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가 공포에 떨게 한 가축질병 ‘AIㆍ구제역’

 
2014년에는 축종을 불문하고 축산농가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FTA로, 대내적으로는 AI와 구제역 등 가축질병으로 고통 받았다. 그러나 정부는 축산농가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임을 ‘농가 탓’으로 돌려 축산농가들이 원성을 샀다. 최장기간, 최대 규모 살처분이란 사상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AI도, 최근 충북 진천을 시작으로 발생한 구제역도 방역을 소홀히 한 농가에 책임을 묻는 정부의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식과도 같은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것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병을 발생시킨 장본인으로 낙인찍기까지 했다. 올 한해 축산농가를 공포에 떨게 한 AI와 구제역 등 가축질병 발생을 정리했다.


‘고병원성 AI’, 기약 없는 종식


#우려는 현실로…예견된 AI 발생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5월 이후 AI(조류인플루엔자)발생이 없어 청정국 지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3년여만인 지난 1월 17일 고병원성 AI가 재발했다. 사실 올해 초부터 고병원성 AI발생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었다. 농식품부가 야생철새와 가금농가를 대상으로 ‘AI 예찰검사’를 실시한 결과 고병원성 AI의 항원이나 항체는 검출되지 않았으나, 저병원성이 전년에 비해 50.5%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중국, 베트남, 호주에서 우리나라로 야생철새가 유입돼 올 봄에 AI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농식품부는 AI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방역대책을 한층 강화한다고 발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AI가 발생했다. 전북 고창군 소재 종오리 농장에서 최초로 고병원성 AI로 확진 받은데 이어 전국 가금농장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농식품부는 고병원성 AI의 명확한 발생 원인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겨울철 철새에 의해 가염된 것으로 추측했다. 실제로 최초로 발생한 전북 고창 종오리 농장도 야생철새 서식지로 유명한 동림저수지와 반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또 동림저수지에서 야생철새 집단폐사가 발생, 방역 당국이 폐사한 철새를 수거해 정밀 조사한 결과 H5N8형이 폐사 원인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야생철새에 의한 AI 확산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방역당국이 바짝 긴장했다.

#AI는 농가 탓? 떠넘기기 바쁜 정부

각 지자체도 AI 확산 차단을 위해 긴급 비상체제에 돌입했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에 대한 방역활동이 녹록치 않았다. 철새가 이번 AI파동의 주범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가창오리 대이동에 따른 방역전선 확대는 불가피한 실정이었다. 이에 AI 종식을 위해 범정부(안전행정부, 환경부, 식약처, 지자체, 군 등) 원스톱 위기대응체계를 구축해 비상방역체제를 가동했다.

또한 AI가 빈발하는 농장에 대해서 살처분보상금 ‘삼진아웃제’를 도입키로 했다. 농가의 방역의식을 높이기 위해 AI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농가에 대해 보상금을 차등 지급한다는 것. 이에 따라 1차 발생 땐 살처분보상금 20%를 삭감하고, 2차 땐 50%, 3차 땐 80%를 삭감한다고 농식품부는 밝혔다.
농식품부는 “삼진아웃제를 두고 농가의 반발이 예상되나 농가의 방역의식을 높이기 위해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AI가 발생하는 농장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며 결국 최종 책임은 ‘농가의 몫’이라는 정부의 무책임한 무언의 압박이 축산농가를 더욱 아프게 했다.

정부가 ‘농가 탓’으로 돌리는 사이, 지난 3월 국내 최고 수준의 방역시설과 전문인력을 보유한 축산과학원에서도 고병원성 AI가 뚫렸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 소재한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가 사육 중이던 오리 일부가 폐사해 정밀검사한 결과 고병원성 AI로 확인됐다. 축산과학원에서 AI가 발병하자 ‘예방적 살처분’을 비롯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비와 발병 책임을 물어 차등지급하는 ‘살처분보상금’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제기됐다.

