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다시 지었습니다. 이미 한 달 가까이 지난 이야기를 불러내 다시 쓰는 건 그 일이 제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기록되어야할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선 불에 타버린 소나무 두 그루부터 먼저 베었습니다. 불탄 화장실의 두 기둥을 지지해주고 있던 덕분에 함께 타버린 소나무는 베어놓고 보니 나이테의 수가 서른다섯 개씩이었습니다.

촘촘하고도 곧게 자란 곰솔(해송)이어서 밑동 위 두 토막씩은 다시 짓는 화장실의 기둥으로 맞춤했습니다. 기계톱을 대지 않고 손으로 베는 까닭은 천천히 톱질하는 그 시간에라도 나무에게 미안한 제 마음을 전하고 또 이 나무로 일을 하는 동안에 탈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인 소나무는 가지와 우듬지를 한 쪽에 말끔히 쌓아두고 이번에는 기둥으로 쓸 부분의 껍질을 벗겨냈습니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송진도 거의 나오지 않고 밑동이어서 쇠처럼 단단하고 무거웠습니다. 그 껍질을 다 벗기고는 전날 고르게 해두었던 터의 주추를 놓을 자리에 땅을 다졌습니다. 사각으로 줄을 띠고 네 귀퉁이 주추를 놓는 일까지 하루 한나절이 갔습니다.

비닐하우스에 모아 두었던 쓸 만한 목재들을 추려내 보니 예전과 같은 방식의 화장실을 지으려면 나무가 더 있어야 했습니다. 해서 형님의 트럭을 한번 빌려서 읍에 있는 목재소에 나무를 사러갔습니다. 각목 몇 다발, 송판 몇 장 사는데 이십만 원이 금방 나갑니다. 그러려니 짐작은 해도 오랜만에 어떤 물건을 살라치면 옛날의 가격만 떠올라서 꼭 속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그것들이 아니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지요.

사흘째 되는 날은 기둥을 세웠습니다. 이일은 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옆에서 잡아 주어야 수직추를 보고 각목으로 고정시키는 건데 공교롭게도 제 안식구는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가야 했지요. 그래서 가까이 있는 조카를 부르려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이제 열네 살인 제 아들과 함께 했습니다. 저 혼자 겨우 들어서 세운 생나무 기둥을 이 녀석이 움직이지 않게 붙들고 있는 것은 그것이 잠시 동안일지라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자꾸만 일이 깔끔하게 되지 않아서 속이 상합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기둥을 세웠습니다. 제가 굳이 어린 아들을 불러 함께 일을 하는 건 어릴 때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지 못했어도 제 할아버지가 목수셨고 아버지 삼형제 분도 모두 근동에서는 유명한 목수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 목수 일을 보고 자랐고요.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나 선생에게 배운 바가 없어도 집일에 남의 손을 빌리지는 않습니다. 제 아들 녀석도 그럴 것임을 믿기에 추위와 짜증을 들으며 잠시나마 같이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 어떤 일이 가장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집짓는 일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적어도 제가 겪어본 일 중에서는 그렇습니다. 그것은 작으나 크나 똑같습니다. 화장실처럼 작은집을 짓는다고 하여도 사용하여야 할 연장은 똑같고, 일의 순서나 방식도 똑같고 저는 또 호흡까지 똑같다 생각합니다. 아니 집이 작으면 큰집보다 시간도 재료도 노력도 덜 드니 일이 수월해서 호흡은 더 가볍고 손놀림도 경쾌하겠지요. 기둥을 세운 날로부터 다시 사흘 동안 저는 참 오랜만에 저를 잊어버리는 몰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채를 짓고 팔 년인가 구 년만에 또 사랑채를 지을 때 느꼈던 그런 것이니 깎고 다듬고 망치질 하는 행위 그 자체만 있을 뿐 온갖 유기물과 무기물, 머리와 발바닥, 입과 똥구멍으로 이루어진 저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엔 아침이 빨리 밝기를 바랐고 저녁 해가 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밥상을 앞에 두고 먹는 즐거움도 잊어서 오직 머릿속은 다음일의 공정을 그려보기에 바빴습니다. 제 아내에게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낮만 계속 된다면 쉬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기 때문일 겁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손이 실행하고, 손이 실행하며 몸에 새겨지는 경험이라는 것은 다시 머리를 움직여서 더 좋은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또 누구에게 간섭 받아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장실을 짓는 일주일 내내 날은 지독하게도 추웠습니다. 목덜미처럼 연한 살은 트고 갈라져서 쓰리고 따가웠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남은 제 인생에서 몸 바쳐서 이렇듯 즐거우면서도 나와 남을 이롭게 할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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