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에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농업전망대회가 열린다. 다음 달 7일과 9일에는 각각 전북도청, 경북도청에서도 전망대회가 열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해마다 개최해온 농업전망대회가 올해로 스무 번째를 맞이했다. 대회 모토랄까, 이마에는 ‘미래를 향한 농업·농촌, 변화와 도전’이란 구호를 써 붙였다. 기존과 대동소이하다. 미래, 변화, 도전, 그리고 전망이라는 낱말은 새해와 함께 붙어 다니기 십상이다. 관측, 추측, 추정, 예측, 예상, 예견, 예언, 비전, 짐작 같은 말들도 전망과 이웃사촌이 되고는 한다. 그 전망의 길모퉁이를 돌면 희망과 절망, 낙관과 비관, 밝음과 어둠, 흥망성쇠의 미래가 나타날 법하다.

올해 농업전망대회 주제발표를 살펴보니 한국농업의 자물쇠랄까, 풀어야 할 과제로 네댓 가지가 제시됐다. 인구사회구조, 농산식품시장, 기후·기술, 국제통상을 자물쇠로 두고 맞은편에 대응과 협력, 변화와 도전을 열쇠로 놨다. 애초 실체는 없으나 두루뭉수리하게나마 모든 도전은 열쇠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적 주제들이 미래 농업과 농촌의 큰 흐름이나 물결을 다루는 것이라면 곡물, 과일, 과채, 채소, 축산, 임산물 등 분야별 관측과 전망은 우리 농업의 실제와 현실에 바탕을 두기에 훨씬 구체적인 관심을 끈다.

멀리 보며 미래를 예측하고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짐작하는 일은 자체로 쉽지 않거니와 그 판단과 추정이 공개되고 외부와 공유됐을 때에는 예상치 못한 후과가 따를 수도 있다. 별자리와 풍수를 통해 다가올 날을 추측하거나 직관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하는 행위야 족집게가 아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겠으나 과학적 추론과 자료 분석에 따른 관측은 발설이나 발표에 이르러 상당한 책임감이 부여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각광받고 있는 ‘빅 데이터’는 관측의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전망과 미래 예측, 그리고 그에 맞는 대안과 대응 찾기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작년 유월에 타계한 앨빈 토플러는 대표적인 ‘미래학자’였다. 1970년에 발간한 <미래 쇼크>를 시작으로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부의 미래> 등 그의 저서는 현실 세계를 읽어내고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1980년에 나온 <제3의 물결>은 작금의 정보화 시대를 예견한 일대역저로 꼽힌다.

앨빈 토플러는 이 책에서 세 가지 유형의 큰 변화를 ‘물결’에 비유해 설명했다. 수렵이나 채집생활을 하던 인류가 집단 농경사회로 이전한 혁명적 변화를 제1의 물결, 농경사회에서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산업사회로의 변혁을 제2의 물결로 규정하는 한편 곧이어 산업사회가 과학기술에 의해 정보화 사회로 변화할 것이며 이를 제3의 물결로 지칭했다. 간단하게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이 지대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다.

그는 변혁의 물결이 이뤄지는 기간에도 주목했다. 즉 인류가 채집경제에서 정착을 통한 농경과 목축이라는 생산경제로의 진입까지 수천 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으며,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약 300년이 걸렸고 향후 정보화혁명은 20년에서 30년 정도면 완성될 것으로 본 것이다. 컴퓨터, 전자공학 등 과학기술지식을 기반으로 ‘맞춤 생산’이 가능함에 따라 탈 대량화, 탈 표준화, 탈 집중화를 특징으로 한 정보화 사회가 곧 이뤄질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36년 전 이 책에서 이미 ‘재택근무’ 일상화와 ‘프로슈머’를 예측하기도 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30여 년을 과거사인 양 관통했다. 예측과 실제가 이토록 맞아떨어질까 싶을 정도다.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의 상상력을 빌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사회를 살아본 이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생생하게 묘사한 듯하다. 그는 생전에 제4의 물결도 언급했다. 생명공학과 우주공학이 물결을 일으켜 로봇, 인공지능(AI), 입체(3D)프린터, 바이오산업 등이 미래에 각광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사물인터넷(IOT)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오투오(O2O), 증강현실게임, 입체프린팅 등이 가시화되고 인공지능, 로봇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농업전망대회 20년을 다시 생각해본다. 앨빈 토플러의 ‘물결’ 구분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농업혁명을 완성했으며, 이후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을 거치면서도 도태하지 않고 산업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농업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영원히 첨단산업의 지위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실감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체한 듯해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농가소득, 농촌사회, 농산물유통, 국제통상, 기후변화, 스마트 팜, 6차 산업화 등 그러그러한 렌즈로 끼워 맞춘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전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획기적인 망원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쓸모없는 상념에 젖는다.

농경사회라는 옷을 벗어던졌을 뿐 산업혁명의 색깔과 정보화혁명으로 디자인한 옷을 갖춰 입는 데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만간 닥칠 인공지능혁명의 패션을 편견의 시각으로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헌옷을 벗은 채 어떤 새 옷도 입지 못하고 있는 적나라한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닌지, 시대와 사회의 변화는 읽을 줄 알고 인정하되 그 변화에 동참하고 새것에 도전하는 용기는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농업전망대회 즈음에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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