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는 더 받고 소비자는 덜 내게…농협 키우면 가능”


농식품부, 농협중심 ‘패커육성·물류센터·직거래’ 추진 계획

중복투자·고비용정책 등 정책실패 여론 비등




‘생산자는 5~10% 더 받고 소비자는 10~20% 덜 내는 유통구조’.
박근혜정부의 농업정책 골자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만큼은 역대 정권초기에 내세웠던 ‘유통구조개선’ 문제에 대해 일단락 짓고 넘어가겠다는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달 22일 가진 농림축산식품부 대통령 첫 업무보고에서도 이를 지적하며, “고질적인 문제가 길고 복잡한 유통구조인데 첨단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해 직거래를 늘린다든가 또 유통비용을 줄여나간다면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책강구를 강력 지시했다.
생산자는 ‘더 받고’ 소비자는 ‘덜 내는’ 유통구조 실현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농식품부가 제시한 기본계획서를 바탕으로 실천 가능성과 개선 여부를 가름하기는 진단이 어려운 현실이다. 허나 과거 정부의 정책과 비교하는 차원에서 이를 검토한다면 어느정도 셈법도 가능하단 판단이다.


농협 주도의 직거래 활성화

농식품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유통단계 축소 대책을 우선 개선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산지에선 규모화·전문화로 안정적 판로 물량을 확대한다.
정부와 농협간 협력을 통해 전속출하조직을 2016년까지 600개소로 늘려, 출하액 1조1천억원(2012년)에서 2조5천억원대로 증가시킬 방침이다. 지역조합 생산농산물을 농협 판매조직으로 계통출하토록, 계통출하 우수조합에 대해 우선 지원 정책을 펴기로 했다. 여러 조합이 함께 경제사업을 수행하는 조합간 공동경제사업법인을 지난해 26개소에서 올해 28개, 2016년까지 42개소 핵심조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5대 권역별(안성, 밀양, 장성, 강원, 제주)로 도매 물류센터를 건립키로 했다. 2015년까지 완공해 운송비 등 물류비용의 50%를 절감토록 계획을 짰다. 물류센터는 대형유통업체, 외식업체, 전통시장 등과의 판매사업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농협의 12개 공판장을 통합해 운영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통합전자거래를 활성화키로 했다.
소비지에서는 계통 및 대외 판매채널 확대로 소비자 편익을 최대한 제고키로 했다. 지역조합 하나로마트 2천70여개소의 체인화로 계통 판매를 확대하는 한편, 여건별로 대도시 농협 판매모델을 판매장 확충형, 온라인 사업형, 학교·기업급식형, 기획행사형 등으로 설정해 경제사업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축산물의 경우 선진국형 도축·가공·유통 일관시스템인 패커(Packer)사업을 확립키로 했다. 기존 축산물이 생산자가 수집상을 거쳐 공판장(도축장)과 도매상을 지나 유통업체 소매점에 이르러서야 소비자를 접하는 구조를, 생산자와 대형패커, 유통업체 소매점만 거치는 단계 축소 계획인 것이다.
정부는 우선 농협중앙회 중심의 협동조합형 패커를 육성키로 했다. 농협계통의 정육점, 정육점식당 확대를 통해 합리적 소비자가격을 유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농산물 직거래 확대 계획도 세웠다. 소비지 접근성을 고려해 직매장과 직거래 장터를 늘리고, 싱글·고령층·맞벌이가구 등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배송하는 ‘꾸러미’를 활용키로 했다. 산지유통조지고가 소매업체 간 직거래 확대를 위한 IT기반을 확충해 새로운 유형의 직거래를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도매시장 유통문제도 손 보기로 했다. 경매로 인한 가격 급등락을 보완하기 위해 정가·수의매매 확대 방안을 마련하고 우수 도매법인에 대해서는 지원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출하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파렛트 단위의 품목별 최소 출하물량을 설정하는 등 물류비용 절감방안도 강구키로 했다. 또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에 대한 시설현대화 계획도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정부의 농산물 수급정책 실패를 거울삼아, 수급조절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해 품목별 수급상황을 공유하고 정책 결정시 이해관계자 이견 등을 조정해 최종 결정키로 했다. 수급조절 매뉴얼도 마련해 품목별 가격수준에 따라 조치할 정책수단을 정형화해 수급문제 발생시 신속 대응한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중복되는 계획…“그나물에 그밥”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가 농산물시장을 찾아 경제정책의 첫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봐서는, 현정부의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상당하다는 여론이다. 대통령 주재 첫 업무보고에서의 주요 정책도 유통문제, 주요 언론의 유통담당자를 끌어모아 설명회까지 벌이는 농식품부의 행보 또한 유통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논 유통구조개선 대책에 대해 지적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어 문제다. 먼저 유통단계를 축소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한국사회의 환경에 의해 조성된 유통단계인 만큼 간과해선 안된다는 현실론까지 가세하고 있다.

