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진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장

날이 따뜻해지자 반가운 손님들이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꿀벌이다. 쉴 틈 없이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꿀을 모으는 모습을 보자니 아카시아 꿀 한 숟가락 크게 떠 차를 타려던 손길마저 미안해진다. 그래도 아카시아 꿀을 넣은 따뜻한 차 한 잔은 봄철 피로를 날려준다고 하니 미안함을 무릅쓰고 한 잔 해본다.

꿀벌은 부지런한 곤충이다. 이른 봄 새싹이 나기도 전에 겨우내 얼었던 벌집을 손질하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벌꿀 1g을 얻기 위해 8,000송이의 꽃을 찾아다니는데 이 비행거리가 무려 40km에 달한다. 양봉농가에서는 벌통 하나에서 약 50kg의 꿀을 얻는데, 꿀벌의 노고를 계산해보면 4억 송이의 꽃을 찾아 200만km를 비행하는 셈이다. 지구 50바퀴에 해당하는 긴 거리다.

 꿀벌은 초당 230회의 날갯짓을 한다. 벌집에 들어간다고 해서 날갯짓을 쉬는 것이 아니다. 벌꿀의 건조와 벌집의 온도 유지를 위해 부지런히 날갯짓을 해야 한다. 꿀벌의 부지런함은 애벌레 돌보기에서도 나타난다. 애벌레 한 마리를 돌보기 위해 하루 1,300번 애벌레를 찾는다.

꿀벌은 민주적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꿀벌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수직적인 계급사회를 이루고 산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 코넬대 생물학 교수이자 양봉가로 유명한 토마스 실리(Thomas D. Seeley)는 「꿀벌의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여왕벌의 제왕적 통치체계를 부정한다. 그 대신 꿀벌 집단은 의사결정을 여왕벌에 일임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결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여왕벌이 나오면 기존의 여왕벌은 벌집을 떠나 새로운 집터를 찾게 되는데 새로운 집터 선정과 여왕벌을 따라 나갈 일벌의 포섭은 철저히 경쟁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선발대를 맡은 일벌들은 8자춤, 엉덩이춤, 반원돌기 등 다양한 동작을 통해 그들이 찾은 집터가 매우 아늑하고 살기 좋다고 설득하는 한편, 중립적입 벌을 포섭해 단계적으로 모든 벌들의 동의를 이끌어낸다. 공동체 모두를 만족시키는 만장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장 이타적인 생명체로 자주 언급되는 종이 꿀벌이기도 하다. 여왕벌이 낳은 알을 부화시키고 애벌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면서 자신은 짝짓기도 하지 못하고 쉼 없이 벌꿀을 모으는 일벌의 헌신 때문일 것이다. 용맹함도 갖췄다. 장수말벌은 몸길이 5c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독성이 강한 말벌이다.

 꿀벌을 습격해 일벌을 죽이고 애벌레를 약탈해간다. 그러나 이런 장수말벌도 꿀벌 수 백 마리 앞에선 꼼짝 못한다. 벌들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벌집을 지키는 이유에 대해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그런 선택이 공동체에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비록 자신은 죽더라도 나머지 벌들이 생존할 확률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5월이 오면 꿀벌은 바쁘다. 아카시나무에 꽃이 열리면 오롯이 아카시아 꽃에서 꿀만 딴다. 이 또한 꿀벌의 영리함이다. 가장 꿀이 많이 나오는 아카시나무를 두고 굳이 다른 꽃을 찾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후온난화로 아카시나무의 개화기간이 2007년 30일에서 2017년 16일로 줄었다. 나무 한 그루당 꿀 분비량도 2.7리터에서 1.6리터로 40% 이상 줄었다. 줄어든 개화기간과 꿀만큼 꿀벌의 날갯짓과 이동거리는 늘어날 것이다. 달콤하고 눅진한 꿀맛에는 꿀벌이 주는 지혜 그리고 꿀벌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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