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이주 농업 노동자 수는 공식적으로 2만 3,000명을 넘는다. 2004년에 33명을 시작으로, 근년에는 한해에 6,000명씩 입국하고 있다. 대략 추산하면, 우리나라 전체의 농업 노동 투입 시간 중에 외국인 노동자가 기여하는 몫이 5%를 넘는다. 투입되는 농업 노동의 15%가 고용노동이며,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게 농업 고용 노동의 3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보고서에는 외국인 이주 농업 노동자가 겪는 부당 노동 행위와 열악한 생활환경, 폭행 등 기본권 침해 사례들이 빼곡하다. 월평균 휴일 수가 2.1일, 월평균 근무시간이 283.7시간, 최저임금법이 정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사례가 71.1%였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 채 다른 사업장으로 불법 송출된 경험자가 60.9%였다. 그들의 67.7%가 컨테이너나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가건물에서 거주한다.

거론하기 민망한 통계도 있다. 여성 이주 노동자 가운데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30.8%), 신분증을 고용주가 강제로 빼앗았다는 응답(15.5%), 부당한 처우에 항의했더니 해고·이탈신고·추방 등을 빌미로 협박을 당했다는 응답(47.2%)도 많았다.

경영 여건 악화를 이유로 부당 노동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사태의 원인을 일부 악덕 고용주 탓으로 돌려 비난하는 것도 문제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우선 법률과 제도의 불비(不備)를 찾아 고쳐야 한다.

외국인 이주 농업 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실태를 개선하려면 ‘근로기준법’ 제63조를 철폐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이 조항은 우리가 ‘주 40시간, 하루 8시간 근무 원칙’이라고 아는 근로시간 제한 규정을 농림어업 분야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1953년에 법이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주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농업에서는 노동 소요의 계절 진폭이 크다. 상시 고용 노동자의 비자발적 실업이 발생하기 쉽다. 그런데 법률은 고용주의 승인 없는 외국인 이주 농업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현실과 맞지 않는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일터에 강제로 불법 송출되는 배경으로도 작용한다. 이는 ‘직업안정법’이나 ‘파견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위반하는 것이다. 법제의 공백을 채워야 한다.
‘갑을관계’의 무한연쇄라는 늪에 빠지기 직전인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인 법제와 그것을 따르는 준법 행위는 사회적 인정(認定) 관계의 최저선이다. 최근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스탭들과의 표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일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당연한 일인데 이목을 끈 것은, 변변한 근로계약 없이 일을 시키던 부당 노동의 관행을 끊었기 때문이다.

관련 법규나 인권에 대한 농업 분야 고용주들의 이해(理解)가 매우 부족하다. 사업주와 이주 노동자가 함께 앉은 자리에서 근로계약서를 놓고 각자의 의무와 권리를 알게끔 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가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인 곳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약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오늘 농업계의 약자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다. 쉼 없는 농기계에 이름은 없다. 감가상각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 회사 앞 식당에서 사 먹은 매운탕에 얹힌 미나리와 쑥갓, 그의 아들이 학교에서 먹은 방울토마토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섞인 결실이리라. 그들을 농업경영장부의 인건비로 기억할 텐가, 농부의 얼굴로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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