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는 터무니없는 얘기…수리시설은 농민이 만든, 농민의 것”

김인식 한국농어촌공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3월 부임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농어촌비서관과 농촌진흥청장을 지낸 김인식 사장은 10년을 절치부심, 몸과 마음, 건강과 의지를 추슬러 농업·농촌을 위한 ‘농민운동 전선’에 복귀했다. 그는 청년기에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농민단체, 축산단체, 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등을 지내며 수세폐지, 마사회의 농림부 환원 같은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제몫을 다했다.


일생을 농업·농촌과 함께해온 김인식 사장은 현안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해박하다. 농업생산기반, 농지은행, 농업용수와 통합물관리, 농어촌개발 등 농어촌공사 고유사업은 물론 전체 한국농업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서도 ‘꼭지점’에 있기 십상이다. 농업현장을 늘 강조하고, 농민단체와의 소통과 협력에도 스스럼이 없다. 그래서인지 많은 단체장들이 농어촌공사에 응원의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김인식 사장은 근래 논란이 된 농업용수 사용료, 이른바 수세에 대해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펄쩍 뛰었다. 사오십 년 전 정부의 지원이 일부 있었지만 저수지 등 수리시설 대부분은 농민들이 부역하며 피땀으로 일군 것인데, 감히 주인에게 수세를 받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코로나19 탓에, 취임1돌을 맞이한 김인식 사장을 뒤늦게 만났다.

 

 


지난해 3월 취임 후 계속해서 현장경영을 강조했다. 농어촌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 문제도 현장에 있고 답도 현장에 있다. 돌이켜보면, 큰 가뭄은 없었지만 국지적 가뭄이 발생했고, 태풍이 일곱 차례나 닥쳤다. 기후변화에도 안전한 농어촌을 만드는 것이 절실한 과제임을 실감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 포기, 공익직불제 도입 등 농정 환경이 급변한 시기이기도 했다. 지난해 6월 ‘행복 농어촌 프로젝트 하이파이브’ 선포식을 전국 농어민단체장들과 함께 국민 앞에서 공표했다. 다부진 각오로 임하고 있다.

 

모내기 등 본격적인 영농기에 접어들었다. 농업용수 확보 상황과 대책은 어떤가?
= 깨끗한 농업용수를 확보해 농업인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이 공사의 주요임무 중 하나다. 현재 전국 평균 저수율인 88%로 평년의 111%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국지적 가뭄과 호우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농어촌용수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공사는 항구적 수자원 확보를 위해 지역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물관리를 추진하고 있다. 가뭄 상습지역에 저수지, 양수장 같은 수리시설을 설치하는 ‘다목적 농촌용수개발사업’을 60개 지구에서 진행하고, 농업용수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농촌용수 이용체계 재편사업’도 9개 지구에서 시행중이다. ‘제주농업용수 통합광역화사업’도 맞춤형 물관리의 일환이다.

 

지난해 쌀 소비량이 역대 최저로 떨어지는 등 소비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응책이나 효과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9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9.2킬로그램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1인 가구 증가와 서구화된 식생활로 쌀 소비감소 추세를 지속될 것으로 본다.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논에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할 수 있어야 한다.

농지 보전, 쌀값 안정, 소득 증대, 식량자급률까지 높이는 효과가 있다. 공사는 논에서 타작물 재배가 가능토록 하는 ‘농지범용화사업’을 시범 추진하고 있다.

경북 상주 한들지구에서 2016년부터 3년간 시범사업을 벌여 현재 성과분석 중에 있고, 올해 신규로 전북 김제, 충북 음성, 경남 함안, 강원 횡성 네 곳에서 시범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공공임대용 비축농지를 빌린 농가에게 5년의 계약기간동안 타작물 재배를 의무화하고, 임대료를 80% 감면해주고 있다.


농지은행 예산이 올해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그간 다양한 농지활용을 강조해왔다. 농지 확보와 이용 측면에서 제도개선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농지은행은 고령이나 은퇴농가, 도시민의 소유 농지 등을 확보해서 청년농이나 전업농 등에게 제공하는 사업이다. 연간사업비가 지난해 9천682억원에서 올해 1조1천473억원으로 늘었다.

맞춤형농지지원사업에 6천460억, 경영회생지원에 2천800억, 농지연금에 1천479억원이 책정됐다. 알다시피, 농업인의 영농정착과 경쟁력 강화, 노후생활 안정을 돕고자 2018년부터 ‘생애주기별 맞춤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진입, 성장, 전업, 은퇴 단계를 말한다. 충분한 농지 확보를 위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농업인뿐 아니라 비농업인의 농지도 매입해 임대할 수 있도록 하고, 소유주가 있는 농지를 농업인에게 연결해주는 수탁사업은 농지 1천 제곱미터 최소면적 제한을 폐지하는 등 시행령 개정이 추진중이다. 이와 함께 임차인 선정 시 기존 농업인과의 임차관계를 인정해 공고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지침을 바꾸고 있다.

