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모색 : 소농과 식량주권

기후변화와 농업, 먹거리의 위기는 자본주의적 개발과 산업화로 인해 초래되었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근본적 해결책은 당연히 자본주의적 개발의 틀에서 탈피하는 데에 있다.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화된 먹거리 체계를 다시 지역중심의 먹거리체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며, 기업이 아닌 소농에 의한 생산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산업적 농업 vs 소농 농업

전통적인 방식의 다각화된 곡물, 과일, 채소를 유기적으로 생산하는 복합영농이나 경종이 단작화된 대규모 집약적 영농보다 단위면적 당 생산성이 더 높다. 에너지 효율성에 있어서도 소농의 생산이 더 우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학자인 M. 펄만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농업은 수확된 식량 1cal에 대해 기계, 비료 등으로 2.5cal의 화석연료를 태우며, 거기에 가공·포장·수송에 드는 에너지를 포함하면 아침식사용의 가공품 3,600cal를 만드는 데에 15,675cal를 사용한다. 또한 270cal의 옥수수통조림 1개를 생산하는 데에 2,790cal를 소비하는 등 한 마디로 석유 위에 떠 있는 미국 농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농생태적 생산으로의 전환

2009년 11월 FAO(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농업잠재력의 86%가 토양 탄소 격리에 있다고 한다. 유기농업은 관행농업에 비해 토양 탄소 수준이 20~28% 더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전세계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게 되면 세계 온실가스의 11%까지 격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농업을 통한 기후변화완화의 많은 방법들은 기후변화 적응과 식량안보, 그리고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방법들은 토양의 유기물 수준을 높이는 것과 연계돼 있다. 이를 통해 식물영양분 증가, 수분보유력 증가, 더 나은 토양구조로 이어지며 결국 더 많은 수확과 지력의 향상으로 귀결된다.
또한 농업이 기후변화 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농지(토양)의 탄소격리(carbon sequestration) 효과는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9년 영국 토양협회에 따르면, 현재의 온실가스 측정체계는 토양탄소격리의 잠재력을 간과하고 있어 농업의 기후변화 극복에서의 역할이 낮게 평가되고 있다.

지난 50년간 과도한 화학비료와 에너지-자본 집약적 생산방식은 농지 1헥타르당 30~60톤의 토양유기물의 소실을 초래했다. 이를 전 세계적인 총량으로 계산하면 최소한 1500억~2050억 톤에 달하는 토양유기물이 소실된 것이다. 만약 이러한 토양유기물의 유실이 없었다면, 토양의 탄소격리로 인한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감소는 2200억~3300억 톤에 달했을 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현재 대기중 이산화탄소 과잉량인 7180억 톤의 30~46%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소농 중심의 생산을 통한 생물다양성의 회복

초국적 농식품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가뭄 등 악화된 기후여건에 대해 저항성을 지닌 GM작물의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생명공학도 전세계 곳곳에서 자라는 다양한 종자 속에 이미 존재하는 유전적 변이를 ‘발명’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생명공학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 있건, 없건 간에 수천 년간 농민들이 선발하고 재배한 다양한 종자는 미래의 작물 개량을 위한 주요 수원지이자 유전자 풀(gene pool)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는 작물은 12개 종(옥수수, 쌀, 밀, 콩, 감자 등)에 불과하고, 상업적 목적으로 재배되는 작물도 150종에 불과하다.

반면, 전 세계 소농들은 최소 5000종 이상의 종자를 가지고 있으며 산업화된 농업은 이의 3% 정도만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축종의 경우에도 농민들은 40여 종에 달하는 동물들을 키우고 있는 반면에 산업적 농업에서는 주요 5종(소, 닭, 돼지, 양, 염소)의 사육에만 집중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 먹거리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종다양성의 보호와 회복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수천 년간 종다양성을 지켜 온 소농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세계농식품체계의 탈피와 먹거리 이동거리의 축소

현재의 세계농식품체계는 지역 및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전 지구적인 범위로 확대시켰다. 초국적 농식품기업들은 운송의 과정에서 얼마의 석유가 낭비되든 해당 작물을 가장 싸게 재배할 수 있는 곳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먹거리의 이동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수송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낭비되며, 온실가스의 배출도 늘어나고 있다.

1992년 런던시립대의 먹거리 정책 교수로 있는 팀 랭(Tim Lang)은 푸드마일(Food Miles)이란 용어를 최초로 만들었다. 그는 이 용어를 만든 의도를 “먹거리 생산에 따른 숨겨진 환경적·사회적·경제적 영향을 소비자들에게 간단한 방식으로 부각시키는 것”으로 소개했는데, 먹거리의 이동거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세계농식품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며,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가까운 지역먹거리 운동이 확산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현재의 먹거리체계를 지역중심의 생산, 제철의 신선한 농산물의 소비로 전환하면 수송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과 농산물의 신선유지를 위해 투여되는 에너지와 포장 등이 줄어들어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보다 잠재적으로 10~12%의 감축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와 농업, 먹거리의 위기

기후변화와 농업, 먹거리의 위기는 자본주의적 개발의 과정에서 초래되었으며, 이를 농업적 측면에서 본다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과정에서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지배에 놓인 세계농식품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기업이 아닌 소농을 중심으로, 산업화된 생산이 아닌 중소 가족농의 생산으로 전환해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식량위기의 시대에 접어든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이를 위한 다양한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지역먹거리(로컬푸드) 운동과 학교급식운동을 비롯해 도시농업, 채소꾸러미, 지역순환농업, 협업과 대안적 생산자 조직의 사례 등 곳곳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생산(農)과 소비(食) 사이의 물리적·사회적·심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 속에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으로 인해 황폐화된 한국농업을 회생시킬 한국적 식량주권 실현의 길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다양한 노력과 더불어 정부차원의 지원과 농업정책의 변화가 꼭 필요하다. 중소규모의 가족농 중심이었던 한국농업을 지금처럼 규모화된 에너지-자본 집약적 농업으로 내몬 것은 역대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 때문이었다. 지금도 이명박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우면서 대내적으로는 소농을 퇴출시키고 농기업을 육성하는 거꾸로 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2012년 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유치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농업회생과 식량주권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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