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획조정과장 이승돈

 

여름의 문턱이라는 소만(小滿)도 벌써 지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더위는 입맛을 빼앗고 심신을 지치게 한다. 이럴 때는 애호박, 오이, 가지, 비름나물 등 싱싱한 채소에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등 갖은 양념을 넣어서 조물조물 무친 다음 밥에 얹어 싹싹 비벼 먹고 차게 식혀둔 수박이나 참외를 크게 베어 무는 것이 제일이다.

하지만 냉장고에 때마다 제철 채소와 과일을 채워두기란 쉽지 않다. 농산물은 수확한 직후부터 시들기 시작해 냉장 보관해도 금세 무르거나 썩기 일쑤이고, 생활은 바쁘다 보니 집에서 하루 한 끼 만들어 먹기도 버겁다. 현대인이 ‘집밥’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주말에 장을 본 재료와 긴 시간 공들여 만든 음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먹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집에서의 식재료 손질과 식사 준비가 일상적이지 않은 시대가 됐다. 대신 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이 그 틈을 파고들어 세를 불리는 중이다. 간편식이라고 하면 컵라면, 삼각김밥처럼 편의점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간편식은 단순한 조리 과정만 거치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식재료를 가공.조리.포장해 놓은 식품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간편식은 샌드위치처럼 구입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신선 간편식(Ready to eat), 구입 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반조리 간편식(Ready to heat), 간단한 조리과정을 거쳐야 하는 조리 간편식(Ready to cook)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에는 HMR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밀키트(Meal kit)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밀키트는 손질이 끝난 식재료와 양념, 조리법을 한데 담은 간편식의 일종으로 구매자는 손질된 재료를 가지고 동봉된 조리법에 따라 짧은 시간 내에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식재료 본연의 맛과 신선도는 물론 요리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어 간편하지만 건강한 한 끼를 원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우리나라 HMR 시장은 1970년대 3분만 데워 먹으면 된다는 레토르트 카레에서 시작됐다. 역사는 짧지 않은 편이나 성장은 미미했던 HMR 시장 규모는 식품 소비 트렌드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2011년 1조원을 넘었고 2015년 1조 6,720억 원, 2016년에는 2조 3,000억 원으로 쑥쑥 커지고 있다. 2021년에는 약 7조원이 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기업들의 투자도 줄을 잇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식품 소비 트렌드의 변화, HMR 시장의 성장에 주목하여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는 새로운 ‘신선 간편식’을 제안하고 지난 4월 협의체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현재 HMR이 가지고 있는 대기업 중심, 다양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보완하고 국민에게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농가에는 국산 농산물의 소비 확대와 안정적인 소득이라는 미래를 약속할 수 있도록 힘을 쏟을 것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집에서 꽤 많은 단계를 거쳐 가며 만들던 육개장이나 삼계탕을 마트에서 사서 데워먹기만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육개장이나 삼계탕뿐만 아니라 이젠 포장만 뜯어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한 상 가득 차릴 수도 있다. 시대는 바뀌었다. 간편하지만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하여 농업도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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