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은 재 너머 웅숭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뚝한 산마루가 없는 대신 가파른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두른, 평평한 산간분지입니다. 먼 뒷산에서 발원하는 개울이 양 갈래로 흘러내려 마을도 그 물길 따라 자연스럽게 두 덩어리로 나뉘었습니다. 두 물길 사이의 낮은 언덕에도 옹기종기 사람들이 삽니다. 개울에 난 마을은 물이 가는 길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양인데, 언덕마을의 집들은 뭉쳐있습니다. 논과 밭도 개울가 마을 주변보다 훨씬 높습니다.


 예로부터 마을 이름 끝에는 지형을 의미하는 일종의 접미사를 붙였습니다. 우리 마을처럼 개울을 따라 나란히 촌락이 형성된 곳에는 이름 끝에 ‘실’이라고 토를 달았습니다. 그와 달리 집들이 한군데 뭉쳐 이룬 곳에는 이름 끝에‘골’을 붙였습니다. 저 사는 고장에는 유난히 실로 마감하는 마을 이름이 유난히 많습니다. 아마도 전체적인 형상이 분지여서 산비탈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기대 촌락이 형성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두 갈래 개울을 낀 마을 사이의 언덕마을은 실도 아니고 골도 아닙니다. 마을이 대체로 실이므로 골을 붙이지 않은 대신 멋진 이름을 선인들께서 붙여주셨습니다.

‘해평’. 바다처럼 평평하다는 뜻입니다. 산간마을이 광활할 리 없겠습니다만, 감히(?) 바다에 견주어 미치지 못한 바 있느냐는 과거 농민들의 드높은 기개가 있었기에 그런 작명이 가능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바로 그 ‘해평’이 우리 부부의 덤바우로 가는 길목입니다. 거기서부터 잠시 내리막을 걷다가 다시 가파른 산비탈을 제법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중턱에는 자그마한 저수지가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양 갈래 물줄기 중 오른쪽에 위치 한 못인데 산 너머 왼쪽에도 비슷한 크기의 못이 있습니다. 뜨락 연못이라 해도 손색없을 아담한 못을 둘러가는 길에 치켜보면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느티나무의 우람한 모습이 보입니다. 작은 산봉우리 하나를 송두리째 움켜쥐고 장군처럼 우뚝 섰습니다. 오래전 그 일대가 모두 다랑논이었을 때 마을 농민들이 땀을 식히던 곳이었답니다. 그 느티나무가 덤바우 어귀인 셈입니다.


 큰 눈이 오면 아내와 저는 신작로까지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갑니다. 아내는 그렇게 드나들 때마다 느티나무에 대고 새삼 인사를 합니다. “재 너머에 다녀올게요.”, “사래 긴 밭 갈러 들어왔어요.” 옛시조 중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라는 구절을 흉내 내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과 덤바우는 ‘재 너머 사래 긴 밭’에 딱 들어맞는 곳이군요. “사래가 무슨 말인지 알아?” “또 시작이다. 몰라, 모르고 싶어.” 사래는 이랑의 옛  말이라는군요. 사래, 이랑, 고랑.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참 느낌이 좋은 낱말입니다. 굴림소리, ‘ㄹ’이 뒤에 붙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모르긴 해도 옛적 농민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겠습니다. 마치 산을 짓듯 이랑을 세우고, 골짜기 내듯 고랑을 파내는 밭갈이가 고된 일일지라도 입 밖에 내면 낭랑하여지라고 그리 이름하였나 봅니다.


“내가 궂은일을도맡아 하니까 고랑이고, 표나는 일을 좋아하니까 당신은 이랑이네.” 아내가 이러는군요. “성미가 고약해서 고랑일세.” 재미 삼아 말다툼이나 벌이자는 건데, 아내는 서편 하늘 먼 곳에 눈을 둔 채 말이 없습니다. 저도 덩달아 하얀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봄은 어디서 올까?”“그거야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지면서….”“기온이 높아지는 게 봄이라고?”아내의 말에 머쓱해지고 말았습니다. “봄은 피어나는 거지.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우내 땅속에 새하얀 움을 부둥켜안고 있는 풀과 비썩 말랐으나 통통한 잎눈, 꽃눈을 암팡지게 부풀린 나무들에 봄이 어디서 오는 선물일 리 없습니다. 겨우내 마련된 새싹을 피우는 일이 봄에 다름 아니겠습니다. 온 마을이 예쁜 꽃처럼 피어나 온통 흐드러진 모습을 어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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