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나 도시나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로 외부사람을 부를 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전등을 교체해야 하거나 전기배선을 새로 해야 한다거나 혹은 수도가 고장 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야 사실 형광등 가는 일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라고 여기거나 아예 전기, 수도, 보일러 같이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은 기술자를 부르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시골은 도시마냥 편하고 저렴하게 기술자를 부르거나 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기업이 제조·판매하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전국적 A/S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비싼 인건비와 출장비로 인해 사람을 부르는 일을 주저하거나 아예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방법 없이 불편하게 지내야만 합니다.

집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이 더 침침해진다며 방이나 부엌 전등을 형광등보다 좀 더 밝은 LED등으로 바꿔달라고 계속 요구하지만, 괜히 전기에 관련된 일을 하려면 겁이 나서 미루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노안만의 문제가 아닌 이상 증상으로 사물을 보는데 문제가 생긴 게 밝혀지고 서울 큰 병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전등교체를 미룰 수 없어 일단 부엌 등만이라도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워낙 오래된 시골집이고 전기배선도 얼기설기 돼 있는 상황이라 늘 누전에 대한 불안을 안고 지낼 수밖에 없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전열기만 사용하면 전기가 나가곤 해서 불편을 겪었던 터라 원인을 찾느라 고생하다가 결국 배선차단기를 신품으로 교체하고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등 교체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배선차단기가격이래야 몇 천원에 불과한데 이걸 기술자가 와서 갈아주는데 몇 만원을 받아야 된다고 해 에라 내가 하지라는 배짱으로 도전해서 속으로는 겁이 나 손이 떨리긴 했지만 그래도 해야 될 상황에서는 하게 되더군요. 한번 해봐서 성공하면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쉬워지는 게 당연합니다.

처음으로 뒷방 형광등을 교체할 때는 감전될까 겁이 나 배선차단기까지 내리고 집사람이 비추는 랜턴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일을 마친 거와 비교하면 참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사람도 처음에는 와〜우 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우더니 이젠 당연히 하는 일이라고 수고했다는 말도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건성으로 합니다. 남자로서 이런 일도 했다는 뿌듯한 마음도 일상처럼 돼버리면 감흥이 없긴 합니다. 그러나 일은 언제나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터지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됩니다.

마당에 나와 있는 부동전(不凍栓)은 겨우내 사용하지 않아서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는데 그만 이 수도가 꽤 큰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어김없이 닥친 늦봄 가뭄이 지속되고 있어 선택의 여지없이 관정수돗물을 밭에다 대야할 상황이 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매실이 굵어져야 할 시기에 지독한 가뭄으로 열매가 90퍼센트 이상 낙과되는 경험을 반복하기 싫어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충분히 물을 대주기로 하고 호스를 수도전과 연결했었습니다. 문제는 호스로 가는 물이나 밖으로 새어 나오는 물이 같을 정도로 수도가 땅속에서 새고 있는 걸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한 방울의 물도 귀한 판에 원인을 알기 위해 철물점에 문의했더니 부동전이 터진 게 틀림없다며 교체하려면 땅 파는 노임과 재료비, 거기다 기술자 공임까지 아무리 안 들어도 십 몇 만원 든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전기공사도 해봤는데 까짓 땅 파고 수도전 갈아 끼우는 거라고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수도전부터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삽과 괭이에다 나중에는 모종삽과 국자까지 동원해 흙 파내고 물 퍼내니 원 수도파이프와 연결된 수도전 끝이 보였습니다. 좁은 곳을 파들어 가야 해 엎드려 일하느라 무릎이 아픕니다. 집사람이 헌 방석 등을 뭉쳐 바닥에 대 주니 한결 일하가기 편해졌습니다. 원수관을 잠그고 수도전과 연결된 엑셀관을 공예용 톱으로 썰어내 구입해 온 최고급 부동전과 연결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시 땅에 묻기 전 최종 물이 새는 지를 확인하고 수도전을 세우니 하루해가 저뭅니다. 기술자가 뭐 따로 있습니까. 이렇게 새로운 기술자가 태어나는 곳이 촌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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