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TPP 협정문이 공개됐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며 12개국이 참여하는 TPP는 참여국들의 국내총생산량(GDP)이 27조7천억달러로 전세계의 37.1%를 차지한다. 무역규모 또한 25.8%로 막대하다. 이를 근거로 박근혜정부는 수출주도국인 우리나라의 TPP 가입은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TPP가 지닌 ‘양날의 칼’은 함부로 덥석 잡을 것이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조차도 “미국과 일본이 한국의 TPP 가입 대가로 우리가 받아들이기 곤란한 사항을 요구할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가입여부는 우려되는 부분이 큰 사안이다.
농업분야는 모든 국민이 공통적으로 TPP와 ‘상극’임을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가입의사를 생각하면, TPP 협정문에 담겨있는 농업피해 요소가 무엇인지 분석이 요구된다.


“예상대로 미국 주도의 협정 내용”

TPP 규범 부문에서 ‘국영기업 우대금지’ 조항은 협상 내내 미국이 주장하던 것이 그대로 실렸다는 분석이다. 협정문에서 국영기업이란 의미는 ‘정부의 직간접적 소유 또는 영향을 받는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국내 농업분야에 대입하면, 정부의 각종 지원사업에 관계된 모든 기업이나 연구단체, 농민단체까지 국영기업으로 유권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 등 비상업적 지원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주목된다. 정부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물론 의결권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 모두 해당된다.

농협중앙회를 통한 정책지원사업에 제약이 따를 것이고, 면세유 지원 정책 조차 TPP 규범에 따라 사라지게 될 처지에 놓인다는 얘기가 된다. 시장경제논리에 따른 사업실적으로 이득을 올리지 않게 되면, 농촌경제연구원,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촌진흥청 등 모든 기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적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한 미국의 요구가 충분히 예견되는 대목이다.

“요구사항 무조건 수용해야”

또 미국과 일본간의 TPP 협상 내용이 이목을 끈다. 향후 우리에게도 요구조건이 비슷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미일간의 TPP 협상으로 일본의 농가들은 자국내 농산물 가격 하락 피해 등을 우려하고 있다고 최근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사실 미국은 일본에게 TPP가입을 조건으로 미국산 무관세(TRQ) 쌀 물량을 늘렸다. 당초 미국은 17만5천톤까지 무관세 물량을 늘리라고 주문했고, 일본은 5만톤이상은 힘들다고 버텼다. 결국 7만톤이상 개방하는 선에서 타협을 했다. 이는 그나마 일본이 자동차 부품으로 협상카드를 내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우리나라처럼 아무런 협상카드가 준비돼 있지 않을 경우, 요구사항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은 또 쇠고기 시장에 대해서도 15년에 걸쳐 38.5%에서 9%까지 관세 문턱을 낮춰줬고, 돼지고기 고급부위에 대한 관세도 10년에 걸쳐 철폐키로 했다. 캐나다에게는 낙농시장을 개방할 것을 요구해서, TPP 최종협상이 지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이 우리에게 TPP 가입조건으로 내걸 수 있는 것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한미FTA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유추해보면, 쌀 TRQ 물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FTA 추가이행 목록인 쇠고기 완전개방, 유기농기준 완화 등의 조건도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결론인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쌀 시장 개방을 예외로 두겠다고 말했지만, 전혀 현실성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정부가 얘기하는 괜찮은 수준 아니다”

TP
P 발표 즉시부터 최고 30년까지 관세를 95%~100% 철폐한다는 시장접근분야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예상대로 한미FTA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포괄적 자유화를 목표로 삼았던 만큼, 녹록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10개의 회원국들은 일단 공산품에서 장단기 100% 관세를 철폐키로 했고, 호주(99.8%)와 멕시코(99.6%)만이 일부 품목 예외를 인정받았다.

우리 정부가 가입에 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세계 물동량의 25%이상이 관세없이 움직이는 무역시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는 얘기인 것. 정부측과 농업계가 이견을 보일 수밖에 없는 대목인 것이다.
농산물 등의 비공산품은 나라별 실정이 일부 반영됐지만, 최하 95%이상 관세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국내 농업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존 참가국들은 TPP협정 발효 7년 이후가 되면 각국의 관세철폐 또는 인하 폭을 재협상할 수 있도록 합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TPP 회원국 중 절반에 달하는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칠레 등 6개국은 협정 발효후 7년 이후 공업제품과 농산물의 관세철폐 및 인하 내용에 대해 재협상에 응한다는 규정을 상호 합의했다. 상대국이 관세철폐 등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이규정에 합의한 국가들은 상대국의 재협상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 문제는 후발주자로 합류하는 우리나라에 이 내용이 어떻게 적용될지 의문이다. 철저하게 기존 회원국 위주의 규정이란 점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원산지 누적 기준’ 조항도 국내 타산업분야와 농업계가 확연한 입장차를 보이는 항목이다. TPP 12개 회원국이 생산한 중간재를 사용해 최종 제품을 만들 경우 중간재의 원산지를 자국산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인 원산지 누적기준이 적용되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게 산업계의 주장이다.
하지만 농식품 분야의 경우, 원산지규제가 어렵게 되고 그만큼 국내 농산물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 철저히 무역장벽이 차단된 상태에서 국민들의 밥상에 오른다는 의미다.

“농업을 파괴하는 TPP 중단해야”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대책없는 TPP 가입결정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TPP는 단순한 무역협상이 아니라는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협정문 조항들은 주권 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것으로, 다국적 기업이 어디에서나 그들의 이윤을 위해서 어떠한 행위도 용납할 수 있게 만든 신자유주의 규정”이라며 “특히 그들이 정한 규범에 가입하는 것은 영세하고 열악한 국내 농업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