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농협체제의 성과와 한계

◆60년대에 적합한 종합농협체제
오늘날의 농협 체제는 1961년 경제사업 중심의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의 통합으로부터 시작됐다.
서구와 같은 품목조합이 아닌 지역종합농협이 중심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1960년대 초에는 지역 농민들의 재배 작목이나 규모, 학력수준 등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주요 농산물인 벼와 보리가 정부수매로 거래됐고, 원예농업의 상업농화도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원예 및 축산물이 농협의 판매사업 대상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용사업과 벼농사에 필요한 구매사업, 그리고 정부수매를 대행하는 위촉판매사업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지역종합농협체제만 가지고도 협동조합이 잘 운영될 수 있었다.

또 농가의 고리채 해결 등 신용사업의 요구가 높았다는 점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과 농민의 요구가 높지 않아 당시의 농협체제는 암묵적으로 용인됐다.

1960년대 후반에는 이동(里洞)조합의 경영자립이 어렵고, 조합원에게 주는 혜택이 낮아 읍면단위 합병으로 단위농협을 구성했다. 여기에 상호금융사업을 부여하여 단위농협의 경영자립도를 높이도록 정책이 변경되어 현재의 지역농협-농협중앙회 체계의 근간이 완성됐다.(그림1 참고)
 

◆고리채 경감과 식량자급 달성의 주역
신용사업 중심의 농업협동조합은 1970년대 이후 정부의 핵심 농정파트너로 등장했다. 정부의 새로운 농정사업 추진으로 농업협동조합은 자금융자, 자재공급, 생산물 판매 등의 정부서비스사업을 대행함과 동시에 새마을운동의 현장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당시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인 식량자급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농협은 통일벼 중심의 다수확 품종을 보급시키고, 통일벼 수확량 확보에 필수적인 농약과 비료 등 수도작용 농자재 구매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그림2 참고)

통일벼의 급속한 확대와 정부수매의 대행은 지역단위의 종합농협체제가 전국적으로 구축됐기에 가능했다. 이런 농협의 활동은 국가적으로 식량자급을 성공적으로 달성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안정에 기여했다. 또한 이중곡가제 아래서 농민조합원에게도 소득을 적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성과를 나타냈다.

◆상업농 확대...종합농협의 기반 ‘흔들’
1970년대까지 종합농협체제가 농업 안팎의 상황에 잘 적응하면서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변화된 농업상황으로 종합농협체제는 한계가 드러났다.

1980년대 이후 국민경제의 발전과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칼로리 섭취 패턴이 바뀌면서 원예 및 축산업의 상업농화가 가속화됐다. 이에 따라 규모를 늘린 품목별 전업농들은 농협의 판매사업이 단순 수매 혹은 도매시장에 대한 단순출하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했다.

즉 개별농가가 할 수 없는 고도의 판매활동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업그레이드된 판매사업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조합원의 동질성 축소
협동조합은 참여하는 조합원이 동질적일수록 운영이 잘된다. 하지만 상업농 경영이 확대되면서 조합원들의 동질성이 매우 줄어들고 있다. 2000년, 2005년 농업총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조합원 동질성이 계속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표 참고)

2000년 100만원 미만농가의 비중은 22%인데 반해, 2005년에는 23.7%로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2000만원 미만 농가의 비중은 14.4%에서 2005년에는 18.1%로 증가했다. 즉 농민층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농형태별로 볼 때도 2000년에는 논벼 중심 농가의 비중이 56.9%인데 반해, 2005년에는 이 비율이 50.9%로 하락했다.
농가경영주의 연령도 상승하고 있다. 고령계급에서는 판매금액이 하락하는 추세다. 2000년 표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 18.5%인데 반해 2005년에는 16.6%로 하락했다.

전체적으로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경지규모, 영농형태, 연령 측면에서 농가의 동질성이 지속적으로 줄어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수입개방에 따른 가격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전업농화는 더욱 늘어날 것이기에, 이 추세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이다.


◆판매사업 요구를 못 따라가는 종합농협
특히 1970년대 말 농지와 인건비의 상승에 따라 국내농산물, 특히 쌀의 국내가격이 국제가격을 넘어서면서 수입개방이 추진됐다. 1980년대 들어 양념채소류부터 시작한 수입개방이 진척되면서 전반적인 농산물의 공급과잉현상과 가격파동이 발생했다. 정부는 물론 농협에 대해서도 품목별 가격안정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게 됐다.

급기야 2000년대 들어 추곡수매제가 폐지되면서 쌀시장 환경이 급격히 변화되어 쌀에 대해서조차 농협의 마케팅 역량이 필요하게 됐다. 농협 판매사업에 대한 질적인 전환이 다방면에서 요구됐다.
하지만 읍면단위 종합농협의 여건상 수십 가지 품목을 재배하는 농민조합원에 대해 각 품목별로 고도의 마케팅을 수행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두 가지 품목에 집중하고 이를 위한 시설투자 등을 계획할 경우 다른 품목을 재배하는 농가의 반발을 사는 등 체제 자체의 한계가 드러나게 됐다.

◆경제사업 회피의 구조
조합구조 문제와 함께 판매사업에 있어 농협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구조와 정책의 영향으로 경제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농협 내부도 경제사업보다 신용사업에 유리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제사업=적자사업’이라는 농협 임직원의 선입견을 강화시켜 나갔다.

따라서 정책사업의 일부 대행과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경제사업, 적자가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용사업의 수익으로 벌충하는 것이 농협의 기본적인 운영패턴이 됐다. (그림3)

◆자초한 농협개혁운동
이런 ‘무늬만 경제사업’은 조합원들의 경제사업 활성화 요구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합경영만을 중시하는 임직원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농민들의 요구를 각종 제도를 통해 반영하는 운영의 민주화도 이뤄지지 못하자 농민조합원들이 경제사업 활성화를 내걸고 농협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의 두터운 벽을 실감한 농협개혁운동은 우선 ‘운영민주화’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됐다. 농협개혁이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에 집중되면서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지역종합농협체제의 심고 깊은 분석과 대안마련이 계속해서 뒤로 밀리게 됐다.

◆농촌문제도 농협에서?
농촌인구의 감소는 농민의 고령화, 농민조합원의 감소와 맞닿아있다.
농촌인구의 감소에 따라 초중등학교나 보건소 등 농촌의 사회복지기관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동시에 농촌의 인구도 갈수록 비농업인의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따라서 농촌의 각종 사회서비스를 담당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농촌주민의 의견까지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지역협동조합의 성격을 농협이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종합농협의 발전적 변화방향
읍면단위에서 모든 사업을 총괄하던 종합농협체제가 처음에는 농촌과 농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아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합병이나 품목조합으로의 전환이 획기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지역종합농협체제를 어떻게 하면 시장, 정책, 농민조합원의 상황에 맞게 연착륙시켜갈 수 있는가. 어떻하면 농민조합원의 운영참여를 강화하고, 사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조합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번 농협중앙회의 구조개편의 큰 틀이 정해지면 더욱 심도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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