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농업인·시인


더덕을 심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덕 씨앗을 밭에 뿌렸습니다. 거름 뿌려서 한 번 갈아엎어 놓은 땅을 다시 한 번 더 갈아서 쇠스랑으로 고르고 비닐을 씌운 다음입니다. 더덕 종자는 작년 가을에 구입해 둔 것입니다. 변산면에서 유일하게 더덕 농사를 지으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데 작년 가을에 마른 더덕순 밭에서 종자를 따시기에 1kg을 부탁했더니 잊지 않고 남겨 뒀다가 주신 것입니다. 저도 더덕 농사는 십년도 훨씬 전에 한 번 지어 봤지만 경험이 없어서 거의 실패했기에 이번에는 그 할머니에게 재배 방법까지 꼼꼼히 배웠습니다. 그러긴 해도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대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밭과 제 밭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도구가 다르고 또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선 경운기로 두 번 삭 갈아서 덩이진 흙이 없도록 했습니다. 트랙터 건 경운기 건 로터리 작업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니까요. 대신 쇠스랑으로 비닐 한 줄 씌울 수 있을 넓이만큼 고르고 비닐을 씌웁니다. 다시 한 줄 고르고 또 비닐을 씌웁니다. 이러면 고랑만 발자국정도가 생길뿐 비닐두둑은 흙이 부드럽겠지요. 그렇게 한나절을 걸려 세 두둑을 만들었습니다. 팽팽하고도 반듯하게 씌워진 까만 비닐 두둑이 햇빛에 반짝입니다. 쇠스랑을 짚고 서서 바라보노라니 반듯한 것이 기분이 좋습니다.

농사라는 것도 어찌 보면 과정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참 우습지요? 비닐 두둑하나 비뚤하든 말든 농사 잘돼서 비싸게 팔아야 좋은 것인데 그런 결과를 따지지 않고 과정이라니, 하지만 정말 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가 트랙터를 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제 농사 규모나 종류에 비해 과잉 기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육중한 기계의 요란스러운 소음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런 농작업을 보노라면 마치 딱딱한 쇠뭉치가 부드러운 흙을 유린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트랙터 바퀴에 다져지고 이겨져서 땅은 딱딱해지는데 그 위의 흙은 밀가루처럼 되어서 조그만 비에도 흘러내리고 또 쉽게 굳어집니다. 경운기는 그래도 땅이 갈아엎어질 때 손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적당히 물기 있는 흙이 쟁기 끝에서 부드럽게 엎어지며 나아가는 그 느낌이 눈과 손을 통해 그대로 제 머리와 가슴에 전해 옵니다. 땅에 사람이 좀 더 밀착되어 있어 경운기는 그 중간 매개 역할만 하는 것이지요.

오후에는 씨앗을 뿌렸습니다. 세 두둑이므로 씨앗 1kg을 그릇으로 되어서 정확하게 3등분 합니다. 씨앗의 부피가 아주 작으므로 고루 뿌리기 위해서는 씨앗에 모래나 흙을 조금 섞어야 되지만 바닥에 떨어지는 양을 짐작하기 위해서 저는 그냥 뿌립니다. 항상 겪는 일이지만 농작업 전 과정에서 씨앗을 뿌리는 일처럼 신경 쓰이는 일도 없습니다. 골고루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밀도를 맞추는 것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주신 할머니 말씀에는 ‘비닐 구멍 하나에 더덕 두세 개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더덕 씨앗의 발아율은 60%정도이므로 네다섯 개가 한구멍에 떨어지게 뿌려야 합니다. 한 두둑을 뿌려보니 대강 짐작이 나왔습니다. 3등분한 씨앗으로 한 두둑은 조금 뵙니다. 그러면 비닐을 한 두둑 더 씌워야겠지만 나머지도 그냥 그대로 뿌리기로 저는 마음먹었습니다. 드물어서 빈 구멍이 생기느니 뵌 데서 뽑아서 옮기면 되니까요.

더덕을 심으면서 저는 갈아둔 나머지 빈 땅에는 무엇을 심어야 하냐는 고민에 또 빠졌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심을 게 마땅찮습니다. 고추 몇 두둑 심고 나면 더 묵혀 뒀다가 이른 참깨를 심거나 콩이나 고구마 수수 기장 옥수수 따위 여름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겠는데 산에 닿아 있는 밭이라 짐승의 피해 때문에 뭘 해먹을 수가 없습니다. 꿩과 비둘기. 노루와 고라니. 그리고 멧돼지 이놈들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정부 보조와 자부담을 들여서 목책기를 500평쯤 설치했는데 이것을 온 밭에 다 늘려 치지 않는 이상은 이들을 막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덕을 좀 더 심어볼까 생각했습니다. 더덕은 보통 3년이 지나야 캘 수 있으니까 한해에 올해처럼 세 두둑씩만 계속 심어 나가면 3년 뒤부터는 세 두둑씩은 캘 수 있겠지요. 거기서 수입이 얼마나 생길지는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틀림없이 누가 한꺼번에 몽땅 사가 버리거나 제가 시장에 나가 팔지 않는 한 좋은 반찬거리라고 여기저기 조금씩 인심 쓰기 딱 알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땅은 건강해질 것 같습니다. 해마다 병충해에 번번이 지고 마는 고추농사 이런 것 하느라고 땅에는 지금 탄저균이 득시굴대는데, 구근류를 심어놓고 해마다 그 위에 부엽토를 긁어다 푹신하게 덮으면 유기물이 풍부한 땅이 되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더덕농사가 최고인 듯만 여겨집니다. 제 계산법이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농사에 발전이 없이 만날 그 타령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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