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홍윤표 연구관

 

한국은 다품목 소량의 농산물 생산-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순한 다품목 소량 생산의 구조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발달한 지역특산물의 개념까지 더해지면 국내 농산물은 ‘다품목 소량 + 로컬푸드’ 로 정의 될 수 있다.


농산물 유통에서 다품목 소량은 효율성과 생산성, 부가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절대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농산물 유통은 품목별로 일정 이상의 물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상품화에 투입되는 비용이 커져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를 갖게 된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식재료의 반찬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 식탁은 근원적으로 다품목 소량 생산의 구조를 갖게 만들었다. 지역적으로 농산물 품목이 다양하고 소량이다 보니 상품화 과정에서 대규모의 농산물을 취급하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 APC(Agricultural Products Processing Complex, 농산물산지유통센터)의 역할과 기능이 품목에 따라 보다 세분화되고 다양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APC는 산지유통조직이 주체가 되어 생산된 농산물을 안전성있게 상품화화여 소비자에게 공급함으로써 생산자인 농업인과 구매자인 소비자 모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갖는 현대 농산물 유통의 핵심 시설이다. 따라서 농산물 유통 현대화에 발 맞추어 ‘92년부터 ’14년까지 전국 주요 산지에 정부지원으로 건립된 APC는 총 700여개 이며 이곳을 거쳐 선별, 포장되어 출하되는 원예농산물 비율은 30%에 이른다.

공영도매시장 출하 40%, 대형유통업체 출하 30%의 비중과 견주어 APC를 거치는 농산물은 국내 유통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그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더 커지고 있는 시점이다. APC는 산지유통시설로서 생산자 단체의 직접 유통 구현과 상품성 향상을 담당하는 측면에서 공영도매시장이나 대형유통업체에서 유통 마진 이라는 경제 논리에 의해 이익을 추구하는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


더욱이 ‘다품목 소량’의 농업 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품목의 수 만큼이나 생산자와 생산자 단체가 많기 때문에 생산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APC가 지역별, 거점별로 더욱더 확대되어 명실상부한 산지유통시설로서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농산물 제값받기’의 실현은 수집상의 포전매매나 대형유통업체로의 납품 비율이 늘어나는 한 요원하다. 농산물이 APC를 거치면서 안전성과 상품화률이 높아질 때 소비자들은 진정으로 생산자에게 제값을 주고 농산물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농산물 유통에서 APC는 국토에 건설되는 도로나 다리, 항만과 같은 국가의 사회 간접자본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 전국 곳곳에 지역적인 기반을 두고 생산되는 다양한 품목의 토속적인 농산물을 안전하게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 기반의 APC가 필요하다. APC에서 선별, 포장, 저장된 농산물은 사계절 내내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데 이는 마치 SOC인 도로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공익적 기능과 가치 개념을 가진 지역 기반의 APC를 국가가 건립만 지원해 주고 운용에 드는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는 구조로는 지역 기반의 APC가 유지되고 활성화 될 수 없다.


한국 농산물 생산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지역적 기반의 APC는 전국민에게 공익적 기능과 가치를 부여 받고 있기 때문에 운용적인 측면이나 정책방향에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농산물 생산 전반에 걸쳐 많은 예산을 투입한 결과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품질이 뒤지지 않는 ‘우수 농산물’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우수한 농산물을 유지 보전할 수 있는 수확후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우수 농산물을 생산해 낸 만큼 상품화에 주력하는 ‘스마트유통’ 시대를 열어야 한다. 농산물 상품화를 담당하는 스마트유통의 출발점은 바로 지역적 기반의 APC 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 APC는 생산자 단체의 주도하에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양성된 전문인력이 지역적 로컬푸드 베이스에서 진보된 품질관리 기술을 투입하여 APC를 운용하는 스마트유통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오는 수입산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이길수 있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미래의 APC는 국민 건강을 위한 내수 시장의 품질 안전성과 상품화를 만드는 기능 뿐만 아니라 수출의 전진 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적으로 로컬푸드를 생산하는 우리 농업인을 보호하는 길이고 농업인을 보호해야 만이 우리 농산물이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먹거리의 안전성과 편리성, 그리고 수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선별, 포장, 저장의 운용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가가 책임지는 공익적 가치 개념으로 전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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