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는 눈이 없고, 위험한 소리를 미리 알아챌 귀가 없으며, 행동을 결정할 머리가 없잖아. 내가 너를 끌고 다니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그러는 거야. 그 따위 쓸데없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마. 독재자나 폭군은 구실을 핑계 삼아 제 맘대로 독재와 폭력을 행사하고는 하지.

유태인의 지혜서라는 <탈무드>에 등장한 뱀의 머리와 꼬리가 나누는 대화내용이다. 뱀의 머리가 가는 데로 따라가야만 하는 꼬리가 문득 불평을 늘어놓는다. 꼬리와 머리는 똑같이 뱀의 일부분인데, 왜 만날 머리는 앞에서 무작정 끌고 다니고 꼬리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 다녀야만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역할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꼬리의 요구대로 머리 대신 꼬리가 앞장서 길을 가게 됐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짐작대로이다. 꼬리가 이끈 뱀의 행로는 말 그대로 가시밭길로 접어든다. 개울도랑에 빠져 가까스로 탈출하는가 하면, 가시덤불에 갇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그때마다 머리가 이끌어 위기를 모면했으나 마지막엔 불길에 잘못 뛰어들어 결국 불에 타죽는다는 이야기다.

뱀의 머리와 꼬리를 의인화한 이 이야기로 유태인들이 후손에게 알리고 싶은 지혜는 무엇일까?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제 본분에 맞게, 제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자칫 금이니 흙이니 하는 ‘수저론’이나 신분사회의 질서를 강조하는 이야기로 비약할 필요는 없다. 이야기의 교훈을 두고 뱀의 꼬리처럼 쓸데없이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터무니없는 호도에 지나지 않는다.

유태인들이 자녀교육에서 잣대로 삼는 것 중에 하나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믿는 까닭에 천편일률의 성공목표를 거부한다. 그래서 남보다 뛰어나고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보다 남과 다른 아이가 되도록 훈육에 힘쓴다고 한다. 뱀의 머리와 꼬리 이야기도 맥락이 같다. 사회구성원이 하나같이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 모두에게 머리 역할만 가르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서로 다름을 알고 제각각 훌륭한 머리, 훌륭한 몸통, 훌륭한 꼬리가 되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대통령선거일이 코앞에 왔다. 우리는 불운을 겪었다고 해야 할까, 눈이 있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않으려는 머리를 우두머리로 두고 전전긍긍했다. 지금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거나 오십보백보니 하며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씻어내지 못하는 이가 적잖다. 대한민국이 수렁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훌륭한 지도자를 갈망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참여도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지도자의 자질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

<회남자>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을 활쏘기에 비유했다. 활 쏘는 사람 손에서 터럭만큼만 빗나가도 결과에 가서는 몇 길이나 어긋나게 마련이라고 일갈했다. 그만큼 지도자의 위상이 엄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일단 성공하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고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자질이나 덕목과 관계없이 실로 위험한 ‘지도자론’이라는 평이다.

과연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능력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은 그 자체로 선택의 잣대가 되기 십상이다. 리더십이라고들 한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품성, 덕목, 능력 등을 아울러 이른다. 카리스마 리더십은 오랫동안 주목받았다. 베버가 초인간적인 재능이나 힘, 절대적인 신앙을 토대로 맺어지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카리스마적 지배’라고 개념화하면서 탁월한 비전, 실현가능한 해결책, 압도적인 지도력 등을 두루 갖춘 지도자를 상징하게 됐다. 종교체계와 밀접했던 카리스마 리더십은 정치제도와 결합하면서 간혹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인류에게 재앙을 불러온 몇몇 독재자의 표상이 됐다.

서번트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있다. 머슴 지도자정신이라고 직역하면 모순이지만, 섬김의 리더십이라면 익숙해진다. 지도자들이 선거마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으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로버트 그린리프가 1977년 처음 제시한 서번트 리더십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 <동방으로의 여행>에 등장하는 주인공 레오로부터 비롯했다.

단체여행에서 레오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했을 때는 무난히 진행됐는데, 어느 날 그가 사라지자 일행은 혼돈에 빠지고 결국 여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행 중 하나가 몇 해를 탐문해 레오를 만나고 여행을 후원한 교단을 찾아갔더니 심부름꾼으로 알았던 그가 바로 교단 책임자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다는 이야기다.

섬김의 리더십을 주창하는 그린리프연구소가 제시한 훌륭한 리더의 주요특성은 눈여겨볼 만하다. 경청, 공감, 치유, 구성원을 위한 노력과 봉사, 공동체 형성 등이 꼽힌다. 경영관점에서도 그렇지만 특정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이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대한민국 농업과 농촌사회에는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신중히 선택할 때다. 군림하려는 자 배제하고 섬기려는 자 찾아보자. 그러잖아도 올해로 70돌이 된 농촌지도자회는 우애, 봉사, 창조의 정신을 줄기차게 구현해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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