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금융은 경제사업의 ‘뒷자리’

농민단체들이 농협의 신경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한 데는 “경제사업이 생산자협동조합인 농협의 존재이유”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사업이 농협의 근본 임무라는 원론적이면서 상식적인 주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경제사업을 못하거나 회피하는 농협은 엄밀하게 말하면 농업협동조합이 아니라 농촌신용협동조합이라고 낙인을 찍어도 할 말이 없다.
경제사업을 최우선에 놓는다면, 그 수준에서 상호금융의 발전방향과 과제를 논의할 수 있다.

◆상호금융이란?

대부분의 농민조합원들은 상호금융보다 신용사업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심지어 “농협은 은행”이라는 분들도 없지 않다. 구조개편의 3대 쟁점 중 하나가 “상호금융연합회를 언제,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다.

3대 쟁점 중의 하나로 이번 구조개편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다른 문제들에 가려져, 그 중요성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상호금융에 대한 조합원과 임직원의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 <그림> 농협상호금융의 성장추이
상호금융은 상식적으로 은행업무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몇 가지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한다는 업무의 성격만 보면 은행업무와 비슷하다. 하지만, 은행업이 불특정 다수를 영업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상호금융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다.

은행은 돈을 많이 벌어주는 고객에 대해 우대조치를 취할 수 있다. 요즘 자주 듣는 ‘프라이빗 뱅킹’이란 말은 사실 대놓고 고객을 차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호금융은 조합원을 우선하고 비조합원을 차별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조합원이 대출할 경우 비조합원에 비해 대출금리를 낮게 적용하는 제도가 도입되어 있는 것도 상호금융의 특성에서 인정된다. 

반면 조합원들 간의 차별은 금지된다. 조합원이 되는 순간 동일한 금리계산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1970년대 농협 상호금융의 성과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농촌의 고리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중앙회에 신용사업을 허가했다. 이후 정부의 정책자금도 농협을 통해서 농업인에게 대출되도록 했다.

따라서 농협은 은행업과 상호금융업, 정책자금 취급을 동시에 수행하는 세계적으로 비교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농촌금융기관 모델이다. 이런 강력한 법제도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한 농협 상호금융 사업을 통해 빠르게 고리채가 정리됐고, 농민조합원이 돈을 빌릴 때 이자도 계속 낮아졌다.

1975년 농민들의 사채의존율은 70%에 육박했다. 당시 사채 금리도 연간 50%대의 고이자로 농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1969년부터 시작된 상호금융은 25%의 이자로 대출을 줘 농가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1976년 전국 모든 지역농협에서 상호금융을 취급하면서 사채의존도가 하락했다. 1990년에는 농가부채 중 사채는 17%로 떨어졌고, 금리도 20% 미만으로 하락했다.

농협의 상호금융 예수금 규모는 1990년 10조원에서 급증해 2008년에는 158조원으로 늘어났다. 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2008년 상호금융 대출금리는 7.56%로 1971년의 사채금리에 비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만큼 농가들이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불안한 상호금융의 구조

농협의 상호금융이 급격하게 성장한 가장 큰 이유는 농협중앙회가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담당, 농협에 대한 신뢰도가 높게 유지됐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 중반부터 시작된 정부 정책자금의 집중적인 투자도 영향을 미쳤다.

상호금융이 불안한 첫 번째 이유는 예대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의 초기 상호금융은 도시의 자금을 빌려와 농민들에게 저렴하게 빌려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상호금융 예수금의 급격한 증가와 농업의 여건악화, 농민의 고령화 등으로 농업투자가 줄면서 이제는 대출처를 찾기가 어렵게 됐다.

광역시를 제외한 도단위 상호금융예수금은 2007년 108조원, 대출금은 76조로 예대비율은 70%에 불과했다. 결국 나머지 예수금은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상호금융특별회계에서 운영하면서 농협중앙회에 대한 수익의존율이 높아지게 됐다.

