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어느 봄날 귀농귀촌종합센터에 올라온 한줄 임대정보를 보고 찾아온 이곳 동해에서의 귀촌생활이 어느덧 5년이 다 돼가고 있습니다. 시골살이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무턱대고 시작했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도시기준으로 볼 때 전혀 살만한 집이 아님에도 선뜻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건 오로지 한눈에 반한 골짜기의 녹음과 마당 한편에 햇살을 머금어 반짝이던 샘물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씩이나 준비를 하고 발바닥이 닳도록 답사를 해도 어려운 귀촌을 그저 낭만적 생각과 급박한 경제적 문제로 결정했으니 늘 지난 일은 후회로 점철돼나 봅니다.

임차한 집을 우리 입맛대로 고친다고 형편에 맞지 않게 많은 돈을 들여 수세식 화장실을 새로 만들고 부엌개조는 물론 이곳저곳 잡다하게 손을 댄 건 우리 집처럼 여겼기 때문이었지만, 그게 결코 현실에 맞는 생각이 아니었다는 게 남의집살이의 어려움입니다.

5년의 임차기간이 임박해오면서 주인장의 출입이 잦아지고, 이것저것 잔소리가 많아지면서 소위 갑질이라고 느끼게 하는 말과 행동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하기야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라는 게 늘 그런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될 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스트레스를 받는 제 자신이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떠나면 몸도 떠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이제는 처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일단 인터넷을 통한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이든 경험이 있든 거처를 옮기는 일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자금은 부족하고 살아갈 환경은 좋은 곳을 찾아야 되니 발품을 판다하더라도 그게 어디 쉽게 잡아지겠습니까. 겨울이 되니 답사 다니는 일도 어려워집니다. 산골은 언제 비가 눈으로 바뀔지 알 수가 없어 날이 궂으면 아예 답사계획을 포기해야 합니다. 수도권과 가까운 곳은 여러 여건이 맞질 않으니 천상 멀리서 찾아봐야 되기 때문입니다.

익숙했던 환경을 떠나 낯선 곳을 찾는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지만, 그렇다고 그 익숙함에 안주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가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으니 참 세상살이는 어렵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차라리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게 정답일거라는 생각으로 길을 나서지만, 막상 답사를 간 곳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서울과의 거리라든가 주변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결심을 망설이게 만듭니다.

소유하지 않고 임차로 살아가는 일이 옳은 결정인가도 거처를 옮기는 갈등 요인입니다. 워낙 시골부동산 거품이 커 소유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렇게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갈등을 겪는 것도 못할 짓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러 가지 조건들을 충족할만한 곳을 찾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녀도 현재로서는 살고 있는 이곳만큼 자연환경이 더 좋은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낯선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이사에 대한 결심을 주저케 하니 스트레스만 더욱 쌓여갑니다. 이사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열거해보면 다 타당하고 반대로 이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따져보면 그 또한 합당하니 이대로 주인장 비위를 맞추고 임차료 인상도 감내하면서 주저앉는 게 상책일지 머리만 점점 더 아파옵니다.

거처를 옮기자면 일단 수 십 년 생활하면서 쌓인 온갖 살림살이를 정리해 몸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게 우선일진데 이도 집사람과 의견차이가 심해 쉽질 않습니다. 하기야 살림살이에 관한 일을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인 게, 왜 이런 물건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겨울 매서운 추위가 닥치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답사 다니려면 서울 딸네 집을 베이스캠프로 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바리바리 짐을 챙겼건만 며칠 되지도 않아 집 걱정에 꿈자리가 사나워지니, 이삿짐을 꾸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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