#AI 살처분 규모 사상 최대. 최장기록 갱신

정부와 축산농가의 방역활동에도 불구, AI는 확산됐다. AI 전파 주범으로 지목됐던 철새들이 북상하기 시작했고 날씨가 따뜻해져 AI 기세도 한 풀 꺾이는 가 했지만 AI 발생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 9월 4일 축산농가 이동제한을 완전히 풀며 사실상 ‘종식 선언’을 했지만, 불과 20일 만에 전남 영암 오리농장에 이어 전남 나주, 곡성, 보성 지역 사육농가까지 AI 감염이 판명됐고 지난달에는 전북 김제와 경북 경주 토종닭까지 AI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났다. 끝날 것 같았던 고병원성 AI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 들어 고병원성 AI로 살처분한 오리와 닭이 지난 11월까지 1446만마리에 이른다. 이는 2008년의 1020만4천마리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 규모를 확대한 탓도 크지만 철새를 통해 감염되는 특성과 차단방역에 ‘구멍’이 뚫리면서 살처분 규모가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번 AI 발생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토착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과거 4차례 발생한 AI는 모두 겨울과 봄철에 집중됐다. 봄철에 확산된 AI는 더위가 몰려오는 5월 이전에 사라졌다. 그간의 정설을 깨고 이번 AI는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발병했다. AI가 바이러스가 햇빛에 노출돼도 사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역당국은 열에 약한 AI 바이러스는 겨울에 나타났다 여름이면 사라지지만 올해는 많은 양의 바이러스가 퍼져 좀처럼 진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방역당국은 “이번에 검출된 H5N8형 AI 바이러스가 과거 발생했던 H5N1형 바이러스보다 독성은 약해졌지만 개체 번식력은 강해 오랜 기간 넓게 퍼져 기약 없는 방역활동에 돌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제역’ 발생지역 확산되나


#이례적 여름철 구제역 발생

해 첫 구제역은 지난 7월 23일 경북 의성군 돼지사육농가에서 발생됐다. 정부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구제역 발생 사실을 통보하면서, 지난 5월 ‘백신접종 구제역 청정국’으로 인정받은 지 2개월도 못 돼 청정국 지위가 박탈됐다.
그리고 경북 의성 돼지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한데 이어 27일에는 경북 고령 돼지농장, 8월 6일에는 경남 합천 돼지농가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그리고 최근 또다시 구제역이 발생하며 축산농가가 긴장하고 있다. 지난 12월 4일 충북 진천 돼지농장에 이어, 충남 천안. 충북 증평, 청주 등 12월 20일 기준, 12월 한 달 동안 14건의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18일부로 구제역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단계로 격상했다. 농식품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방역대책본부가 꾸려지고, 발생 시도와 인접한 주요 도로에 통제초소가 설치되는 비상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올해 발생한 구제역은 모두 혈청형 O타입으로 그간 국내에서 접종했던 백신의 유형을 띠고 있기 때문에 확산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농장내로 유입된 바이러스로 인해 백신접종이 미흡한 돼지에서 발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AI와 마찬가지로 통산 겨울철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구제역이 여름철 같은 시기에 발병한 것을 두고, ‘토착질병’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관계기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계절 상시 방역체계, 가축 사육 제도의 전환 등이 근본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정부의 책임회피…멍들어가는 축산농가

정부는 한결같이 백신접종을 하지 않는 ‘농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의성에서 구제역 발생 당시 농식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발생농장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거나 누락된 돼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축산농가의 방역의식이 저하될 경우 언제든지 구제역이 재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최근 진천을 시작으로 충청도 지역에 번진 구제역 발생 보도자료에는 “농가에서 철저하게 백신접종을 실시하고, 축사 내외부도 매일 소독할 것”을 당부하면서 “예방접종을 실시하지 않아 발생할 경우 살처분보상금 감액 지급 확대 및 각종 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받도록 관련 제도를 검토해 개선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AI에 이어 구제역도 농가 책임으로 떠넘기며 축산농가를 분노케 하고 있다.
한 축산단체 관계자는 “2010년의 트라우마로 악몽이 되풀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농가에게 책임전가까지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 억울하다”며 “철저한 역학조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규명해 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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