장은 강원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재배규모를 자랑하는 ‘표선더덕’의 명품화와 생산·판매 확대를 위해 신규 보험대상 지정을 정부와 농협에 요청하고 있다.

 

“신사업 발굴·확대에 최선 다할 것”

제주 표선지역은 주로 감귤, 겨울무, 당근, 감자, 더덕, 대두, 화훼 등 재배된다. 제주지역에서 재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작목이 재배되는데 사실상 이렇다 할 주작목이 없다. 하지만 고 조합장은 그만큼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라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농협으로 발돋음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한다.

“어려워도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달달한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앞으로도 표선농협 모든 임직원들은 농협의 수익이 곧 조합원과 농업인, 고객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신념으로 신규 사업을 발굴하고 확대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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