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 성명, 자동차·쇠고기 얘기만 무성

지난달 26일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다시 불붙었다. FTA협정을 타결한지 정확히 3년이 지난 시점에 한미 두 정상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주거니 받거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시기 연기를 부탁했고, FTA 협정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우리측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FTA ‘재협상’이 아니라 ‘조정’형태의 실무협의라고 에둘러 설명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을 듯 싶다.

우리측은 아니라고 하지만, 미국측이 원하는 것은 뚜렷하다. 현실적으로 논리가 먹히지 않으면 ‘힘’으로 뭉개는 국제 현실을 감안하면, 빗장을 풀어주는 수순만 남았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특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한미FTA 재협상 문제가, 단순히 ‘자동차’와 ‘쇠고기’문제만 재론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농민단체나 시민단체들도 쇠고기 완전개방만 아니면 허락해도 되는 뉘앙스의 논평이나 성명 일색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미 참여정부시절 한미FTA협상 테이프를 끊었던 민주당도 정부, 여당과 더불어 반대할 수 없는 ‘연대의 끈’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한 실정이다.

쇠고기 문제도 중요하지만, 다시 논의되는 한미FTA야말로 원천봉쇄하지 않으면 우리농업이 살아날 수 없다는 부연설명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한미FTA, 쇠고기 먼저”…“예스”

지난 30일 미국 하원의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은 한미 FTA 비준을 지원하기 위해 ‘한미 FTA 워킹그룹(실무모임)’을 발족했다. 민주·공화 양당 각 3명의 의원으로 출범한 워킹그룹은 앞으로 한미 FTA 비준 촉진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덕수 주미대사는 “이 협정에 대해 일부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양국 대통령이 우려에 대해 논의를 하기로 합의한 것”이라면서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비교우위론 대표주자인 한 대사의 과거 행적에 비춰보면, 이날 발언의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이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로 요약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중 쇠고기 문제는 미 의회내 강경파들의 관심사항인 만큼 반드시 풀어야 할 핵심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 상원에서 한미FTA를 다루는 재무위원회 맥스 보커스 위원장은 미국내 ‘비프밸트(쇠고기 생산지)’인 몬태나주 출신으로 쇠고기 시장개방 문제와 한미FTA를 노골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결국 한미FTA를 이행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쇠고기 문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들의 시나리오대로라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풀어준 뒤, 농산물 완전개방이 시작되는 것이다. 쇠고기 수입 논쟁은 재협상이랄 것도 없이, 미측의 도축금지 조처와 사료규제 조처 등을 취했다는 명분을 내세울 경우 한미FTA에 ‘사활’을 걸은 MB정권과 이를 보좌하는 한덕수 대사의 처신은 불보듯 뻔하다는 것.



□ 절대 바뀌지 않는 MB정권 ‘농업관’

2009년 4월 2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미FTA비준안’은 야당의원들의 격렬한 반발에 의사봉없이 주먹으로 날치기 통과됐었다. 이때 농민단체들은 “신자유주의 결정판인 한미FTA는 미국경제를 몰락시켰던 것처럼 한국의 경제와 농민, 국민의 삶을 몰락시킬 것”이라고 한탄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태도는 변함없다. 정부는 한미FTA로 인한 한국농업 피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안중에도 없다. 기획재정부는 한미FTA관련 농업 피해를 ‘당초 예상보다 상당수준 피해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이미 개방이 진전된 축산물의 경우 수입대체효과가 예상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재부의 분석 내용을 좀더 들여다보면 아연실색하기 충분하다. 기재부는 분석자료를 통해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고, 대두 등 곡물류, 쇠고기 등 축산물, 감귤 등 과일류와 같은 대부분의 민감품목에서 장기 이행기간을 확보했고, 계절관세 부과 등 최대한의 민감성을 반영했다”면서 괜찮다고 자평하고 있다. 또
“식용대두, 감자, 낙농품, 오렌지(수확기), 천연꿀 등은 현행관세를 유지(일정물량의 쿼터 제공)키로 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나름대로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자구책을 강구하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미FTA 비준을 위한 ‘새로운 논의’와 관련, 농식품부는 “쇠고기 수입문제는 FTA 협상 대상이 아니고, 어떠한 경우에도 쇠고기 문제를 FTA와 연계할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3년전에도 정부는 이를 별개로 다루고 있다고 공식발표까지 했었다. 허나 얼마지나지 않아 쇠고기 완전개방이 한미FTA의 ‘선결조건’임이 밝혀진 바 있다.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쇠고기 수입을 규제하겠다는 모호한 장치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쉽게 제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훗날 농업이 망한 뒤 혼신을 다했으나 어쩔수 없었고,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하면 충분히 책임망을 빠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의 위정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한미FTA 무섭다”

한미FTA 얘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 각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FTA 체결시 국내 농업에 끼치는 피해가 얼마인지에 대해 다양한 규모와 산출근거를 제시했었다.
이때 정부산하 연구단체는 “한미FTA는 한국농업에 15년동안 약 10조원의 생산 감소를 가져다 줄 것으로 추산되지만, 10년간 GDP 80조원 증가라는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비교우위를 점쳤다. 여기에 “좀 더 낮은 가격에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식료품과 편의시설 및 서비스를 제공받고, 우리나라가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는 제품들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도 FTA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농업분야는 안중에도 없는 연구결과였다.

이에 반해 농협경제연구소는 국내 농산물 생산액은 최대 8조8천억원까지 감소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었다. 한-아세안FTA 1천295억, 한-캐나다FTA 1천122억 등에 비교할 수 없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도 미국산 전 품목의 관세를 철폐(쌀 제외, 곡류는 50% 인하)할 경우 총 2조888억원의 농업 생산액이 줄어들 것이라 진단했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발표한 연구결과가 관심을 끌었었다. 미 무역위는 FTA협정 발표 4년이 지나면 한국의 미산 농축산물 수입액이 약 104억달러(약 10조4천억원)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중 눈에 띠는 것은 우리나라 연구단체들이 예외규정으로 뒀던 쌀 수입에 50만달러(증가율 1천27%)를 매겼다.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자료는 ‘농업을 버리지 못하는 정부’를 질책했었다. 이 연구기관은 정부의 농업 대책에 대해 “우리농업은 이미 취약한 상태”라고 전제한 뒤 “우리나라의 농업은 95년 이후 가격 폭등없이 폭락만 발생하고 있고, 만성적인 과잉 구조로 인해 조금만 과잉공급이 되고 수입이 늘어도 급격하게 가격이 폭락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단체는 “우리가 얻는 공산품과 자동차 등의 기업이 국내에 존재하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국민들과 혜택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농업계는 회생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공산품과 자동차에서 수익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비교우위론을 들고 나왔다.

3년전 얘기들이다. 이때 학계나 농민단체에서는 “양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서로 오해했던지, 아니면 한국이 미국의 ‘흑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장밋빛 청사진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이들 관계자들은 “연구기관에 따라 예측결과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농업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공통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면서 “어느 수치를 적용하더라도 농업의 초토화는 기정사실”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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