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은 오래전부터 유기농식품에 관심이 많아 가능하면 특정매장을 가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해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배달을 이용해 필요한 식품을 구입합니다.
사실 도시의 팍팍한 삶 속에서 유난을 떤다고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저로서는 그저 그런가보다 라는 식으로 방관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이곳으로 주거를 옮겨 맨 처음 검색한 것이 이 조합에서 운영하는 매장을 찾는 일일 정도로 집사람의 신념은 매우 강해 어떤 때는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 정돕니다.

사실 유기농이란 게 정말 사람에게 유익하기만 한 것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유기농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게 최선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재배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가 없으므로 유기농산물을 주관하는 단체에 대한 믿음만이 유일한 검증방법입니다.

세상 이치가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하다가도 어느 궤도에 오르면 편법이 나오고 그러다 그 규모가 커지면 여기저기서 문제가 불거지게 마련입니다.
근 20여년을 일편단심으로 애용해온 집사람에게 이런 의구심을 얘기하면 정색을 하고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얼굴을 붉힐 정돕니다.

도농복합적인 작은 도시로 이주해서 직접 농사를 짓게 되니 농약도 화학비료도 쓰지 않으면서 작물을 재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이러니 과연 집사람이 맹목적인 믿음으로 예찬하는 이 조합의 농산물은 어떤 식으로 검증을 받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좋은 말이란 말은 죄다 모아 현란한 말잔치를 벌이는 매스미디어광고판에 사람들이 세뇌당하기 십상이듯, 특정한 것에 대한 애착은 한번 좋으면 끝까지 좋을 것이란 믿음을 버리기가 쉽질 않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집사람과 함께 조합매장을 드나들다 어떤 식으로 농산물이 매장까지 나오게 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진 건 우연한 일로부터입니다. 대도시의 매장보다 크기도 클뿐더러 품목도 다양해 집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당연히 이것저것 질문이 많다보니 이 지역에서 조합 활동가로 일하는 이와 자연스럽게 접촉이 이뤄진 것이지요. 그저 한사람의 의심 많은 소비자로서만 바라보던 시선이 좀 더 폭넓게 바뀌게 된 건 이이로부터 받은 제안 때문이었습니다.

조합에서 판매할 신규품목이나 기존에 판매하고 있는 품목까지도 모니터링하고 심의하는 각 지역마다 운영되는 지역농산물위원회의 위원으로 동참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집사람이 받은 겁니다. 나중에 안 일이긴 합니다만 이게 좀 책임감이 따르고 시간도 많이 내야 하는 일이라 위원으로 활동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고사하는 분들이 많아 위촉이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집사람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덕분에 저는 곁다리로 감투(?)를 얻어 쓰게 됐으니 참 세상 일이란 게 이렇게 얽혀 들게 되니 한 치 앞도 쉽게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생인 모양입니다.

매월 세 번째 월요일이 위원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매장 옆에 별도의 활동실이 마련돼 있어 이곳에서 신규로 올라올 예정인 품목에 대해 직접 요리도 해서 맛도 보고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품평을 종합해 전국위원회로 올리면 이곳에서 입점 여부가 최종 결정됩니다. 물론 신규품목에 대한 생산자나 재배방식 등에 대한 상세정보는 정해진 양식으로 각자에게 제공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습니다. 눈으로 보고 요리도 해 맛을 보는 과정은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아주는 필수 사항입니다.

실지로 위원들 중에서 작게나마 농사를 짓는 이들은 저의 부부 말고도 삼척 인근으로 귀농한 부부가 있어 심의 과정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농사정보를 얻게 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위원회는 점심까지 해 먹으면서 오후로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거기다 더해 위원회가 일단락되면 작은 독서모임까지 갖게 되는 일정이라 이날은 온전히 밭일에는 신경을 끊어야 되는 날입니다. 하기야 농사일이란 게 하려고 하면 끝이 없고 놀자고 하면 얼마든지 게으름 피울 수 있지만 그래도 은근히 밭일이 걱정되는 건 그나마 농사꾼 시늉이라도 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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