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 情과 禮의 결정체…한식세계화의 珍味

대인의 생활방식이 건강과 삶의 여유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 속도 우선주의 풍조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슬로우 푸드(slow food)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전통문화와 음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종가와 종가음식의 가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요란하고 화려할 것 같다거나, 현대인의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와는 달리 정성이 가득 담긴 소박하고 여전히 맛있는, 그렇지만 항상 내밀하고 신비스러웠던 종가음식이 이제 세상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종가음식은 맛과 멋, 정(情)과 예(禮)라 표현할 수 있다. 종가음식은 한결같고 정성이 담긴 맛과 항상 맛깔스러운 색과 모양을 유지하는 멋을 특징으로 한다. 아울러 종가음식은 나누는 정으로 지역사회 상부상조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관혼상제와 전통문화 계승의 주축 노릇을 해왔다.

농촌진흥청은 종가음식의 특질과 우수성을 바탕으로 한식세계화에 도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슬로우 푸드로서 한식의 인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종가음식이 그 핵심역할을 할 수 있다는 발견에서 비롯한다. 농진청은 아울러 종가음식에 과학성을 부여함으로써 가치를 높이고 음식과 문화를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 종가음식, 그 맛깔스러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향토음식과 전통 식문화의 가치가 부각하면서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음식의 메뉴뿐 아니라 식재료를 얻는 방식, 조리법, 식사법 등 식문화 전반을 하나의 묶음(패키지)으로 상품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프랑스, 멕시코, 지중해지역 미식문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됐다.

이와 함께 패스트푸드 등 현대의 속도 우선주의 풍조에 대한 대안으로 슬로우 푸드 운동이 확산하는 추세이다. 패스트푸드는 맛을 획일화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식사의 소중함과 미각의 즐거움을 주는 전통음식을 보전하자는 게 운동의 핵심이다.

우리나라도 전통문화와 종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가치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종가는 현대에 와서도 전통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예컨대 경북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은 2010년 8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슬로우 푸드 열풍으로 종가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지역의 종가음식을 발굴하고 보전하려는 노력도 증대하고 있다. 각 집안의 전통과 종부의 솜씨, 지역의 특산물이 어우러진 종가음식은 종류도 제사, 식사, 접빈, 구제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는 데다 곁들여지는 술과 천연조미료까지 꽤 방대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종부는 종가의 맏며느리로서 대를 잇고 가문을 지키며 전통을 계승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가문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종손과 마찬가지로 종부가 세상을 뜨면 친족들이 3년간 상복을 입고 죽음에 대한 존경과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다.

현대에 있어 종부는 집안뿐 아니라 우리문화와 음식의 계승자, 발전주체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음식을 지키는 무형문화재로서, 혹은 음식 사업가로서 현대사회에서 종부의 역할을 더 활발하고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종가에서 담근 장을 사회와 공유하고 있는 전북 순창의 이기남 종부, 진상주로 연엽주를 빚는 무형문화재 최황규 종부 등이 대표적이다.

◇ 맛(味) 멋(美) 예(禮) 정(情)
= 종가음식은 맛과 멋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음식이자 우리만의 정서와 예의가 담긴 ‘문화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농산물을 사용한 향토음식이며,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한 기다림의 음식이기도 하다.

종가음식의 으뜸 원칙은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제철 농산물로 요리를 구성하기 때문에 신선도는 물론 지역문화 보전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현대의 종가음식은 향토음식의 보고이자 로컬 푸드(local food)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바다와 멀어 해산물을 구하기 어려운 충북 청원의 문화 류씨 대승공 류차달 종가에서는 콩을 이용한 요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경상도에서는 인근 바다에서 상어가 많이 잡혀 돔배기 구이 등 상어를 이용한 음식을 애용했으며, 오늘날에도 제수음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순창 안동 권씨 추밀공 가문은 홍삼장아찌, 굴비장아찌, 전복장아찌, 더덕장아찌 등 다양한 장아찌로 유명하다.

종가음식은 맛도 좋지만 음식 모양과 담음새, 차림새에 정성이 담겨 아름답기 그지없다. 의미를 담아 그때그때 다른 상차림을 보이는 까닭이다. 강릉의 창녕 조씨 종가에서는 태극모양과 웃기떡으로 사위의 첫 생일상을 차리는 전통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보성 선씨 선연홍 가문에서는 서당에서 책 한 권을 떼고 나면 이를 격려하는 책거리상을 전통으로 잇고 있다.

함께 만들고 누구 하나 빠짐없이 나눠먹는 情은 종가음식의 대표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종가의 품은 너르고 깊어, 길손이 끊이지 않는 법’이라는 밀양의 밀성 손씨 손성증 종가는 손님맞이 칠첩 외상이 유명하다. 예안 이씨 참판댁에서는 연엽주로 제사는 지내는데, 귀한 손님이 오면 한결같은 정성으로 연엽주 주안상을 내는 전통이 있다.

이밖에도 가문의 일원이 됨을 고하는 의식, 혼례 이후 새 식구를 환영하는 의식 등 가문마다 다양한 의식과 제례가 존재한다. 이바지 음식은 혼례 이튿날 시어른에게 식사를 위한 밑반찬과 사당에 혼인을 고하는 음식을 일컫는데, 처가에서 보내는 폐백음식과 이바지 음식은 집안의 가풍과 솜씨를 보이는 기회이자 자식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 한식세계화와 종가음식
= 종가음식은 우리만의 독특한 식문화로서 동양권에서 중국, 일본과도 확연히 차별화가 가능하므로 한식세계화의 아이템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단순한 대중화 전략은 전통의 맛과 종가의 전통을 훼손할 수도 있다. 따라서 종가음식 발굴, 체계화, 확산, 계승발전 등 사업에서 공정성과 공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공공부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종가음식에 과학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고령의 종부들이 생존 시에 과학적 접근을 통해 재료, 레시피 등의 자료 발굴과 보전에 힘을 쏟아야 한다. 계량화돼 있지 않은 음식은 재현이 가능하도록 매뉴얼화해야 한다.

아울러 종가는 종택, 음식, 가양주, 역사와 인물이야기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독특한 관광자원이므로 종가음식뿐 아니라 전통 식문화 교육, 공동체문화 체험 등이 가능하다. 관광업체, 소셜 네트워크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고급문화상품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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