정부는 산지유통인을 제도권내에 편입시키거나 경쟁을 유발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내세우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특단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출하작물을 중간단계없이 농협 등을 통해 포장, 가공, 판매까지 일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나, 산지유통인들이 담당해 온 인력지원을 통한 경작관리, 자금융통, 보험기능 등을 어느선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로 남는다.

농협에 대한 중복투자 일색이란 주장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5대권역별 물류센터 건립이나, 협동조합형 대형패커 육성, 지역농협 모델발굴 및 직거래 등 모든 유통정책이 농협을 거치도록 계획하고 있다는 것. 유통구조개선책이라기 보다 ‘농협구조육성책’이 타당한 제목이라는 지적도 거세다. 중복투자에 고비용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따지고 있다.
농협이 농산물을 공급할 경우, 정부의 기대와 달리 가격이 싸다는 보장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하나로마트나 농협 직매장의 농산물 가격이 재래시장이나 다른 대형매장들과의 가격비교에서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게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이에 대해 농협측은 “품질 대비 공급가격이 결코 비싸지 않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여론이다.

농협이 농산물 물량을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고비용 인건비와 저장 유통비 등을 고려할 때 소매점들에게 매력적인 거래처가 될 수 없는 현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유통전문가는 “농협직원의 인건비는 같은 일을 하는 다른 할인매장 직원보다 대부분 높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농민에게는 비싸게 사고 소비자에겐 싸게 판다는 모순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농협은 왜 하지 못했는지를 검토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미 설립돼 있는 유통시설을 무시하고, 대도시에 도매물류센터를 확충한다는 발상은 중복투자일 뿐만 아니라, 기존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부는 리스크 줄이고, 농민들 협동으로 나아가야”

결과적으로 박근혜정부의 농산물유통구조개선 대책은 수급조절위원회를 제외하면 매 정권마다 시도했던 정책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수급조절위 조차 다른 정책의 정당화를 위한 요식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유통개혁의 실패가 자명하다는 분석도 섣불리 나오고 있는 터다.
전문가들은 이미 내세웠던 정책보다는 농민 중심의 지속가능한 유통구조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의 정책대로 직거래 물량을 아무리 늘려도 유통량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겠냐는 반문이 그것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농민 중심이란 개념은 소비자를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라, 아무리 힘들여 농사지어도 생산비조차 보호받지 못할뿐더러, 소비자에게 욕먹는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국농산업경제연구소 이헌목소장은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정도로 가야한다”면서 “품목별 농민들의 진정한 협동으로 나아가고,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게 정부가 제도를 마련하고, 사업을 잘하는 조합이나 영농법인을 품목별 중심사업체로 키워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원리에 맞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유통 전문가는 “지금까지 유통구조가 개선점을 못찾고 제자리걸음을 거듭한 것은 영농현장을 겉도는 정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라며 “떼어낼 혹이 있다지만 그조차도 신체의 일부란 점을 간과해선 안되고, 기존 전속출하조직이나 물류센터, 산지유통인 등의 개선점을 먼저 찾아내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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