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씨는 정말 종잡기가 어렵습니다. 해마다 그렇지만 바람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밭에서 서있기조차 힘들 때가 있을 정돕니다. 문제는 이런 바람이 농사에 쓰였던 온갖 멀칭용 비닐들을 사방으로 날려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검정비닐이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는 모습은 이젠 시골에서 흔한 풍경이 돼버렸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밭 가장자리 감나무 꼭대기에 비닐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치워야 속이 시원할 텐데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고 장대마저 닿지 않는 높은 가지에 걸려 있어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 대책이 없습니다.

지자체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이곳은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 대체로 전년도에 사용됐던 폐비닐을 수거하는 분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골짜기까지 뒤졌는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수거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폐비닐은 빈 퇴비포대에 담거나 혹은 묶어서 지정된 자리에 내놓으면 수거차량이 걷어가는 데 이걸 제대로 묶질 않으면 강한 바람에 날리게 마련입니다. 이리저리 흩어져 날리는 온갖 비닐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골짜기나 높은 절벽 등에 걸려 장기간 방치되면 생태계에 지장을 주리라는 건 자명한 이치입니다.

제가 사는 이곳 비천동은 엄연한 시지역임에도 시내에 사는 사람들 중 이곳을 전혀 모르는 동네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골짜기가 깊습니다. 비천(飛川)의 원 지명은 광천(光川)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이 골짜기에서 인재가 많이 난다해서 일부러 비천(卑賤)하다는 의미가 나도록 개명했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냇물을 하늘로 날릴 만큼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은 맞습니다. 이러니 태풍이 아니더라도 봄철에는 앞산 뒷산이 아우성을 치듯 바람소리가 거셉니다.

농사의 시작은 땅을 가는 것이 시작이니 전년도에 치우지 않고 방치해뒀던 비닐이나 들깨 단이며 마른 잡초 따위들을 치워야만 경운기나 트랙터가 로터리를 칠 수가 있습니다. 12가구가 채 안 되는 마을에 농사짓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시내에 거주하면서 농사짓는 이가 더러 있지만 대부분 연로한 할머니들인지라 이런 농사잔존물이나 생활쓰레기도 아무 거리낌 없이 소각하곤 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멀칭용 폐비닐도 큰 골칫거리지만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온갖 비닐도 문젭니다. 시내에서는 비닐도 분리수거를 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변두리고 농촌지역이라 그런지 비닐도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다버립니다. 이러다보니 20리터 쓰레기봉투를 비닐쓰레기가 90퍼센트 이상 차지하게 됩니다.

사실 시골에서 쓰레기라고야 별반 나올 게 없습니다. 음식찌꺼기는 퇴비로 활용되고 종이류는 아궁이에 불 지피는 용도로 쓰니 비닐 외는 쓰레기라고 부를만한 것도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한 장에 몇 백 원하는 쓰레기봉투도 이 골짜기 할머니들에게는 아깝고 귀한 물건인지라 지정 장소에 나와 있는 쓰레기봉투는 저의 집과 폐교 커피체험장에서 나오는 게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 봄은 유난히 바람이 셉니다. 거의 태풍에 버금갈 정도니 갑자기 밭 가운데로 생전 보지도 못했던 돗자리까지 날아들어 이게 도대체 어디로부터 날아온 물건인지 종잡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온갖 비닐쓰레기들을 모아 빈 퇴비포대에 담아 한군데에 모아 둘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 탓이려니 하지만 어디 그게 그렇습니까. 속으로는 쓰레기를 날린 그 누군가를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 마음마저 내려놓지는 못합니다.

마을 입구에 최근 지자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블루베리를 재배하던 100평 비닐하우스가 그만 폭삭 주저앉아 버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니 오래된 창고 지붕이 날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워낙 골짜기가 깊고 좁아 한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밖에 나가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휘몰아치니 웬만한 물건쯤이야 공중으로 날리기 십상입니다.

올해 배정받은 퇴비더미를 덮어 두었던 검정비닐이 무거운 돌덩이로 눌러두었음에도 강풍에 찢겨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뛰어나가 잡아보려 애쓰지만 바람을 이길 재주가 없습니다. 이래서 내 쓰레기가 어딘가에 쓰레기가 되고 또 다른 이의 쓰레기가 내 쓰레기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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