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곡물급등 대책, ‘허둥지둥’ 무대책…농민단체 불만 성명 잇따라

젖소 숫송아지 1만원에도 거래 ‘뚝’, 육우농가 30% 포기



국제곡물에 얽힌 갖가지 문제들이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사룟값부터 충격을 받게 될 축산분야는 벌써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질 누수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은 쇠고기 등급 ‘마블링’ 기준을 빼겠다고 발언해 부처 실무진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곡물파동으로 비상이 걸리면서 허둥대는 모습이 여실이 드러난 꼴이다. 현장 축산농민들은 정부가 열거하고 있는 대응책이 비현실적인 ‘재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정부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 부재’ 현주소 속에 생업을 접는 농가가 늘고 있다.


부처 내 ‘따로 노는’ 쇠고기 등급 정책

서 장관은 지난 18일 국제 곡물가 상승에 따른 사료업계 현장 점검 차원에서 인천에 위치한 배합사료업체를 찾았다. 곡물을 원자재로 쓰고 있는 업계의 부담을 듣는 자리에서, 서 장관은 “(소고기)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곡물을 쓰고 있다. 쇠고기 1kg을 만들기 위해 곡물 7kg을 먹여야 할 정도로 소비가 크다”면서 “마블링은 국민 건강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쇠고기 등급제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 장관의 전언을 고려할 때 등급기준에서 마블링을 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서 장관의 등급기준 발언이 퍼지면서 농식품부 실무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등급판정 실무를 담당하는 축산물품질평가원 관계자들이나 농식품부 담당자들은 등급기준의 ‘마블링’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뿌리내린 고기 ‘구이문화’를 간과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구이요리에서 마블링이 좋은 쇠고기는 맛과 부드러운 식감에서 선호도가 높은 현실이다. 이같은 쇠고기 육질을 위해 곡물사료 급여 비중을 높일 수 밖에 없고, 당연히 등급도 높게 매기게 된다. 서 장관의 발언은 이같은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농식품부는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냈다. 지난 22일 낸 자료에서 “소고기 등급기준에서 마블링을 빼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며 “곡물사료를 덜 먹이고 우리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소고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계획에는 소고기 근내지방도(마블링) 등급기준 조정·변경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축산물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마블링 관련 등급기준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얘기인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설명”이라며 “더우기 곡물사료를 덜 먹이고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겠다는 완벽한(?) 계획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못찾는 특허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또 “장관과 실무자들의 발언이 다른 것은 심도있는 검토와 논의 없이 임기웅변식의 답변을 늘어놓는 ‘땜방정책’에서 나오는 잦은 실수로 풀이된다”고 지적했다.


현장과도 ‘따로노는’ 전시행정

농식품부가 내놓은 곡물가 상승대비 대책은 일단 현장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약발이 없다’는 이유다.
정부는 최근 애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며, 이에 대한 축산분야 대응책으로 사료구매자금 융자지원, 조사료 쿼터 확대, 사료업체 원료구매자금 지원 확대, 군부대 내 조사료 자원 축산농가 공급 등을 발표했다.
축산농가들의 반응은 ‘그럼 그렇지’였다. 현실적으로 당장 사룟값이 오를 경우 보탬이 될 수 없는 ‘그림의 떡’이거나 미비한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장 한우협회가 성명을 냈다. 한우협회는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미국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농민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선제적 대응으로 축산업을 살리면서, 물가까지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아무리 살펴봐도 국제 곡물가 상승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한우 암소 수매대책 ▲한우 국내 자급율 법제화 ▲사료안정기금 설치 ▲폐업보상비지원 등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한농연도 21일 성명을 내고 “축산농가 보호 및 축산물 가격안정을 위한 사료가격 안정기금의 조속한 법제화를 요구한다”면서 “아울러 사료곡물 비축제 도입, 하천부지 내 조사료 재배 허용 등을 통해 사료가격 변동에 대한 안정적 축산 생산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정부의 빠른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축산업 떠나는 농가들

최근 육우자조금준비위원회가 의무자조금관련 의향조사를 실시하면서 확인한 결과, 30%에 해당하는 농가들이 축산업을 포기했거나 한우로 전업했다는 전언이다. 목표를 상실한데다 사룟값 폭등 소문까지 퍼지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농촌 풍경이다.
때문인지 젖소 숫송아지 시장거래가 눈에 띠게 줄고 있다. 많은 농가들이 육우 사육의사를 접었다는 뜻이다. 송아지 한 마리에 1만원까지 바닥을 치던 올 1월초 시세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농가들의 사육의욕이 더욱 낮아져 젖소 숫송아지는 아예 애물단지로 전락한 게 현장 소식이다.

경기 이천에서 젖소를 키우는 전승언(42)씨는 “그동안 수송아지를 처분하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번식우 사육에만 전념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육우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면서 “현재 숫송아지 10여마리가 있지만 거래가 끊긴 상태인데다, 사료비 부담까지 가중돼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연말 가격폭락이 예고된 한우농가들도 불안한 기색이 깊어가고 있다. 한우 수급조절을 위해 암소 도태를 장려하면서 당초 도태분 10만두에 대한 계획이 거의 달성됐다. 오히려 암소 조기출하 현상까지 벌어지며, 농가들의 불안심리가 반영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경기 화성에서 한우 50여마리를 사육 중인 한 모(46)씨는 “인근 한우농가들이 감축장려금을 타기 위해 도태 약정에 몰리고 있다”면서 “연말에 값이 얼마나 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사료가격이 급등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에 사육두수를 줄이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전했다.

이미 성수기에 가격폭락을 경험한 돼지사육농가들도 의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기 포천에서 비육돈 1천여마리를 키우는 정 모(51)씨는 “‘물백신’문제가 터지고 폭염으로 폐사율도 높았던 여름인데, 출하돈 가격까지 폭락하면서 생업을 접은 농가가 부지기수”라고 말한 뒤 “폐사율이 높아지더라도 현재는 인근 식당과 군부대 등에서 공급하는 잔반으로 사료를 대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정 씨는 이어 “최근 가축분뇨 단속까지 나오고 있어, 양돈업을 그만두란 분위기로 가고 있다. 앞날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축산차량등록제 “족쇄 될라”

농식품부는 지난 23일부터 가축 전염병의 효율적인 방역관리체계 마련을 위해 축산관련시설에 출입하는 차량의 출입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축산차량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내년 1월1일부터는 차량무선인식장치(GPS) 장착을 의무화한다는 계획아래 등록을 시작했다. 대상 차량은 가축사육시설(300㎡이상), 도축장, 집유장, 사료제조장, 가축시장, 종축장, 부화장, 집하장 등이다. 약 30만대에 차량 등록제를 실시한다.
앞으로 등록차량들은 GPS와 등록차량스티커를 달고, 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에 등록해 농장 출입내용에 대해 정기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문제는 이로인해 농장주들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도 있다는데 있다. 정부측은 관리기관이 축산농장 외 장소 출입내용에 대한 영업정보를 공익목적 이외에 타용도로 사용·제공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령에 최소한의 정보를 수입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어 사행활 침해로 볼 수 없다고 부연하고 있다. 개인적인 이동경로 정보는 GPS단말기 자체내에 3개월분만 보관하고 이후의 자료는 자동삭제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주위 시선은 못믿겠다는 반응이 많다. 어찌됐건 축산업을 한다는 이유가 죄인으로 몰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농가들은 괴롭다고 얘기하고 있다. 포천 비육돈 농가인 정씨는 “성범죄자처럼 발찌를 차고 다니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든 일”이라며 “그만큼 돈을 버는 일이라면 버티겠는데, 여러 가지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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