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 농업의 다원적 기능 확산 위해 적극 나서야”

농민 5% 시대… 도시민과 연대위해 친환경 도시농업 활성화 필요

 

이세용 감사는 1948년 인천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농사꾼이다. 꿈많던 17살에 처음 삽자루를 잡기 시작해 50년 훌쩍 지난 현재까지 그의 직업은 농민이고, 4-H 활동에서부터 시작된 농촌운동가로서의 인생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농촌지도자인천광역시 회장과 중앙회 이사 등을 역임하고 2018년부터는 중앙연합회 감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간 날은 유난히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찬바람이 숭숭 들이치는 비닐하우스 농막은 추웠지만 그와 나눈 얘기는 따뜻했다.

 

 

도시화에 밀려 타지에서 농사짓지만 즐겁게 일해

 

인천 토박이 농사꾼이라고 알고 있는데, 농장은 김포시에 있다.
태어나서 평생을 살고 있는 인천 연수구에서 여기 김포시 농장까지 차로 30분 걸린다. 1980년대 중반까지 농촌마을이었던 연수구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농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곽지역으로 옮겨 농사를 지었지만 그마저 없어지는 바람에 더이상 농토를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김포까지 와서 농사를 짓게 됐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고, 지금도 사지육신 멀쩡한데 놀고 있을 수 없어서 불편한걸 참고 견디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아내가 힘들까 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예전처럼 많은 농사를 짓지는 못하지만 즐거운 맘으로 일을 하고 있다.

 

도시개발이 되면서 땅값이 많이 올라 제법 큰 돈도 벌었겠다.
연수구가 개발되면서 유혹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당시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대충 가건물을 짓고 딱지(분양권)를 받는 일이 흔했다.


대토를 명목으로 땅투기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주변을 둘러보면 한몫 잡을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농촌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처럼 땅을 가지고 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농촌지도자라면 농사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고.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지도자로서의 긍지를 지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느타리 재배 성공 자신감, 인생 전환점 돼

 

만년 초대회장이라는 별명이 있던데.
주변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1970년대 중반에 인천에서 처음으로 느타리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당시 느타리버섯 값이 워낙 좋을 때여서 젊은 나이에 돈도 제법 벌었다. KBS 방송에서 하던 ‘앞서가는 농어촌’이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올 만큼 나름 얼굴도 알려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작목반도 만들고, 청년회도 만들고, 향우회다 친목회다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많은 조직을 만들고 초대 회장을 맡다보니 그런 별명이 생겼다. 나중에 포자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버섯 재배는 그만뒀지만, 버섯 농사 성공 경험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 앞에도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게 됐고, 모든 일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반을 그때 다 만들었던 것 같다.

 

 

태안봉사활동  계기  환경공학  전공,  만학의  꿈  키워

인천전문대 환경화학과 졸업이라는 이력도 특이하다. 요즘이야 환경이 대세지만 옛날에는 관심이 적은 분야였다.


졸업년도를 정확히 적어야하는 이력서를 낸 적이 없다보니까 가끔 수십년 전에 환경공학을 전공한 걸로 오해하고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내가 무슨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처럼 띄워주는 사람도 있다.(웃음) 사실은 2008년, 환갑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는 2006년에 야간 과정에 입학해 졸업까지 했다. 어려서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했었다.


농사를 짓고 살다보니 학력에 대해서는 불편한 걸 못 느꼈었는데, 이상하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공부에 대한 미련이 생기더라. 대학 진학 때 환경공학과를 선택한 것은 태안 기름누출 사고 영향이 컸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수십 차례 기름제거 활동을 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기왕 대학을 가는 거 의미있는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별 필요 없는 졸업장이지만, 낮에 농사짓고 밤에 공부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는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인생이란게 그런거 아닌가. 나이 70이 넘었지만 지금도 난 축구를 좋아하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지도자회 활동도 즐겁게 한다. 좋아하는 거, 하고싶은 거 하면서 사는데 농사꾼보다 좋은 직업은 없는 것 같다.

