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농업인·시인


긴 가뭄 끝에 비가 오니 대지가 갑자기 생기를 띱니다. 좀 더 그럴듯하게 말한다면, 비가 와서 뿌리로 물이 스며들기도 전에 식물들은 늘어졌던 이파리들을 펼칠 대로 다 펼쳐서 온몸으로 비를 받아들였습니다. 식물들의 향연이 빗방울이 떨어지면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것은 어찌 보면 대자연이 지어내는 한편의 웅장한 교향곡이며 서사시였습니다. 바다 저 건너에서부터 바람에 실려 온 구름이 하늘을 검게 드리우자 비올 것을 식물들은 미리 아는지, 아니면 비의 전령사 바람이 귓가에 속삭여줘서인지 삽시간에 온 대지는 측량할 수 없는 그들의 수런거림으로 가득차고, 이윽고 낮고 느린 비의 탄주가 시작되자 이파리들은 각기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습니다. 이따금 격정적인 바람이 불어오면 파도처럼 출렁이며 산은 우우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숨이 막힌 듯 순간순간 절대 정적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저도 참 한가하단 생각이 문득 듭니다. 비가 오면 그냥 오는 게지 거기서 무슨 교향곡이 있고 서사시가 있겠습니까? 글 쓰는 사람들이 자칫 저지르기 쉬운 말장난이기도 한 것이지요. 사실 비가 와서 일을 못하니 몸이 한가하기도 합니다. 또 몸이 한가하니 마음도 덩달아서 오랜만에 오는 단비에 여느 비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고요.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지어내진 것이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비가오니 다시 풀 세상이 되었습니다. 두어 달 가까이 싹 틔우거나 자라지 못했던 풀들이 사람 발길 닫는 앞마당 한 가운데만 빼꼼히 놔두고는 천지사방 풀 안 나는 데가 없습니다.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진짜 풀 세상임이 분명합니다. 특히 한 달 가까이 하얗기만 하던 깨밭이 비온 뒤 사흘이 지나자 바늘 끝 하나 찌를 데 없이 융단의 섬모처럼 풀이 나서, 말면 도르르 말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물론 깨 종자도 뿌린 대로는 고루고루 잘났습니다. 깨는 다른 곡식들과는 달라서 싹이 잘 틉니다. 씨알이 작으므로 조금만 습기가 있어도 싹이 트고 조금만 말라도 트지 않으니 이른 놈과 늦은 놈이 서로 고르게 자라지 못해서 벨 때 여러 번 베는 일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워낙 말라있던 땅에 있다가 비를 맞은 것이라 모두 한날한시에 싹이 텄습니다.

하지만 저 풀과 함께 자라는 깨밭을 어찌 매야 할는지요. 비가 오고난 뒤에 밭을 갈아서 종자를 뿌리면 풀보다는 깨가 먼저 나서 자라므로 밭매기가 수월합니다만 이거는 아니다 싶게 풀과 함께 나버렸으니 답답합니다. 깨를 적당한 간격으로 골라 세워 두고 나머지와 풀은 득득 긁거나 뽑아버려야 되는데 융단 같은 풀 속에서 이제 새끼 손톱만한 떡잎을 가진 깨를, 갈아엎어버리고 다시 뿌려야할까요? 그러자면 너무 늦은 것 같아 그도 못할 일입니다. 비와서, 땅이 질어서 한가함이 실은 대책 없음의 한가함인 것이라 가뭄 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비를 보고 무슨 교향약이니 시니 하는 게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깨가 조금만 더 자라면 죽으나 사나 붙어 앉아서 매고, 또 매는 데까지 매다가 안 되는 놈은 갈아엎어서 메밀이라도 심어야 할까 싶습니다. 그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지요.

자꾸 옛날이야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 깨밭 조밭을 매야했던 우리 어머니들에게 제초제는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농약을 만지고 쓰지 않은지 30년이 가까운 지라 지금은 그 이름도 가물가물 하지만 특정한 풀을 나지 못하게 하는 선택성 제초제는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름한철 뜨거운 뙤약볕에서 김을 매다보면 지금도 옷 한 벌쯤은 예사로 삭아서 너덜거리는데 삼베 나서 옷 해 입던 때의 그 적삼에서야 성긴 올 가닥가닥이 베인 눈물 같은 땀으로 말하면 어디 한 벌로 감당이 되었으리요. 기술의 발달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 끼치는 것을 생각하면 제초제가 끼친 영향도 문화 경제적으로 녹록지만은 않다 하겠습니다. 제 이야기가 제초제를 두둔하는 것이 절대 아님은 제초제 사용으로 인한 땅의 황폐화를 겪어보신 분들은 십분 아시리라 믿습니다. 적게, 단기간에 걸쳐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끼친 여러 나쁜 점은 지금에 와서는 앞서 말씀드린 긍정적인 면을 몇 번이나 덮어버릴 만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뙤약볕 아래서 옷을 삭히고 호미 끝을 무디게 하면서 한 땀 한 땀 김을 맸던 농법이 오히려 이 시대에 새롭게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했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늙은 농민들은 이제 좀 땅에서 비켜서달라고 했다더군요. 이 나라의 농업을 여태껏 지켜온 사람들이 누군데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한답니까? 고위직에 있거나 오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말할 때 흔히 ‘저도 농민의 자식으로서’라고 하는, 최소한의 수식적 감정도 없는 그분은 뙤약볕에 밭 맬 걱정해보지 않은 사람의 아들이기 십상이겠지요. 물러서야 할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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