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곡물시장 진출 선언, ‘그림의 떡’ 될 수도

국제적 ‘식량무기화’가 노골화되고 있는 가운데, 결국 우리나라가 공세적인 방법을 택했다. 국제곡물을 유통업체인 다국적기업들에 연연하지 않고 직접 확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허나 국제곡물시장은 4대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는 터라, 현실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것 자체부터 실현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어 정부의 행보가 궁금하다.



aT, 올해 10만톤 확보 목표

농식품부 산하기관인 농수산물유통공사(aT)는 지난달 25일 양재동 aT센터에서 삼성물산, 한진, STX 등 3개 기업과 ‘국가곡물조달 시스템’ 구축을 위한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국제 선물시장에 합작투자법인을 만들어 국제곡물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내외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aT에 따르면 aT와 민간 3사는 미국 시카고에 합작투자법인인 ‘aT 그레인 컴퍼니’를 만들어 국제 곡물시장에서 직접 옥수수·대두·밀 등의 곡물을 구입해 국내로 들여올 계획이다. 국제 곡물 유통물량의 85~93%를 장악하고 있는 4대 곡물메이저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 루이 드레퓌스, 붕게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시장에 참여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영제 aT 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곡물확보 전쟁이라 할 정도로 곡물 수급이 불안정한 시점에서 해외 곡물의 안정적 도입은 국가적 과제”라며 “투자협약을 통한 국가곡물조달 시스템 계획은 본궤도 진입을 위한 힘찬 비상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T 그레인 컴퍼니’는 앞으로 산지 엘리베이터(LB), 강변 LB, 수출 LB 등을 확보해 곡물 유통망을 구축하고 올해 내 콩 5만톤, 옥수수 5만톤을 국내로 들여올 계획이다. 5년 후부터는 총 215만톤의 곡물(콩 15만톤, 옥수수 150만톤, 밀 50만톤)을 안정적으로 조달한다는 목표다. 국내 소비량의 30% 규모다.

 “LB를 잡아라”

곡물의 분류내지 저장해 운송에 적합하도록 처리하는 시설인 LB는 국제곡물시장에서 살아남느냐를 결정하는 열쇠다. 곡물 유통시장은 LB를 보유해야만 하는 장치산업의 종합판이다. LB를 현지에 만들수는 있지만, 곡물을 확보하고 유통망을 뚫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4대 곡물메이저들이 중심이 된 진입장벽은, 신입회사의 시장진입을 호락호락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도 현지의 틈새를 공략하기란 쉽지 않은데다, 현지 업체를 인수합병(M&A)하겠다는 계획 또한 비현실적인 대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곡물조달 시스템 구축사업에 참여하려던 CJ가 불참을 선언한 것도, 계획의 불안요인을 내포하고 있어서라는 전언이다. CJ는 불참 사유로 “검토 결과 사업성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허나 속내는 비현실성에 무게를 뒀기 때문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곡물 확보를 위한 사업비 투자에 대한 효율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고, 곡물을 확보하더라도 국내에서 제값에 사용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LB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사업설명을 제대로 못한 부분도 CJ를 포섭하는데 실패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곡물메이저가 허락할까”

1960년대 자체 곡물유통회사를 구축했던 일본은 5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자체 곡물 매입량이 미미한 수준이다. 그만큼 전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4대 메이저들의 견제에 못 버티는 것이다.

미국법에 명시된 자국 선사에 의한 현지 운송 제도 또한 넘어야 할 산이다. 현지 선박들을 곡물메이저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송방법이 묘연해진다. 메이저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명령하는대로 따르게 되면 현재와 같이 ‘배당분’만 지급받는 형태로 남게 된다. aT가 사업목적으로 주장하던 ‘식량자주율 제고’라는 당초 취지는 물건너 가는 것이다.

여기에 5년간 3천억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목표 설정이 ‘거품’에 그칠 가능성도 높다는 비판이다. 올해 내에 10만톤의 곡물을 확보해 들여온다는 계획도 구체적 접근 방법이 부족하고, 5년 후 국내 조달 곡물의 30%를 감당하겠다는 얘기도 ‘뜬 구름 잡기’에 가깝다는 게 학계·사료업계 전문가들의 평이다.

농경연 관계자는 “투자 효율성이 낮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한 뒤 예산을 따왔어야 했다”면서 “안정적인 곡물 수급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할 국가적 과제임에는 틀림없으나, 내용도 없이 틀만 짜는 전시성 사업으로 끝내선 안되기 때문에 공론이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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