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주로 스페인 특산 햄 제품‘하몽’을 만드는 데 활용되는 이베리코 돼지고기는 숲에 방목해서 도토리와 올리브를 먹고 자란다는 지역 문화 특색이 알려지면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베리코 돼지에 맞설 흑돼지가 있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고유 품종 재래돼지다. 재래돼지는 한국종축개량협회의 심사를 통해 재래종 혈통으로 등록된 돼지나 그 후대를 말하며 대부분의 재래돼지는 정부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재래돼지는 육질이 우수하지만 성장이 매우 느리고 새끼수가 적기 때문에 일반농가가 사육하기에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재래돼지 순종 자체보다는 다른 품종과 교잡한 흑돼지 고기가 시장에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베리코 돼지 또한 비슷하다. 스페인 역시 같은 이유로 이베리코 순종 자체보다는 교잡한 돼지를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페인의 이베리코 시장과 우리나라 재래돼지 시장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필자는 관리 체계라고 말하고 싶다. 이베리코 돼지는‘베요타(Bellota)’,‘세보 데 캄포(Cebo de Campo)’등의 등급이 나눠져 관리된다. 등급마다 사육방식, 품종비율 등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소비자가 등급마다 고기 맛의 뚜렷한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소비자에게 이 고기가 어떤 점이 다르게 생산됐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재래돼지 관련 흑돼지 역시 이러한 정보를 포함하는 관리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국내 유전자원 보존을 위해 2015년 축산법 내 토종가축 인정제도를 도입했다.
토종가축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 기반은 조성되었지만 토종돼지의 경우에는 재래종 순종 기준으로만 정의돼 있어 실제로 시장에 활용되는 재래종 기반 신품종 흑돼지는 토종돼지 관리 밖에 있다.


돼지에서 품종 개발 과정을 보면 시장성을 갖기 위해 여러 품종과 교잡하고 오랜 시간동안 별도로 관리하고 유지해 그 특징을 기반으로 고정된 돼지를 하나의 품종으로 정의해왔다.


영국의 요크셔 품종이 대표적인 예다. 요크셔 돼지는 영국 요크셔 주의 재래종과 다른 품종을 교배해 만든 개량 품종으로 요크셔 협회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전 세계 돼지고기 생산체계의 필수 품종이 됐다.


새로운 토종품종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국가적 관리 기반에서 시장을 형성하고 특색에 맞게 토종품종을 꾸준히 개량해야 한다. 즉 토종돼지를 재래종 순종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토종돼지 인정 범위를 개선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범위에서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우선적으로 재래돼지를 기반으로 개발한 흑돼지를 토종돼지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반을 마련하게 되면 토종돼지별 사육지역, 사육기준, 유전적 특징, 토종축산물 표시의 의미 등 다양한 정보를 더해 우리만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것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방문하게 되면 돼지고기 구이요리를 맛보고 간다고 한다. 산업적 활용도를 높인 우리 토종돼지와 우리나라의 식문화와 결합한다면 k-흑돼지 열풍도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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