 

농업인 노령화, 농촌 공동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젊은 농업인 유입이 절실한데, 공사는 어떤 유인책을 준비하고 있나?
= 농촌의 후계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경제력이 부족한 청년이 농업에 뛰어들 때 가장 큰 진입장벽이 바로 농지다. 도전하고 싶어도 농지가 없으면 영농이 불가능하다. 공사는 청년농이 농지를 확보해 영농을 시작하고, 이후 전업농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별 맞춤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임대용 농지를 매입해 장기임대해주거나 연 1%의 저리로 매매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청년농업인 2만4천674명에게 총 2만3천755헥타르 농지를 지원했다. 이는 해당기간 농지은행 전체 지원면적의 21% 수준이다. 공사는 우리 농업의 미래인 청년농이 굳건히 자리잡고 성장해가도록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통합물관리정책 시행으로 농업용수 수리권과 수세 부과 논란이 일고 있다.
= 국가 수자원 중 농업용수 비중이 약 41%에 달하다 보니 논란이 생긴다. 농업용수 수리권은 기존 사용자들이 농업용수를 농사나 생활에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과거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서도 농업인들의 수리권은 보장받아왔다.

농업용수 사용료 부과는 큰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농업용 저수지가 과거 농업인들의 자부담으로 축조됐기 때문에 수세 부과는 터무니없다고 본다. 오히려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사안이다. 과거 사용료로 거둔 수리조합비 징수액은 300억 수준으로 전체 유지관리비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행정, 인력 등 사용료 부과업무 투입비용은 크게 발생할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다.

특히 사오십 년 전 많은 저수지들이 국가보조금과 수혜지역 농업인들의 자부담으로 만들어진 점을 감안하면 수세는 말도 안 된다. 공사는 앞으로도 농업용수 수리관과 사용료 부과 논란에 대해 적극 대응할 것이다.

 

공사의 해외사업 역사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해외농업개발사업은 성장가능성이 큰데 안타깝게도 계속 적자를 봐왔다. 재작년에 81억원 적자였다. 작년에 부임해서 적자 축소를 위해 애썼다. 한 27억원으로 줄였다. 올해는 2억원까지 적자를 줄이고, 내년에는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본다. 사실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생색은 정부가 내고 공사가 적자를 떠안고 오는 구조였다. 이것을 바꿨다. 올해 1월 공사법 개정으로 폭넓은 해외사업 참여가 가능해졌다. 2월에는 미얀마 정부가 발주한 ‘미얀마 관개시스템 현대화사업’을 수주했다.

지반침하가 심각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경우 대체지 개발과 맞물려 서부지역 관개시설 개선사업이 추진되는데, 새만금간척사업의 경험과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가 미국과 네덜란드를 압도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지하수 관개사업 설계와 시공감리 컨설팅사업 입찰 제안서도 작성하고 있다.

설계와 건설사업관리 능력을 동시에 보유한 공사의 강점을 바탕으로 우수 민간기업과 해외에 동반진출하는 모양새다.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사막에서의 벼 재배 건은 농촌진흥청이 소프트웨어를, 공사가 하드웨어를 담당해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지방소멸, 농촌마을 붕괴 등이 걱정된다. 농촌개발사업의 방점을 어디에 두고 있나?
= 인구감소, 고령화 가속으로 지방소멸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나마 최근 귀농,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면서 농촌공동체 유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사는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취약지역생활여건개조사업’, ‘어촌뉴딜300사업’ 등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안전하고 쾌적한 정주여건 마련과 주민소득 창출을 위해서다. 올해 2월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KRC 지역개발센터’를 9개도 지역본부별로 신설했다. 이 센터들은 지역개발사업 대상지 발굴부터 운영활성화방안까지 농어촌 지역발전의 마중물이 되도록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 공사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 농어촌공사는 무엇보다 농어촌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노후한 수리시설 정비에도 힘쓸 것이다.

가뭄에도 걱정 없는 항구적 수자원 개발과 지역별 맞춤형 물관리, 작업현장의 안전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 농업인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사가 되도록 체질을 개선하겠다.

특히, 우리 공사의 모든 사업성과가 농업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주요정책 결정에 농업인의 참여를 확대하고, 현장중심의 경영체계를 완성해나갈 계획이다. 안전, 희망, 미래, 상생, 현장경영으로 농어촌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농어업인을 행복하게 하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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