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조제품이 농산물이야?”

올해 76억달러, 내년 100억달러. 정부가 청사진으로 제시하고 있는 농림수산식품 수출계획은 외견상으로 보면 수출농업정책이 대단히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 28일 가진 농림수산식품 수출탑 시상식에서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해엔 수출이 1년만에 11억달러 증가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는데, 이는 과거 10억달러 증가에 20년 이상이 소요된 점을 감안할 때 비약적인 성과”라고 자평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정부는 수출확대 방안까지 제시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수출 농기업 육성’을 농정공약으로 내건 것을 줄기차게 밀고 나간다는 방침이다.

당초 공약대로라면 매출 1조원 이상의 수출농기업을 10개 이상 만들고, 수출 지향적인 지역경제 기반형 농기업도 100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굳이 이런 매출규모의 농기업이 아니더라도 농기업형 수출정책은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헌데 급성장하고 있는 농산업 수출 규모에 우리의 농업을 비교하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수출은 많이 한다는데, 농민들은 왜 먼산만 바라보고 있는가. 수출전선에서의 기업 성장에 가려진 농업의 실체, 즉 이명박정부의 수출농업이 의심스럽다.


100억달러 수출목표 알고보니…

현 정부들어 ‘농림부’가 ‘농식품부’로 바뀔 때부터 이미 농산물 수출규모는 차원을 달리했다. 기존 신선농산물과 화훼류 이외에 수입산 원료로 만들어진 2, 3차 가공식품까지 매출실적에 포함되면서 규모가 훨씬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농산물 수출규모를 따질 때는 신선농식품으로 분류되는 채소류, 화훼, 과실, 버섯류 등을 별도로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야 1차산업인 농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선농식품과 가공농식품(가공식품, 목재류 포함)을 구분해 수출실적을 집계하면 지난해 신선농식품은 8억7천383만2천달러, 가공농식품은 32억802만2천달러로 요약된다. 신선농식품은 가공농식품의 27.2% 수준이다. 정부가 밝히고 있는 농림수산식품 수출규모 58억8천만달러의 14%에 그치는 정도로 보면 된다.

연도별 신선농식품 수출규모를 살펴보면 정부의 자화자찬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진다.
 신선농식품 수출은 2006년 5억4천만달러, 2007년 6억달러, 2008년 6억7천만달러, 2009년 7억4천만달러, 지난해 8억7천만달러 등으로 점진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획기적인 수출성장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농가 중심의 협동조합이나 영농법인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신선농식품 수출은 수치를 정확하게 매기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농식품부가 내세우는 올해 수출 목표는 76억달러, 2012년 100억달러 수출목표는 세부 품목에서 신선농산물을 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1억달러 이상 수출을 달성한 품목은 오징어, 음료, 김, 소주, 인삼, 라면, 커피조제품, 설탕, 참치, 궐련 등 10가지다. 현재의 수출기반에 선진 수출인프라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충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2년내에 농산물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기엔 역부족이란 관측이다.

대부분 가공식품들로 채워진 100억달러 수출 정책 이면에는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정권의 추진력만 짙게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농산물 수출다변화를 통한 안정된 수급조절과 농촌·농민의 경제성장을 수출기업들이 담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을 통한 수출정책은 ‘NO’

정권 초기부터 농업계 유행이 돼 버린 ‘농어업회사’는 농업정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농민과 기업이 공동출자하고, 외부 투자세력을 유도해 ‘돈버는 농업’을 만들자는 이명박정부의 농정은 수출농업으로 종결되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올해 수출탑을 수상한 (주)OKF (주)농심 (주)빙그레 (주)지이스트 매일유업(주) 등 많은 기업들은 농업과 거리가 멀다. 이들의 성과를 농업과 결부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권승구 동국대 교수는 “규모화된 농업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기업을 통한 수출지원대책은 엄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라며 “가족농, 협동조합, 작목반 등 생산자조직 등을 통한 농업발전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농기업 육성 정책에 농민·농촌 보호대책이 빠져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는 게 농민들의 반응이다.

특히 최근 정부가 내논 농식품 수출확대 방안을 살펴봐도 기존 농민이 중심이 된 수출대안이라기보다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뜻을 더욱 강조하는 모양새다. 실례로 수출업체와 생산자를 조직화한 ‘수출선도조직’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은 기존 품목별수출협의회 활성화 방안을 뒤로 한 채 업체 중심의 수직계열화 구도를 완성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규모 농업회사 육성 대책은 정권 초기부터 지속돼 온 터다. 일례로 새만금 지구 사업자로 농산무역, 동부그린바이오, 초록마을, 한빛들주식회사, 장수채, 삼호용앙주식회사 등과 각각 사업협약을 체결했지만, 이들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농민들이 많다. 이들 기업들이 기존 농민 중심의 영농조합이나 농업회사법인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다. 특히 외부자본을 유치했을 경우 효율성을 따진 사업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농민들의 참여가 결국 기업의 채용 직원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무늬만’ 농산물 수출…결국 전시행정

농식품 수출확대 방안에는 또 국내 농업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신선농식품의 수출비중을 늘리겠다는 내용이 없다. 농민들의 생산물을 품질을 높이는 등의 생산기반 조성사업이나 세부 육성대책은 없고, 실적 위주의 매출 증가에 주력하겠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전략품목을 선정·육성하거나 브랜드 지원대책을 계획하고는 있지만, 신선농산물 수출확대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기보다 형식적인 언급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영세 수출업체들의 제살깎기식 가격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기준을 정해두고, 다각적인 지원책을 강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기존 농산물 유통·가공 방식을 인정하는 선에서 지원대책을 세우는 것도 수출확대 방안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수입 원료를 사용하는 가공식품 비중을 높여서라도 전시행정에 치중하겠다는 것이 ‘수출농업’의 속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정보인프라, 글로벌 경쟁력 등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한 농산물 수출정책을 들어다보면 지원대책이 기업에 쏠려있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면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수출정책을 위한 경쟁력 제고 방안이 다소 모순이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농산물 수출정책이 농업과 연관된 내용은 무시된 채 수출실적만 늘리는 정부 홍보용으로 전락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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