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모종을 두 번 심다
배추모종을 두 번 심다
  • 이대식
  • 승인 2018.10.05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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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용 배추나 무, 갓 등을 심는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 무척이나 신경을 써 시장에 나가 제때 배추모종을 사다 멀칭을 하지 않고 심어놓았습니다. 작년에도 때를 놓쳐 김장용 배추를 결국 외부에서 구입했었던 터라 날짜를 세어 가면서 심었지만 땅을 살린답시고 멀칭을 하지 않은 저의 치기 덕에 한 달쯤 지난 후에 맞이한 배추밭은 처참한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30포기 쯤 심은 배추밭은 잦은 비와 고온, 온갖 벌레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모종이 10개도 되지 않고 그나마도 겨우겨우 숨이 붙어 있는 상태라 건질 수 있는 배추를 가늠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동시에 파종한 무도 겨우 떡잎을 지나 본잎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벌레들의 잔치판이 돼 버렸습니다. 이게 제대로 자라 무를 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참 대책이 없습니다. 약이라도 치면 훨씬 낫겠지만 그건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가 아니니 그저 이 고비를 넘기고 자라주길 바랄 밖에요.


겨우겨우 심어놓은 들깨 외에는 밭 전체가 또다시 풀밭이 돼 버렸습니다. 그나마 김장채소 심은 열 댓 평 밭이 있어 아 이게 밭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영 올해도 밭 관리는 빵점입니다.


장에 나가 구해온 쪽파가 새순을 내 밀었습니다. 종묘상에서도 쪽파를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장날 아니면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히도 싸고 쉽게 쪽파를 구했던 터라 새순이 올라온 게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 잘 자란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 게 쪽파는 유난히도 고자리피해가 심해 김장때까지 잘 버텨주길 그저 바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시간은 지났지만 배추 열 포기 정도는 있어야 김장이랍시고 할 수 있으니 만일을 위해 배추모종을 다시 사다 심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밭 길이에 맞춰 딱 한 줄만 비닐멀칭을 하고 심었더니 15포기가 맞춤처럼 간격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마침 때맞춰 비도 내려줘 한결 마음이 편해지긴 했지만 너무 늦은 시기라 어떻게 될지는 하늘만 알 노릇입니다.


늦게 심어 자라기 시작한 옥수수가 또 제대로 크지도 못한 채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파종한 120개 중 겨우 30여개가 발아된 옥수수지만 그럭저럭 폭염도 견디면서 생존했건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모양입니다. 하기야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의 문턱에서 잦은 비와 흐린 날씨가 연속되니 이나마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지만 문제는 또 고라니가 키 작은 옥수수 열매를 건드린 흔적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자 그냥 고라니 식량으로 바쳐야 할지 귀찮더라도 뭔가 방어를 해야 할지 기로에 서서 고민하다 결국 집사람과 한바탕 다툼 끝에 동부콩 심고 둘러쳤던 노루망 울타리를 헐어 옥수수를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저기 몇 개씩 자란 옥수수를 전부 둘러치자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일단 창고에 남은 지주대와 수명이 다한 토마토나 고추밭 지주대를 전부 뽑아 빙 둘러 박고 헐어낸 노루망을 치기 시작했지만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차양막과 밭주인이 사용했던 철망, 집에 보관하고 있던 고추망까지 모조리 연결해서야 겨우 울타리가 완성되기는 했습니다만 모양새가 어릿광대 누더기처럼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떼거리로 달려드는 모기 덕분에 얼굴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어쨌든 울타리가 만들어졌으니 마음의 위안은 된 겁니다. 저로서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회의스럽지만 집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니 그저 부풀어 오른 얼굴이 가라앉도록 약이나 바르는 게 상책입니다.


내년에 다시 이 밭을 빌려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체력도 점점 떨어지고 하고자 하는 마음도 시들시들해지니 이젠 농사도 권태기가 찾아온 게 틀림없습니다. 금년에는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된다고 공단에서 문자를 여러 번 보내왔어도 무심하게 여겼는데 조금만 힘들게 일하면 숨이 차는 걸 보면 이렇게도 저렇게도 농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농사에 치여 건강을 잃으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니 놀아야 되긴 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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