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흔하지만 또 그만큼 귀한 것은 없을 듯싶습니다. 벌써 이곳에서 3번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해마다 물로 인한 고통이 더 심해지는 건 너무나 물의 소중함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도회지 아파트에서야 물로 인한 불편함이라는 건 애당초 생각지도 않았으니 다 자초한 일인 긴 합니다.

처음 이 곳을 둘러볼 때 뒤편에 있는 샘물이 눈에 확 들어와 ‘뜰 안에 속삭이는 샘물’을 노래했던 옛 시인의 정취가 느껴질 정도로 멋져 보였으니까요. 사실 별도의 물 저장용기도 없이 작은 샘물구덩이만으로 생활용수까지 해결될 것인가 의문만 가졌어도 이처럼 곤란을 겪는 일은 없었겠지요. 세탁기를 한 번만 돌리면 적어도 하루는 기다려야 다른 용도의 물을 쓸 수 있으니 참 딱한 일입니다.

뒷산에 설치된 샘물통은 단순히 자유낙하의 원리로 내려오는 물이라 워낙 수압이 약해 필요한 물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러니 이 물로는 그저 설거지 정도나 할 정도지 수압이 필요한 데는 사용하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명색이 군도 아닌 시임에도 불구하고 광역상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까닭은 워낙 가구 수도 적고 대부분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식수를 해결하고 빨래는 앞집 할머니처럼 시냇가에서 힘들게 해도 그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 별다른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저도 이주한 첫 해는 정신없이 지난 탓으로 이처럼 힘들 것인 줄 몰랐다가 봄 가뭄과 여름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샤워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돼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됐으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시골로 귀농귀촌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집고 넘어갈 주거환경 점검표에서 최우선 순위는 물이 풍족한 가를 살피는 일일 겁니다. 그저 주변 풍광만 보고 덜컥 옮겼다가는 낭패 보기가 십상일 테니 이런저런 점검항목에서 반드시 물은 꼼꼼히 체크해야만 합니다.

샘물에 설치된 자동펌프도 기종이 오래된 것이라 작년부터 문제를 일으키더니 급기야 올해는 물도 부족한데다 펌프조차 고장이 잦아 이걸 고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과제가 됐습니다. 새 걸로 교체하면 간단하지만 임차한 집 고정시설물에 또 돈을 투자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집주인이 갈아줄 것 같지도 않아 결국 인터넷을 뒤져 수리하기로 결심하고 펌프를 살폈지만 들여다본다고 뭐 알아내겠습니까. 그저 펌프가 설치된 통을 열고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문득 대부분 펌프 내 압력개폐기가 문제를 일으켜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 이걸 갈아보기로 했습니다.

메이커대리점에 문의하니 출장비에 부품 값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단골철물점으로 나가 7천원에 일단 신품을 사왔습니다. 자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전원을 차단하고 헌것을 빼내는 일부터 쉽질 않습니다. 스패너도 새로 사고, 수도용 테이프도 사서 어찌어찌 빼내 설치됐던 그대로 새 개폐기를 전선까지 연결해 단단히 고정시켜 전원을 넣고 수도를 트니 이게 물이 나오는 상태가 자갈밭을 달리는 수레처럼 쿨럭쿨럭 거리니 정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그래도 궁즉통이라고 압력나사를 헌것과 비교해보면서 이리저리 돌리다보니 소 뒷걸음치다 개구리 잡듯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물도 부족하고, 자동펌프도 고장이 잦고, 뭔가 대책이 필요했던 시점에 반가운 공사가 시작된 것은 금년 8월 중순이 넘어서였습니다. 작년에 이미 설치된 집수용 물탱크와 각 가구마다 연결되는 관로공사가 시작된 거지요.

포장도로를 따내고 뒤이어 포클레인이 관로를 뚫는 굉음이 조용한 산골을 뒤흔들며 시작된 공사는 해가 저무는 아직까지도 진행 중입니다. 집 마당까지 소형 포클레인이 올라와 기존 자동펌프 수도관과 연결시키고 계량기까지 달았음에도 아직 통수가 되지 않은 까닭은 기존 설치된 집수용 물탱크가 날림공사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랍니다. 시당국의 예산만 낭비한 공사로 결국 올 겨울도 샘물 수위를 노심초사 들여다보며 하늘만 바라볼밖에 대책이 없게 됐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물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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