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쌀 품종 개발로 농업기술강국 실현

▲ 농기계 보급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필리핀에 농진청이 기증한 콤바인으로 벼 수확 시연회
농촌진흥청은 일찌감치 다양한 쌀 품종 개발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비한 품종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변화하고 있고 이상기온 현상이 빈번해 언제든지 쌀 생산량이 급감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때를 대비해 열대지방에서 우리 밥맛과 똑같은 쌀 품종을 개발 중이다. 괄목할만한 성과도 냈다. 우리 밥맛과 똑같으면서 수량이 높은 ‘MS11(아세미)’가 개발된 것이다. 이 품종은 필리핀에 설치된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 코피아)를 통해 필리핀 농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1년 3기작이 가능한 기후를 가진 필리핀은 토양관리, 재배방법, 품종 낙후 등 갖가지 이유로 쌀산업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MS11(아세미)’ 품종이 보급되면서 수량도 많고, 품질도 좋은 쌀을 생산하게 되면서 농가소득도 덩달아 늘어 필리핀 농민들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본지는 필리핀에 설치된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 코피아)를 방문해 ‘MS11(아세미)’ 품종 현지반응과 코피아 활약상 등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쌀 포기 댓가 톡톡히 치루는 필리핀
“농업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는데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무너진 농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기대만큼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6일 필리핀 일로일로 지역에서 개최한 ‘벼 우량종자 생산 시범단지사업 현장 연시회’에 참석한 필리핀 농업부 관계자의 긴한숨이 섞인 코멘트다.

필리핀은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업 강국으로 쌀 수출 국가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 필리핀 정부는 크나큰 실수를 하게 된다. 쌀 수출을 정부가 포기한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보다 쌀 수출 성과가 낫다고 판단한 필리핀 정부는 쌀 수입으로 국가 기조를 전면 수정하게 된다. 아울러 쌀산업에 지원된 모든 예산을 중단했다.
정부가 당장 쌀산업에 손을 떼면서 쌀 뿐만 아니라 농업분야 전반에 걸쳐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쌀산업 위기는 매우 심각했다.

▲ 일로일로 농민의 날 행사에 코피아 관계자들이 소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포기한 쌀산업은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는 농민들의 절망이 뼈아팠다. 쌀 농사를 포기한 농민들이 줄을 이으면서 농수로 등 농업 기반시설 붕괴도 도미노처럼 확산됐다.
필리핀 정부가 쌀산업을 포기하면서 예측했던 쌀산업 붕괴 속도보다 훨씬 빨랐던 것이다.

이와 함께 국제 곡물가격이 기후변화와 함께 요동을 치면서 수입해 오는 쌀 가격도 매년 상승하면서 필리핀 정부의 목을 죄 왔다.
2000년대 들어서 뒤늦게 필리핀 정부는 뼈저린 반성과 함께 어떻게든 쌀산업 만큼은 회생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쌀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기대만큼 성과는 내지 못했다. 이는 한번 무너진 농업을 다시 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필리핀 농민 구세주 ‘KOPIA’
필리핀은 내년까지 쌀 자급률 100% 달성을 위해 식량자급달성 프로그램(2011~2016년)을 시행하고 있지만 쌀 생산기술, 우량품종 보급, 관개시설 등의 낙후로 자급률 100% 달성 가능성은 희박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필리핀 정부나 농민들은 구세주(?)를 만나면서 쌀산업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지난 2010년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 코피아)가 필리핀 뮤노즈에 설치된 것이다.
코피아 사업은 우리 농업기술을 빈곤국가에 전수하는 사업으로 농촌진흥청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코피아는 현재 세계 각국 16개소가 설치돼 있다.

▲ 열대지방 재배에 적합한 자포니카 품종 시범 단지 조성
코피아 필리핀센터는 우선 농진청과 국제미작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MS11(아세미)’ 등 5품종 및 필리핀 우량품종 2품종 등 7개 우량품종을 활용해 필리핀 벼 종자 생산 및 보급기반 구축에 나섰다. 
특히 현지 맞춤형 재배기술을 전파해 벼 생산성 향상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 및 이를 통한 쌀 생산 농민과 마을의 자립을 위한 마을발전 공동기금 조성·활용 등 새마을운동과 연계한 벼 우량종자 생산보급 단지 조성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농민들 교육에 사활을 걸었다. 코피아는 맞춤형 기술공여 원칙 아래 농업기술을 전수하되 의식개혁, 기술교육을 핵심으로 꼽고 있다. 스스로 자립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쌀 재배기술 등 전문지식이 절대 부족한 필리핀 농민들은 코피아에서 주관하는 교육에는 빠짐없이 참가할 정도로 열의가 넘친다. 이는 코피아 교육을 받으면 농가소득이 크게 향상된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농민들의 코피아 사랑이 대단하다.

