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들어서면서 우리 주변의 나무들은 푸릇함을 더해가고, 한낮의 햇볕도 따갑게 느껴지는 여름이 시작되었다. 여름이 되면 더위에 입맛을 잃어 차가운 음식을 많이 찾게 되고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진다. 더운 날씨에 식사를 거르게 되면 체력이 더욱 떨어지고 더위도 많이 타게 된다. 더위를 이기는 다양한 음식이 많지만, 그중에서 죽도 여름철 음식으로 권장할 만하다.

죽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 하자면, 필자의 고향에서는 여름철 저녁 식사로 팥죽, 콩죽, 녹두죽을 많이 먹었다. 소위 말하는 ‘팥 칼국수’와 같은 형태인데 필자가 살던 고향에서는 이를 팥죽이라 불렀다. 여름이면 모깃불 옆에서 구수한 연기 냄새를 맡으며 땀을 흘려가며 죽을 먹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는 살짝 굳은 죽을 또 맛있게 먹었다.

추운 겨울의 대명사인 죽을 왜 여름에 먹었을까, 왜 하필 바쁜 농사철에 약간은 번거로운 죽을 만들어 먹었을까 의문을 가져보았다.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보면, 남부지방이라 여름쯤 밀을 수확하므로 수확한 밀을 이용하여 별미로 팥죽을 끓여 먹었을 것이다. 또한 여름 농사철에는 별도의 반찬을 준비할 시간이 없으므로, 반찬이 필요 없는 팥죽을 일품음식으로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고향에서도 여름철 팥죽을 끓이는 집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죽이 가공된 제품 형태로 유통되거나 죽 전문점이 생겨 식사대용식이나 환자식 등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쌀을 이용한 죽은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음식인 데 반해 가공된 형태의 죽제품은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인스턴트 죽은 바쁜 직장인에게는 ‘시간 절약’, 다이어트 중인 여성에겐 ‘영양보충’, 소화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에겐 ‘건강 간식’으로 사랑 받으며 빠르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처럼 죽은 현대인들에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식사대용식’, ‘다이어트 음식’, ‘영양 간식’, ‘환자식’ 등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식생활문화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오는 죽이 과거에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죽은 식품학적으로 설명하면, ‘곡식에 물을 많이 붓고 오래 쑤어서 곡식의 알이 연하게 퍼지고 녹말이 충분히 호화되어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무르게 익은 유동식 음식의 총칭’이다.

농경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죽 종류가 밥 종류보다 앞선 조리법으로 매우 다양하게 발달하여 왔다.  고려 이전의 문헌에는 죽에 관한 단어가 몇몇만 보일뿐이나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노인이 먹는 음식으로서 죽의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죽 종류는 170여 종에 이르며 조선시대의 사대부 가정에서는 조반으로 상용한 기록도 있고 재료 선택이나 손질법도 매우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조사하여 발간한 「한국의 전통향토음식(2008)」에도 160여종의 죽이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과거의 죽 용도는 주로 식량 사정이 어려웠을 때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주식이나 연명식(延命食)으로 시작되거나 별미식 또는 밥 같은 고형물)을 먹기 어려운 환자나 유아, 노인들의 식사대용식으로 이용되어왔다.

최근에는 죽의 가치가 더욱 높아져 웰빙(참살이) 음식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죽은 곡류, 특히 쌀을 주재료로 하여 채소류, 어패류, 육류, 우유류, 열매류, 약재류 등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맛과 영양이 다양하다. 따라서 더운 여름에 입맛에 맞게 골라먹을 수 있는 좋은 보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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