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배움과 연구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최형팔 농촌지도자보성군연합회장은 시골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농업인이다.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 회장은 서른 살 무렵 돌연 시골로 내려왔다. 대도시에서 멋들어진 사회생활을 기대하셨던 부모님은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내려온 아들을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최 회장은 “보성군을 통틀어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지만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뒷바라지한 자식이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겠다고 하니 난리가 났다”며 “도시에서 하는 일은 계속 꼬여가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사느니 차라리 아버지 밑에서 농사일을 배우자는 심정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아들의 포부를 이해하고 본격적으로 농사일 전수에 나섰다. 눈으로 보기에는 막무가내로 짓는 농사일로만 생각했던 그는 부모님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삽질을 해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작물을 심는 것도 원칙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특히 최 회장은 부모님이 부업으로 재배하던 ‘누에’에 주목했다. 1980년대에는 누에 농사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아 재배농가들이 전무했다. 반면 누에는 당뇨병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져 누에를 찾는 사람들로 넘쳤다.

최 회장은 누에 농사를 잘 키워보면 ‘돈이 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누에 농사짓는 법을 차근차근 전수받은 최 회장은 본격적으로 누에농사에 뛰어들었다. 예상대로 누에농사는 대박을 쳤다. 1kg에 8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보성군 인근 도시인 장흥군, 순천시 등을 통틀어 누에 농사는 그가 유일해 시장을 독점했던 것이다.

그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며 “1990년 중반을 넘어서야 누에농사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10년 넘게 누에 농사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누에 농사로 ‘대박’을 친 그는 덕분에 3자녀 모두 대학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지난 2007년 후발주자인 농가들이 무서운 속도로 누에 재배에 뛰어들자 최 회장은 과감히 누에농사를 접었다. 2009년부터는 씨감자 생산으로 작목을 전환했다. 농업기술센터 지원사업으로 씨감자 생산 시설을 갖추고 연간 6톤의 씨감자를 생산, 전량 농업기술센터로 공급하고 있다. 감자 주산지인 보성군은 강원도에서 씨감자를 공급받아 왔으나, 해를 거듭 할 수록 물량 확보에 애를 먹으면서 씨감자 자체 생산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최 회장은 현재 2만7천여평의 벼농사와 1천평의 고추농사, 1천평의 감자농사 등 왕성한 영농활동을 펼치고 있다. 규모를 더 늘리거나 신규작목으로 전환할 계획은 없다. 펼쳐놓은 영농활동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특히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연을 맺게 된 농촌지도자회는 그에게 의미가 크다. 농업도 배움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진리도 선배 농촌지도자를 통해 깨닫게 됐다. 농촌이 오늘날만큼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농촌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최 회장은 자부한다.
지난 2009년 보성군연합회장에 취임하고, 올해 연임에 성공한 최 회장은 임기내 농촌지도자회의 문호를 활짝 개방해 젊은 회원들을 비롯한 신규회원 영입에 전력을 다하고, 지역사회에 함께하는 봉사활동, 장학사업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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