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고 다시 쓰고
다 쓰고 다시 쓰고
  • 백종수 편집국장
  • 승인 2017.12.0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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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면 멀뚱멀뚱 있기가 뭣해 허리나 어깨를 돌려보거나 목운동을 하고는 한다. 그러다 무심결에 올려다보면 천정 구석에 붙은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승강기 모니터 광고화면.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할 일도 없건만 누구라도 동승하게 되면 시선을 돌리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어느 날 짧지만 강력한 한 마디를 만났다. 꽤 괜찮은 광고카피, 다시 생각할 만한 문구였다. 다 쓰고 다시 쓰고. 앞뒤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다 쓰고’라는 글귀에 ‘시’자가 첨부되며 ‘다시 쓰고’가 됐다. 자원재생공사든가?

사실 ‘다 쓰고, 다시 쓰고’라는 말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법하다. 처음엔 참신하다고 여겼는데 한때 ‘아나바다’가 유행어였던 것을 떠올리니 식상해지기까지 한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다 쓰고 다시 쓰고. 아마도 환경과 자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였지 않나 싶다.

먹고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 하나로 우리사회는 많은 것을 잃어왔다. 인간성 상실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은 생명 환경, 청정 자연을 잃은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야지 뒤돌아 볼 새가 어디 있느냐는 핀잔이 상식이라 통용되던 시대를 우리는 살아냈다. 강산이 더럽혀지고 공기가 오염되는 과정은 회한이면 회한이지 결코 추억이 될 수 없다.

먹고 살만하니까 가능했다는 말도 그리 부정하고 싶지 않다. 군부독재시대가 저물고 민주화의 물결이 사회 곳곳을 휩쓸 때였을 것이다. 공장마다 회사마다 노조가 속속 결성되고 정치민주화, 사회민주화의 요구는 봇물 터진 듯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 뒤돌아보고, 인간성 회복을 고민하고, 생명과 환경의 복원을 꿈꾸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 쓰고 다시 쓰는 일이 과거에는 선택이고 주장이었다면 이제는 인류의 책임이자 의무가 됐다. 인간이 저지른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의 재앙은 고스란히 인류에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참고 견뎌왔던 지구가 더는 인내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 지구가 화수분처럼 인류에게 끊임없이 줄 것이라는 착각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

화석연료는 고갈되고 광물자원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억 년을 견디며 공들여 만들어낸 지하자원을 인류는 단 이삼백 년에 거덜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대체에너지를 발굴해내는 일은 적잖은 진전을 이뤘다. 어찌 보면 태양광, 풍력, 수력, 수소에너지 등은 미래의 담보물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아무리 용을 써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한 자원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도 착각이요 오판이기 쉽다. 변수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속성 중 하나가 싸움기질이지 않을까? 인류가 영장류 꼭대기에 오를 수 있기까지 수많은 싸움이 있었을 것이다. 직립보행을 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류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싸움에서 이겨 생존했기 때문이 아닌가. 산 자가 승자라는 말과도 맥이 같다.

자원전쟁이 변수라는 얘기다. 단언컨대, 햇빛이든 바람이든 물이든, 그것이 공기든 인간은 자원을 독차지하려는 싸움을 벌일 것이다. 자신의 앞날을 보장할 보물이,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에너지원이 제 손아귀에 없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연 자원은 무궁무진하고 인류는 ‘아나바다’에 충실한 족속으로 존속할까? 국가사회든 종족사회든 지구인의 소유를 향한 다툼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이 아닐까?

다 쓰고 다시 쓰고. 식상한 광고카피일지언정 이 선언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꽤 쓸모 있는 선동이 될 일이다. 자원 재생, 자연 순환은 인류가 기본으로 갖춰야할 덕목이어야 한다. 생명체 지구와 지구를 구성한 모든 것은 인류의 것이 아니라 인류가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설령 오만하게 굴어 인간이 지구의 주인인 양 한다면 주인답게 잘 가꿔 후세에게 물려줄 일이다.

그 좁은 승강기에서의 짧은 사유가 인류의 미래까지 훑었으니 침소봉대도 혀를 내두를 일이다. 저 광대한 시공 앞에서 누군들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똥 얘기를 하기 위한 밑밥으로 인류를 들먹거렸다. 다 쓰고 다시 쓰고의 정수는 바로 똥인 것이다.

똥과 똥의 재생을 떠올릴 때마다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밥이 하늘이고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 그 자체인 밥이 또 다른 생명체를 거쳐 똥으로, 새 생명으로 나오는 생명의 순환! 사람도 그렇고 가축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넣어 필요한 만큼의 생명을 얻고 그 나머지 생명을, 그러나 온전한 생명을 내보내는 순환의 생명력!

축산분뇨 자원화. 처치 곤란한 분뇨를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자원을 이용하는 일. 얼마 전 전북 남원에서 만난 젊은이는 자신이 하는 일이 충분히 가치 있고 좋은 일이라며 자식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인근 양돈농가에서 돼지분뇨를 수거해와 한 달여 걸러내고 미생물을 넣어 발효액을 만든 다음 이웃 농가 논밭에 무상으로 발효액을 뿌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원화시설을 둘러보면서 그의 자부심이 아니어도 진정 가치 있는 일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돌려볼 일이다. 축산분뇨 자원화는 분명 다 쓰고 다시 쓰고의 정수임이 틀림없다. 글은? 다 쓰고 다시 쓰고, 사족임에 틀림없다.

농업인신문, NONGU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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