 


농업을 통해 많은 것 받아, 봉사활동 통해 사회환원

 

농촌지도자 활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농림부장관상, 국무총리상, 산업포장 등 많은 상을 받았다. 2007년에 받은 행정자치부 장관상은 어떻게 받게 됐나.
지도자회의 정신이 뭔가? 우애, 봉사, 창조다. 특히 봉사 정신은 우리 농촌지도자회가 가장 자랑하는 덕목이다.


농업을 통해 내가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에 연수구 자원봉사센터 소장을 맡아 4년간 일했다. 당시만 해도 지역사회 봉사활동 대부분은 관 주도로 실시됐다. 그러다보니 지역 주민들보다는 기관장 일정에 맞춰서 봉사활동 계획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적을 수밖에. 소장을 맡은 후에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간도 주민이 참여하기 편하게 배정했다. 자연스럽게 봉사활동 참여하는 주민수가 급증했다. 4년 동안 거의 열배 가량 증가한 것 같다. 행정자치부장관 상은 자원봉사 활동 공로로 받았다.


중앙회 회계·사무 기틀 잡아 감사로 보람 느껴

중앙연합회 감사를 맡은 지 3년째다. 직접 감사를 진행하면서 많은 걸 느꼈을 것 같다.


2018년부터 박대조, 홍영표 감사와 함께 중앙연합회와 농업인신문사에 대한 감사를 매년 하고 있다.


운좋게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능력을 갖춘 분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첫 해 감사를 하면서 느낀 건, 70년 역사를 가진 중앙연합회의 업무 체계에 너무 허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업을 추진한 결과는 있는데, 그 사업을 추진하게된 이유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기록이 허술했다. 회계장부 관리나 지출결의서 등 일반 회사라면 당연히 갖춰야할 각종 서류부터 회계 장부 작성법, 주요 문서 보관 상태 등 중앙연합회의 위상과 사업규모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다. 보통 감사하면 잘못한 것을 적발해서 따끔하게 혼내는 것만 생각하는데, 두 분 감사님들과 협의한 후 미흡한 것을 보완토록 하는 지도감사에 치중하기로 했었다. 다행히 중앙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올 초에는 감사를 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문제점들을 개선한 점에 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할 정도였다. 현재 중앙연합회는 큰 시련을 겪고 있다. 다행히 원종성부회장께서 직무대행을 맡아 중앙회를 잘 이끌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회원 모두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연합회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농업 지키기 위해 도시농업 확산에 일조

인천이라는 지역적 특색 때문인지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농업이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식의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이제 좀 줄일 필요가 있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이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해 우리 농업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몇 년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농업의 중요성과 친환경 농업의 필요성,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지금 농민 숫자는 전 국민의 5%도 안된다.

옛날에는 농민들이 여의도에서 데모를 한다고 하면 온 나라가 떠들썩 했지만, 지금은 언론보도 조차 잘 안된다. 난 우리농업을 지키고 농민이 잘 살기 위해서라도 도시민과의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시텃밭에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들과 함께 흙놀이를 하고,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이 자라날 미래를 위해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농업이 환경을 지키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작은 시냇물이 모여 큰 강이 되는 것처럼 우리 지도자 회원들이 앞장서서 농업의 다원적기능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때 우리 농업의 위상이 지금 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끝으로 지도자 회원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우리 회원들 귀에 거슬리는 얘길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제는 시,군,구 각급 지도자회가 자립 기반을 만드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정부 지원만 쳐다보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내년부터는 정부가 단체에 지원하던 각종 보조금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질 거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지도자회의 자립기반을 조성하는 일에 회원 모두가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 일선 시,군 임원진 입장에서는 막막한 얘길수도 있지만 방법은 찾아보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욕먹을 일 없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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