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육계 사육에만 연을 맺고 있으니 40년이 넘도록 육계 한우물만 판 사육농가이다.


20여년전 생소한 계열화사업이 도입되고 농가들의 일방적인 희생이 강요되던 시절에도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육계를 떠나서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고 오직 육계 키우는 것이 천직이라고 여겼다. 계열화사업이 대수냐 닭만 잘 키우면 되지 자신감도 넘쳤다.


그간 육계 사육은 질병이 발생해 사육수수료는커녕 빚만 늘었던 해도 있었던 반면 최고 사육성적을 달성해 목돈을 만졌던 해도 있었을 만큼 육계산업은 늘 흥망성쇠(興亡盛衰)와도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아등바등하며 육계를 키워 자녀 대학공부에 출가까지 시켰으니 직업으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육계 농가들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계열화사업을 바로잡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수많은 선배 농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과거나 현재나 닭 사육 1회전을 못하면 곧 망하는 것처럼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이 농가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년간 닭 사육을 포기하고 농가들의 권익을 찾고 올바른 계열화사업을 정립시키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던 선배 농가들의 용기는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수년전부터 억대 조수익을 올리는 농가들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자녀에게 당당하게 대물림 할 수 있게 된 계열화사업의 현재의 위치는 지난 과거 앞장서 희생을 감수했던 선배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한편으론 지금의 계열화사업은 연간 조수익이 얼마냐에 따라 평가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계열화사업은 회사와 농가가 동등한 위치에서 최고 품질의 육계를 생산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 본질일 것이다. 농가 조수익은 차후의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가는 소득에만 집중하고 계열화사업의 본질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제 아무리 계열화사업이 개선되고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농가들이 요구하는 수준에는 크게 부족하다. 농가와 회사가 동등한 위치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여전히 농가는 회사에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요구하기가 힘들다. 농가는 여전히 회사 눈치를 살펴야 하며 혹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111년만에 최고 무더위라고 온갖 매스컴에서 호들갑이다. 실제로 살인적인 무더위 탓에 키우던 닭이 맥없이 죽어나간다. 더구나 기껏 키운 닭이 출하 과정에서 폐사가 나면 농가들은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출하 과정이라 회사 책임이라고 따지고 싶지만 ‘쇠귀에 경 읽기’가 뻔해 이 나이에 좀 손해보고 말지라는 생각이 앞서지만 억울함이 떠나질 않는다.


답답함이 풀리지 않아 신분을 밝히지 못한 채 투고로 농가들의 억울함을 알려야 하는 현실이 거북스럽지만 불합리한 문제는 분명히 밝히고 싶다. 병아리를 입추 받고 출하하기 까지 40여일 동안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농가들은 늘 좌불안석이다. 누가 책임져야 할까? 손해가 얼마나 날까? 한번 따져나 볼까?….
계열화사업이 제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사육 농가들은 여전히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것이 육계 계열화사업의 냉엄한 현실이다.                           

전남 육계 사육농가(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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