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가 원산지라는 달맞이꽃은 지천에 널린 잡초(?)입니다. 베어내고 뽑아내도 지칠 줄 모르고 이곳저곳에서 돋아나는 정말 귀찮은 존재입니다. 이놈들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키가 얼마나 크는지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입니다. 가을이 되면 저들이 마치 참깨라도 되는 양 씨방이 터지면서 온 사방에 씨를 흩날려 스스로의 영역을 넓히니 감당하기가 쉽질 않습니다. 거기다 뿌리도 얼마나 단단히 땅을 물고 있는지 웬만큼 자란 달맞이꽃을 뽑아내려면 괭이정도는 있어야 가능합니다.

올 봄 가뭄이 대단해 돌 들깨가 자랄 때까지도 달맞이꽃은 드문드문 보일 정도였는데 어느새 장마가 지나고 나니 온 밭이 달맞이꽃으로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로는 2년생 풀인 달맞이는 첫해는 꽃대가 올라오지 않고 두 번째 해에 꽃대가 올라와 씨를 맺는다는데 작년에 미처 뽑아내지 못한 것들이 올해 전부 올라온 셈입니다.

사실 달맞이꽃은 멀리서 보면 노란색깔이 아름다운 풀입니다. 세상의 모든 풀들은 저마다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고, 사람들에게도 다 쓸모가 있어 100가지 풀을 모으면 약이 된다니 잡초라고 부를 풀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사람들의 쓸모 여하에 따라 가만있는 풀들을 편 가르기 하는 거지요.

둘째아이가 아토피증상이 있어 집사람은 이에 대한 정보라면 거의 모르는 게 없을 정돕니다. 그럼에도 가까운 지인의 자녀가 아토피로 많은 고생을 했는데 달맞이꽃 종자유를 처방받아 복용하고는 거의 완쾌됐다는 정보는 몰랐으니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겁니다. 이리하여 우리 밭 달맞이꽃은 잡초에서 약초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농사를 짓는 건지 아님 잡초를 기르는 건지 뒷 담화깨나 듣게 생겼지만 어차피 기르기로 마음먹고 나니 꽤 많은 이들이 달맞이꽃을 재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으니 그저 배움의 길은 끝이 없습니다.

어쨌든 태풍 ‘고니’가 기르는 작물에 큰 피해는 주지 않고 지나갔지만 달맞이꽃들은 그 큰 키로 인해 이리저리 쓰러져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예년 같았으면 죄 베어버렸겠지만 이제는 격이 달라진 터라 몇 개씩 모아 끈으로 묶어세우는 수고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수고는 가을이 깊어지면 씨방이 익어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씨를 채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도라지씨앗이나 더덕씨앗처럼 달맞이꽃 씨앗도 아주 미세해 기름을 짜려면 많은 양이 필요합니다.

잎이나 줄기, 꽃 등으로 담근 발효액도 좋지만 종자유가 특히 아토피에 효과가 있어 시중에서 상당한 고가에 팔린다고 하니 부지런히 채취하지 않으면 기른 보람이 없을 겁니다. 기름을 짜기 위한 최소량이 동네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적어도 몇 되는 돼야 되니 한해 길러 충분한 양을 채취하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고 미리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알뜰하게 채취하는 게 최선책입니다.

가뭄으로 방치했던 밭은 저절로 돋아난 돌 들깨와 자소엽, 그리고 달맞이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농사에 손을 놓은 건 아닙니다. 말리기가 힘들어 작년에는 포기했던 고추도 대략 100포기 정도 심어 얼마 전부터 조금씩 익은 고추들을 따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름 내내 풋고추도 실컷 따먹었으니 이만하면 고추농사는 잘 된 거지요.
토마토와 오크라도 잘 자라 집사람이 좋아합니다. 믹서로 이런저런 재료들을 섞어 갈아먹는 데 필수품이 토마토니 좋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8월 말에는 감자를 캐고 비워둔 밭을 다시 잘 정비하고 퇴비를 넣어 김장채소를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무와 총각무는 미리 씨앗을 뿌려 새싹을 틔웠고, 배추는 모종을 심어 잘 키우기만 하면 됩니다. 미리 파종했던 고들빼기가 발아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올 농사도 괜찮은 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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