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농업인·시인


일주일 동안, 네 차례 손님을 겪느라 몸이 조금 지쳤습니다. 손님 중에는 연락 없이 먼 곳에서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분이 두 팀, 나머지 두 팀은 오래전부터 약속을 하고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처음 손님은 여자분 둘이서 오셨는데 자동차로 한 시간 반 남짓 되는 거리에 사시는 분들로, 저의 셈법으로는 아주 먼 곳이지만 이분들은 이웃집에 마실 온 것처럼 와서 저녁 먹고 서너 시간 이야기 하다가 되돌아갔습니다. 시장도 가지 않고 평소 저희 먹던 반찬으로 마루에 뚝딱 뚝딱 차린 밥상을 마치 무슨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끌어안고 참 만나게 먹는 모습으로 하여 조금은 반찬 없는 밥을 대접한데 대한 미안함이 가셨지만, 방안에 들어앉아 시간을 잊은 듯 여러 이야기들을 할 때는 일찍 자는 버릇이 있는 저로서는 견디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두 분 다 잘 아는 사이라면 ‘자고 가지 않으려거든 어서 가시라’고 농으로라도 한마디 하겠는데 한 분은 처음 온 손님이어서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분들은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라 올빼미 생활형 이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시골, 그것도 외진 산골에 사는 사람의 습관을 헤아려 주기만을 바랄뿐이었습니다. 다행한 것은 다음날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그래도 견딘 것이지요.

두 번째 손님은 그 사흘째 되는 날 오셨습니다. 읍에 나가 하루 종일 일들을 보고 집에 돌아와 찬물에 씻으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은데 마침맞게 안식구가 저녁상을 차려 와서 잠깐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맛보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옷은 팬티만 걸친 채였고 저녁 밥상이 나면 제가 즐겨보는 음식에 대한 텔레비전방송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던 것이었습니다. 저녁 밥상이 막 끝나가려던 때였습니다. 문밖에서 ‘박 시인 박 시인’ 하고 누가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에크, 어떤 호랑이가 오시는군!” 저는 놀라 옷부터 찾아 입느라고 허둥대면서도 이 근동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근동에서는 저를 시인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으니까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뜨악하고 걱정스럽기만 한 마음이 먼저 생겼습니다. 저분이 누구냐를 떠나서 저의 적당히 피곤하고 달콤한 저녁시간을 뺏겨야 하니까요.

예고 없이 찾아온 여름 손님이 정말 호랑이처럼 무섭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다른 도리가 있겠습니까, 반갑게 맞아들이고 없는 찬이나마 끼니때이니 새로 저녁상을 차려드리고 불편하시겠지만 하룻밤 묵어가시라고 예의 반 진심 반으로 말씀드릴 수밖에요. 이런 경우 대화는 겉돌게 마련입니다.  자주 만나고 생각도 비슷해야 관계가 건강해지고 긴장이 유지되는데 평소 이렇다 할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다가 이런 경우가 생기면 저는 저 자신이 시험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오로지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만 듭니다.

세 번째 오신 손님은 그 다음날 오셨습니다. 밖에서 어정거리는데 전화벨 소리가 나서 달려가 받으니 까마득히 잊혀졌던, 그러나 그 이름이 말해지는 순간 옛날의 재미있었던 일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바로 눈앞에 펼쳐지며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중인데 저 사는 곳까지 가면 다시 전화 하겠노라고 해서 전화만 하지 말고 꼭 좀 들렸다가라고 제가 오히려 부탁을 했습니다. 두 시간쯤 지나서 그 분들이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저희가 저녁 걱정을 할까봐서인지 “점심을 너무 늦게 먹게 되어서 배가 더부룩하니 저녁은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고 미리 말하며 근처에 묵어갈 만한  펜션 같은 게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괜찮다면 저희 사랑채에서 묵어가시라, 집이 없다면 모르지만 내 집 놔두고 그럴 법이 있겠느냐’고 나무라다시피 해서 하룻밤을 주저앉혔습니다. 밖에 전등을 내걸고 시장에 가서 사온 횟감과 조개들을 구워서 둘러앉아 밤늦도록 술을 마셨는데 그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곳을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나려한다. 언젠가는 꼭 찾아가봐야 될 곳으로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그러자 같이 온 분이 물었습니다. “상대편이 반갑게 대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아 그거? 전화 한 통화 딱 해보면 알 수 있어.” 모두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결 하나에도 묻어나서 전달되는 법인데 이 앞에 왔다간 분들은 내게서 무슨 맘을 읽었을까 생각하면 잠깐 아찔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그 다음날 오신 손님들은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정말 괴로움 속에서 맞이해야 했습니다. 약속이 없었다면 떼버리고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만 미리 약속한, 인터뷰 차 온 분들이어서 더욱 괴로웠습니다. 사람이 지혜가 있었으면 전날 술을 조금만 먹었을 텐데 젊어서 이후로 그렇게 마셨으면서도 술을 모르는 미욱함이라니. 여름 손이 무섭니 어쩌니 해도 정작 무서운 것은 자기절제와 됨됨이 없음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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