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농업인·시인


지난 일요일엔 모내기를 했습니다. 참 우여곡절을 겪은 모라 끝내고 나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열흘 정도는 더 늦게 심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일찍 심게 되었습니다. 항상 남들보다 맨 늦게 심다시피 했는데 이번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이른 것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진 것과 모판흙에 거름을 섞은 탓에 모가 정신없이 크며 군데군데 누렇게 떠버리는 통에 초벌 로터리 한 다음날 재벌하고 또 바로 그 다음날 모를 냈습니다. 씨나락 뿌릴 때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하더니 모내기 하는 것까지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는군요.

앞으로도 문제입니다. 이제 일주일쯤 지나면 제초 목적으로 우렁이를 사다 넣어줘야 되는데 남들보다 그렇게 먼저 우렁이를 넣어 놓으면 들판의 왜가리 백로 청둥오리들이 얼씨구나 하고 떼를 지어서 저희 논에 달려들 게 빤하기 때문입니다. 어린모를 이들이 밟고 뭉개면 흙속에 묻혀 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논둑에 마냥 지켜서 있을 수도 없고 허수아비 같은 건 세워봐야 효과도 없습니다.

일찍 모를 심으면 또 싸라기가 많이 생기며 쌀이 적게 난다고 합니다. 많이나 지으면 모르겠습니다만 남의 동네 들판에 짜잔하게 겨우 1200평의 농사를 지으면서 이렇게 남 알 턱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남의 손, 남의 기계를 빌려야하니 값을 주긴 해도 때로는 구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 신문과 방송엔 이런 뉴스가 나오더군요. ‘쌀값은 계절진폭이라 하여 수확기에 가장 싸다가 이듬해 봄부터 비싸지는 것인데 지금 쌀값이 오히려 수확기보다 싼 역진폭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면 다시 수확기 쌀값이 더욱 떨어지고 시중 쌀값과의 차이를 메워주는 직불금도 낮아져 결국 농가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전국의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재고미도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정부가 가지고 있는 묵은쌀과 수입물량을 시중에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는 뉴스 말이지요.

한 2~3년 전이나 되었을까요? 가을 추수 때 쌀값이 80kg 기준 12만 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만일 금년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찌해야 될까요?
속으로 가만히 옴니암니 따져보니 마지기당 평균 4짝이 나온다고 잡으면 1200평 한필지당 24짝인데 15만원씩으로 계산해야 360만원의 수익이 생깁니다.

이것은 물론 조수익이어서 농비를 제외하면 순수익은 채 200만원이 되지 못하는데, 가을 쌀값이 지금 같아선 어찌될지 모르니 아무리 따져 봐도 계산이 나오질 않습니다.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든다던 정부의 속셈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저는 소비자와 직거래 형태로 팔고 있지만 시중 쌀값이 떨어져서 유기농쌀과 가격차가 많이 벌어지면 소비자 분들에게 미안하고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쌓아놓고 안 팔수도 없는 일이고요. 적으나 많으나 농사짓기가 처음부터 왜 이렇게 어려워지는지 참 답답하기만 합니다.

양파도 일찍 거두었습니다. 작황이 부실하다 못해 너무 형편이 없으니 풀만 어찌나 무성하게 자라는지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랭이는 한번 무성하게 절어버리면 양파는 하여간에 비닐을 걷어낼 재간이 없습니다.

제초제로 태워버리는 방법을 쓸 수가 없으니 풀이 무서운 거지요. 그래서 서둘러 비닐부터 걷어내고 알량한 거 세발 가다가 하나씩 거두었습니다. 되어가는 품새로 볼 때 작년의 5분의 1 수준이나 되려니 했는데 막상 보니 그 어림반턱도 되지 못해서 400평 남짓의 밭에서 겨우 37망 담고는 끝이었습니다. 날은 또 얼마나 덥던지 한나절 일하고 나면 한나절은 일하고 싶은 마음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 짜잔한 것을 나흘 동안이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웃었지요. “일 간풋해서 좋구먼” 하고요.

그나저나 몇 년 동안 저희 양파를 사주신 분들에게 미안해서 어째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즙이 필요하신 분에게는 즙으로, 생양파가 필요하신 분들에게는 망으로 몇 년을 주고받았는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으니 탈입니다. 특히 즙을 찾으시는 분들은 음식이기보다는 약으로 드시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데서 구입하셔야 되는 번거로움을 드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 손해야 이제 와서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 원인이었던지 간에 짓던 농사가 한번 저렇게 되고나니 마음에 정이 떨어져서 내년에는 다시 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밭둑의 감나무 밑에 앉아서 땀을 들이며 한번 생각에 잠기면 이상한 몽환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흐르는 구름 불어오는 바람 새소리들 무성하게 자라는 풀과 저 돌멩이들’ 걱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욕망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욕망하는 몸뚱이는 지금 여기 있고 저는 어디로 훨훨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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