농협중앙회의 구조개편 과정을 통해 NH은행이 별도의 자회사로 떨어져 나가면 아무래도 이전과 같이 상호금융특별회계의 수익율을 높게 책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상호금융의 미대출금을 최대한 수익을 높게 낼 수 있도록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상호금융의 본질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단위 상호금융예수금 중 조합원이 저금한 돈은 31조원, 비율은 29.1%에 불과하다. 대출금도 조합원이 대출한 금액은 36조원으로 48%에 불과하다.
 
즉 조합원을 중심으로 조합원 상호의 자금부족을 해결한다는 상호금융의 원래 위상보다 준조합원, 비조합원의 예금을 과다하게 유치하고, 역시 조합원이 아닌 사람에게 절반 이상의 대출을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농협의 상호금융이 사실상 은행업의 성격을 띠게 되고, 신용사업의 수익이 많다보니 신용사업 중심으로 농협이 운영됐다. 

농민조합원들은 ‘돈장사’를 비난한다. 수치상으로 볼 때 충분히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농협의 수익구조가 너무 신용사업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신용사업의 수익을 포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농협과 농민조합원 모두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상호금융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경제사업을 보완하는 상호금융 돼야

더욱 큰 문제는 조합수익의 대부분이 신용사업에서 발생하자, 경제사업 활성화는 조합임직원의 의사결정 우선순위에서 밀려 버렸다는 점이다. 조합직원에 대한 교육은 물론 직원에 대한 평가와 승진도 신용사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자 농협 직원들도 스스로를 은행원으로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농협의 노조는 모두 사무금융노련 계열에 가입되어 있다.

결국 상호금융 신용사업의 과도한 성공이 생산자협동조합 본래의 목적인 판매사업을 억누르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 <그림>농촌사채와 금리의 추이
이번 농협중앙회의 구조개편은 상호금융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경제사업을 지원하는 발전전략을 제도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조속한 분리가 필요하다

농협법이 확정되더라도 2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구조개편과 법인분리가 되기 때문에 기간은 충분하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면서 그에 필요한 다른 법의 조정내용도 함께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지, 분리 후 다시 법개정을 위해 농정활동을 한다는 것은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호금융연합회를 별도로 분리하더라도 전산시스템의 공동운용과 정보공유 등을 통해 동일한 브랜드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또 업무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자체자본금을 확보하여 실체가 있는 법인이 만들어져야 단일 금융기관으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회원농협의 조합장들은 상호금융의 독자적인 발전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이런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상호금융연합회의 동시 분리과제가 이번 법개정 논의 과정에서 더욱 심도 깊게 다뤄져 농협법 개정에서 관철되기를 바란다.


※용어해설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이란?
일정금액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담당관리자를 별도로 두어 주식ㆍ채권ㆍ부동산 등의 투자 상품 소개 상속에 대한 법무·세무 컨설팅 등 자산의 종합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의  영업방법. 최신 금융기법으로 IMF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예대비율, 예대마진이란?
상호금융의 수익은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상호금융의 수익=예대마진×대출금=(대출금리-예금금리)×(예수금×예대비율)
이때 예대마진은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것으로 예대마진이 높을수록 수익은 높아진다. 예대비율은 대출금 총액을 예수금 총액으로 나눈 것인데, 예대비율이 높으면 수익도 높다. 

▷상호금융은 언제 시작됐나?
1849년 독일에서 설립된 라이파이젠의 농촌신용협동조합이 상호금융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라이파이젠은 당시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던 농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용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조합원의 자금과부족(資金過不足)을 조합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취지로 상호금융을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 부산의 카톨릭계 메리놀병원에서 직장신용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처음 상호금융이 도입됐다.

농협도 1969년 읍면단위로 합병된 지역농협 중 150개 시범조합에서 상호금융사업이 시작됐고, 1976년 전국의 모든 농협으로 전파됐다. 학자에 따라서는 급한 사람이 먼저 돈을 타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나중에 이자를 포함해서 곗돈을 받게 되는 “계(契)”를 상호금융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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