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섭(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윗터길23)

나는 유기농 인증을 받고 있다. 유기농 인증은 매년 갱신을 해야 한다. 갱신 신청을 하려면 10여장 분량의 신청 서류를 작성하여 토양 검사서와 영농일지를 함께 제출하면 얼마 후 인증기관에서 농장으로 현장 심사를 하러 온다. 현장 심사 과정에서 인증기관 담당자와 농민 사이에 마찰이 자주 일어난다.

2년 전 일이다. 농장에 현장 심사를 하러 온 인증기관 담당자가 내가 받은 유기인증의 면적이 실제와 다르다고 하면서 바로 잡겠다고 했다. 나는 매년 같은 면적으로 인증을 받았고 지금도 변한 것이 없는데 갑자기 실제 면적과 인증 면적이 다르다고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인증 담당자는 밭과 밭 사이의 둑과 농기구와 포장재를 보관하는 농막은 작물을 경작하는 땅이 아니기 때문에 인증 면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빈 둑에 콩이나 옥수수를 심기도 하고 과일 나무를 심기도 한다. 인증기관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나온 콩이나 옥수수, 과일은 유기농산물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이런 불합리한 행정은 말이 안 된다고 항의했다.

 

농장에는 수확한 농산물을 보관하는 창고도 있고 농기계를 보관하는 농막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이것도 농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느냐며 항의했지만 새로 바뀐 규정이 그러하니 본인도 어쩔 수 없다면서 두 개의 둑과 농막 크기를 대충 어림짐작으로 면적을 계산하더니 인증 면적에서 제외시켰다. 불만이 있으면 상급 기관에 항의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작년에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영농일지에 적혀있는 “소똥”이 문제가 되었다. 내가 사용한 소똥은 생명역동농업(Biodynamic)에서 사용하는 소똥이라고 설명했지만 가축의 분뇨는 유해물질이 없다는 검사 결과서를 첨부해야 사용가능하다면서 인증 규정 위반이라고 하였다. 나는 생명역동농업에서 사용하는 소똥은 풀을 먹인 소의 똥이며 이 똥으로 증폭제를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소똥이라고 거듭 설명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용불가라는 것이었다.

유해물질 검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검사 비용이 꽤 비싸서 부담이 될거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날 밤 늦게까지 1년치 영농일지에 적힌 “소똥”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유박”으로 고친 후 인증기관에 다시 제출했다. 유박은 원재료가 GMO든 수입이든 상관없이 유기농 인증에서 허용하는 자재이기 때문이다.

1997년 친환경농업 육성법이 제정되었다. 제도권 밖에서 외면 받아왔던 유기농업을 정부가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고 육성하겠다고 하니 농민들은 친환경농업 육성법 제정을 반겼다.

이 법에 의하면 친환경농업은 합성농약, 화학비료 및 항생, 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이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농, 축, 임업 부산물의 재활용 등을 통하여 농업생태계와 환경을 유지, 보전하면서 안전한 농, 축, 임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을 말한다. 이 법을 기반으로 친환경농업 인증제도를 무농약 인증, 유기 인증 등으로 단계를 나누어 관리해왔다.

나는 인증기관과 몇 차례 마찰을 빚으면서 친환경농업 육성법이 친환경 농가를 육성하고 있는지와 농업생태계와 환경을 유지, 보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나의 결론은 아쉽게도 ‘아니다’ 쪽이다. 하나의 농장은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 농장에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가축 한 마리도 작물이 자라는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농업생태계와 환경보전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친환경농장이라 함은 그 안에서 물질순환이 이루지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소똥을 퇴비화하여 사용하는 것은 막고 출처도 불분명하고 땅에 결코 이롭지도 않는 유박은 유기자재로 허용하는 제도가 어떻게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최근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저것 금지하는 규정은 늘어만 가고 그렇다고 친환경농민을 인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이후 친환경농업 면적, 농가 수가 매년 줄어든다고 한다.

친환경농업 중에도 대부분 무농약 인증에 머물러 있고 유기 인증은 0.6% 미만으로 떨어졌다. 친환경 급식이 확대되면서 오히려 유기 인증 농가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생겼다. 내 주변에도 유기 인증을 포기하고 무농약 인증으로 단계를 거꾸로 낮추는 농가가 많다.

친환경 급식에서는 유기 농산물이든 무농약 농산물이든 차이 없이 똑같이 친환경농산물로 인정되는데 까다로운 친환경 급식 품질 규정에 맞추려면 화학비료 사용이 일정정도 허용되는 무농약 인증이 유기 인증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친환경농업 육성법과 인증 제도가 제대로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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