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익숙한 곳이 되고 맙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곧 지역사회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가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인간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각종 경조사에 얼굴도장을 찍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시골생활에서 동네 경조사에 참석하는 일은 시골생활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의 갈림길일 수도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영 살기가 편치 않을 수가 있으니까요. 무심코 던지 한마디 말로 인해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는 사례가 빈번한 곳이 시골입니다.

건너편 할머니 댁은 이곳으로 이주해서 맨 처음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정보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움을 받은 소중한 이웃입니다. 제가 이곳에 산지도 벌써 만 3년째니 저간에 할머니 댁에 대한 가족사항이라든지, 형제간 갈등 따위 같은 불필요한 정보까지도 저절로 알게 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된 겁니다. 사실 누군가 자신의 집안에 대한 흉을 보며 열을 낼 때 머리를 주억거리며 들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의 아니게 남의 가족사를 알게 되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괜한 편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할머니 댁 큰아들은 저와 연배가 비슷한 60대 초반입니다만 이틀에 한 번꼴로 늘 본가에 들려 집안일이나 농사일 등을 돌보는 요즘 보기 드문 효자입니다. 올 들어 연로하신 할머니가 약간의 치매증상을 보인다며 걱정이 많더니 결국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노인을 모시고 갔다고 하더군요. 사는 이가 없다고 집을 마냥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틀에 한 번 집안 곳곳을 살피고 심어놓은 밭작물들을 돌보는 일은 여전합니다. 그럴 때마다 가끔씩 제가 건너가거나 본인이 찾아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곤 합니다.

장성한 자녀들을 둔 집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녀들의 결혼문제일 겁니다. 저도 미혼인 아이가 있는지라 이 문제는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입니다만, 그이도 아들 결혼문제로 머리가 아프다며 늘 걱정이 많더니 어느 날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치고 말았는데 며칠 후 다녀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 오늘도 다녀가는가 보다 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까지 올라와 청첩장을 내미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시에서야 청첩장을 보내는 상대가 친한 친구나 직장동료, 그리고 친인척 등이지 이웃에 산다고 보내는 일은 아주 드물 겁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당연히 축하인사도 보내고 결혼날짜와 장소 등을 확인하고는 꼭 가마 약속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이제 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니 잘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폐교에 들어선 커피 체험장은 운동장이 제법 넓어 주차로 골머리를 앓는 일은 없습니다. 이런 편리성 때문인지 주말에는 꽤 많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와 제법 북적거리기도 합니다. 젊은 아가씨가 많은 돈을 들여 시작한 일이니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번 커피도 사먹으러 가곤 했지만, 농사일이 바빠 한동안 가보지도 못했었습니다.

집사람과 함께 오랜만에 산책이라도 할 양으로 모처럼 일을 놓고 체험장에 들렀더니 그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체험장이라고 허가를 받긴 했지만, 실상은 커피숍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살고 있는 주민이 민원을 제기해 상당히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더군요. 도시에서야 온갖 민원이 난무하지만 이런 조용한 산골마을에서야 누가 훼방을 놀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닙니다. 학교 주위 노인 분들에게 가끔 무료커피도 배달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엉뚱하게도 가깝게 지내던 이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대표인 젊은 아가씨가 얼굴이 반쪽이 될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으니 인간관계라는 게 어디까지 신경을 써야 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그래서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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