■ 필리핀 쌀 자급률 100% 달성 가시화
코피아의 활약으로 지난해 일로일로 농민들은 ha당 수확량이 4톤을 넘어섰다. 현재 필리핀은ha당 평균 수확량이 2톤 내외로, 쌀자급율이 80%대에 머물고 있다. 부족한 수량을 늘리기 해서는 ha당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코피아측은 추진되고 있는 사업들이 농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전수된다면 향후 3년내 자급률 100%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필리핀 쌀 산업이 기지개를 펼 수 있었던 것은 코피아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코피아가 추진한 지역별 맞춤형 품종 보급과 재배기술 전파는 필리핀 쌀 산업이 재도약하는데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관광 휴양지로 유명한 세부에서 배로 2시간 떨어진 보홀 지역은 동남아 지역에서 당연히 재배되던 ‘인디카’ 쌀 품종에서 벗어나 ‘자포니카’ 쌀 재배에 나서 성과가 크다.

벼는 크게 온대벼와 열대벼로 나눠진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북지역에서 재배되는 찰지고 둥근 모양의 ‘자포니카’ 쌀을 온대벼라 하고,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열대지역에서 재배되는 길쭉한 모양의 찰기가 적은 ‘인디카’ 쌀이 열대벼이다.
보홀 지역 농민들이 자포니카 쌀 재배로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농진청이 개발한 ‘MS11(아세미)’ 때문이다.

코피아 필리핀센터 이정택 소장은 “290만ha의 넓은 토지를 보유하고 1년 3기작이 가능한 여건 속에서도 쌀을 수입해야 했던 것은 재배기술과 품종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다양한 쌀 재배 교육을 통해 1년 3기작이 가능해지면서 쌀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 현재는 단순 생산량 증대를 넘어서 품질 향상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발전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 열대지역 명품쌀 ‘MS11(아세미)’
‘MS11(아세미)’는 열대지역, 동남아지역에 재배될 수 있는 온대벼의 대표 품종이다. ‘MS11(아세미)’가 개발되기 전까지 자포니카 쌀은 기후조건 등으로 열대지역에서 재배될 수 없다는게 기본 통념이었다.

농진청은 자포니카 쌀도 품종 개발로 충분히 재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연구에 매진, 지난 2008년 국제미작연구소(IRRI)와 공동으로 세계 최초로 우리 쌀과 같은 밥맛을 가진 열대지역 적응 온대벼 ‘MS11’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개발과정을 살펴보면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쳤다. 농진청은 100여개 이상 벼품종과 육종과정에 있는 우수한 재료를 매년 필리핀으로 보내 현지 적응성을 검정한 결과 열대지역에서도 정상적인 생육을 나타내는 ‘진미’를 찾아냈다. 그 다음 단계로 열대 적응성인 ‘진미’와 밥맛이 좋고 병해에 강한 ‘철원46호’를 교배해 열대지역에서도 잘 자라고 수량성도 높으면서 병충해에도 강한 ‘MS11’가 탄생한 것이다.

아세미는 ha당 수확량이 4~5톤으로 현지 품종인 ‘IR72’ 보다 10% 가량 많고, 특히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기간이 약 86일로 현지 재배품종보다 최대 10일이상 짧아 1년 3기작이 충분한 품종이다.
특히 필리핀 국민들은 ‘자포니카’ 쌀을 대규모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소비되는 고급쌀로 인식돼 ‘열대쌀’보다 2~3배 비싸 ‘아세미’ 재배로 전환하는 필리핀 농민들의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아세미는 이상기후로 인해 국내 쌀 생산량이 극도로 위축될 경우 열대지역 식량기지에서 우리가 선호하는 밥맛을 가진 쌀을 생산할 수 있어 급등하는 국제 쌀 가격에 대처하고 국제 쌀 수입시장을 다변화해 수급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필리핀을 중심으로 태국, 라오스 등에서도 아세미에 대한 관심이 높아 아세미 품종은 열대지방 전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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