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신경림 시인의 시 <농무(農舞)> 앞부분이다. 시집 초간 시점으로도 45년이 지났으니 시인이 노래한 것으로 치면 근 50년이 될 법하다. <농무>는 대개 1960년대, 197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에 떠밀려 삶터를 빼앗긴 농민의 신산한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시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저러한 시평을 떠나 무엇보다 옛적 농촌의 삶을 되새김질하는 것만 같아 <농무>는 뇌일 때마다 애절한 회상곡이 되고는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폐회를 앞두고는 잔치, 파장 같은 낱말들이 브레인스토밍 하듯 뇌리를 스쳤다. 흥청망청 잔치가 끝난 고즈넉한 마당 모퉁이, 사람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쓸쓸한 장터 뒷골목, 그리고 전 세계인의 축제의 장이라는 올림픽 폐회가 굴비 엮듯 여러 단상을 촘촘히 죄었다. 신경림 시인의 <농무>는 이렇듯 갖가지 상념의 한 두름으로 맞춤이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평창 제23회 동계올림픽은 지난 9일 개회식부터 25일 폐회까지 17일간 열렸다. 우리나라로서는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올림픽을 치렀다. 하계올림픽에 견줘 규모는 작지만 92개국 2천900여 명이 참가한, 공히 세계인의 겨울스포츠 큰잔치임에 틀림없다. 동계올림픽은 흔히 눈 위에서 펼치는 설상경기와 얼음판에서 겨루는 빙상경기로 나누는데, 이번에는 설상과 빙상을 합쳐 15종목, 102개의 메달을 두고 선수들이 열전을 벌였다.

평창 올림픽은 우여곡절이 남다르다. 국내에서 전북 무주를 이겨내고 2010년,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투구했으나 아깝게 실패했다. 캐나다 밴쿠버와 러시아 소치에 연이어 석패한 강원도 평창은 세 번째 도전 끝에 올림픽 유치를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도 많았다. 동계올림픽은 말할 것도 없고 하계올림픽 개최국마저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경향인데 평창도 견디기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였다. 게다가 세계적 경제침체에 따라 올림픽 자체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걱정도 논쟁에 부채질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세 번 도전하는 동안 대부분의 올림픽 개최지는 흥행실패와 재정적자에 허덕여야만 했다. 아테네, 베이징, 소치 등 올림픽 개최지의 초라한 흥행성적표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한 세계경제 위기는 올림픽에 적신호가 됐다. 올림픽대회 개최를 경제부흥의 계기로 삼으려했던 예전과 달리 올림픽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올림픽 의제 2020’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2014년에 발표한 이 의제는 1국가 1도시 단독개최원칙을 포기함으로써 개최희망도시의 진입문턱을 낮추고, 개최지 현장실사를 포함한 유치비용을 올림픽위원회가 부담하는 등 개최도시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올림픽도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처럼 2국가 2도시 개최가 가능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 직전 또 다른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했고, 실제로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여론이 문제의 논란을 잠재웠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냐 평양올림픽이냐는 정치적 다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를 주문했고 북한이 곧장 화답하면서 남북 대화와 교류가 급진전했다. 실무회담을 거쳐 개회식 공동입장과 여자아이스하키 ‘코리아’ 단일팀 구성을 합의했고, 적어도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한반도는 평화와 화해의 상징이 됐다.

동계올림픽대회는 막을 내렸으나 평창의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평창에서 3월 9일부터 17일까지 패럴림픽, 장애인 동계올림픽대회가 열린다. 평창 패럴림픽에는 50개국, 1천400여 명이 여섯 종목에서 실력을 겨룰 예정이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가 주최하는 패럴림픽은 4년마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 열리는 신체 장애인들의 국제경기대회. 지적 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의 올림픽인 스페셜올림픽은 지난 2013년 평창에서 열린 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패럴림픽까지 끝나면 진짜 징이 울리고 막이 내린다. 잔치가 끝나고 우리는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평창 올림픽에 대한 평가는 호평일색이다. 세계 각국 참가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준비된’ 올림픽, 평화롭고 ‘안전한’ 올림픽, 개최비용에 견줘 ‘고효율의’ 올림픽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의 성패 여부는 ‘지금까지’가 아니고 ‘지금부터’ 갈릴 것이다.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된 각종 경기장의 운용과 활용 문제가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올림픽 개최로 인한 강원도 곳곳의 환경훼손문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강원도와 중앙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할 사안도 많다. 노르웨이 등 상대적으로 재정기반이 튼튼한 북유럽 선진국들마저 동계올림픽 유치를 꺼려하는 마당에 강원도 평창의 도전은 과감했다. 이제 그 도전이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징이 울리고 막이 내린 지금이 시작이다. 남북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는 언제 깨질지 모를 유리그릇과 같다. 이제 첫 만남을 시작했을 뿐 ‘완전한’ 화해와 협력으로 가기 위한 여정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올림픽 이후 남북 교류와 협력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그 매개가 이번에는 평창 올림픽이었다면 올림픽 이후에는 농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과 함께 농업협력이 남북을 잇는 평화의 다리가 되리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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