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협동조합의 핵심은 판매사업인가?

농협은 농민생산자들이 모인 생산자협동조합이다. 따라서 농산물을 제대로 팔아주는 것이 농협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며, 존재이유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1961년 현재의 농협체제가 만들어 질 때는 고리대금을 근절하기 위한 신용사업이 필요했다. 정부는 농촌의 대출자금을 만들기 위해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신용사업을 할 수 있도록 농협중앙회 은행업을 허가했다.

이후 1967년 이동농협을 읍면단위로 통합하며 지역농협도 신용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세계 협동조합운동의 흐름과 비슷하다. 우리 농협도 초기에는 농촌지역 신용협동조합의 성격을 가졌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농촌의 신용상태가 안정됐다. 수입개방과 함께 외국산 농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정부 수매가 줄었다. 그러자 농민조합원은 신용사업보다 판매사업에 농협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성공한 신용사업, 경제사업을 천덕꾸러기로
농협의 수익은 신용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제사업의 경우 수매 이외의 방식을 도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조합장 직선제 후 농민조합원의 요구로 경제사업이 수행됐지만, 실상은 신용사업의 수익을 활용해 경제사업을 적정하게 배치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대다수 조합임직원들이 “경제사업은 적자사업이며, 환원사업”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판매사업이나 구매사업의 농협 수수료를 보면 알 수 있다. 농협은 단순 판매사업으로 도매시장으로 출하할 경우 0.25~0.5%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구매사업도 대부분 2~3% 수준이다.

이 경우 10억을 팔아도 판매사업수수료는 500만원을 넘지 못한다. 농협 평균 판매액인 30억 정도를 팔아도 2500만원, 직원 1명의 인건비에 불과하다. 이런 단순판매사업 구조에서는 경제사업은 적자사업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농협중앙회도 사정은 마찬가지. 농협중앙회는 내부자료에서 2005년도 경제사업은 1700억원 정도 손실을 봤으며, 신용사업의 수익으로 보전했다고 적고 있다. ‘경제사업=적자사업’으로 생각하는 농협임직원에게는 신용사업에 자원을 투입하고, 경제사업은 생색만 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가 있다.

◆정말 경제사업은 적자사업인가?
경제사업이 적자사업이라는 고정관념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생각 때문에 현실이 그렇게 되어 버린다. ‘경제사업=적자사업’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은 인적, 물적, 교육적 투자를 꺼리게 만들어 실제 농협의 경제사업을 악화시킨다.

둘째,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의 내부금리 계산이 불합리함이다. 경제사업이 신용사업에서 돈을 빌릴 때는 신용대출금리로 빌린다. 그러나 경제사업에 남은 돈을 신용사업에 맡길 때는 보통예금금리로 맡기게 된다.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이 신용사업에 대출이자로 주는 비용이 1000억원대라는 사실은 실제 내부금리만 공평하게 적용해도 경제사업이 적자가 아닐 수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셋째, 조합원과 농협이 낮은 수수료를 방관하고 있다. 판매사업 수수료를 높이는 부담을 임직원 누구도 지려하지 않는다. 조합원도 당장의 낮은 수수료에 만족하며 조합의 경제사업 활성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은 다음의 그림으로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경제사업은 적자사업이라는 고정관념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선순환 구조로 만들어야 경제사업 활성화가 가능하다.

성공모델도 많다. 대관령원예농협은 전체 수익 중 경제사업의 수익이 절반에 이른다. 경남 밀양시 부북농협도 판매사업이 흑자를 보고 있다. 농협보다 훨씬 여건이 열악한 여러 영농조합법인도 흑자를 보는 상황에서 ‘판매사업=적자사업’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농협의 경제사업활성화는 이런 모범사례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이를 촉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고치는 것이다.

◆직군별 채용 직군별 승급제도 도입
내부금리 계산법과 ‘경제사업=적자사업’이라는 고정관념을 빨리 고쳐야 한다. 이 것 이외에도 몇 가지 저해요인이 있다.

첫 번째, 직원의 전문성 결여다. 농협이 신용사업부터 구매사업, 판매사업, 지도사업, 마트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하다보니 직원들도 2~3년 만에 여러가지 사업을 전전한다. 2년 정도 판매사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눈이 트이면 다른 사업으로 발령을 낸다. “농협직원이 농민보다 시장을 모르고, 아는 게 없다”는 농민조합원의 불만은 이런 인력운용구조 때문이다.

직원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자금이 많아도 판매사업 활성화는 불가능하다. 판매사업 담당직원을 처음부터 뽑고, 진급도 성과에 따라야 한다. 직군별 채용, 직군별 승급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시군단위 ‘지도-구매-판매통합’  시스템의 구축
두 번째는 농민조합원의 생산물이 다양해 읍면단위 농협에서는 팔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역농협 단위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은 약 30가지. 1~2명의 농협판매담당 직원이 이를 모두 제값에 팔아주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특별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읍면단위 판매물량도 부족하다.

따라서 최소한 시군단위로 품목별 조직을 묶고, 재배기술에 대한 지도부터 필요한 농자재의 구매와 판매를 전담하는 직원을 두는 것이 경제사업 활성화의 필수과제다.

경기도 안성시조합공동사업법인이나 전남 나주시조합공동사업법인, 경남 진주시연합사업단 등은 이런 시군단위 품목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심지어 시군을 넘어 광역단위로 하나의 농협판매사업조직을 만들어가고 있는 햇사레(복숭아)나 잎맞춤(배, 포도)사업도 큰 성공을 거뒀다. 전국단위로 메론을 묶어내는 K-메론연합사업도 추진 중이다.
  
◆구매사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
“농협은 서비스도 나쁘고, 농약값도 비싸다.”라는 불만을 대다수 농민조합원이 가지고 있다.
농협의 구매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구매 물량을 가지고 업체와 협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품목별로 적합한 농자재를 선택해야 하며, 판매사업도 활성화돼야 한다. 원예 전문가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의 전문성 강화도 필요하다.
판매와 구매사업의 경쟁력 강화는 이런 측면에서 동전의 앞뒷면이다. 여기에 지도사업도 함께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금상첨화다.

◆농협중앙회 구조개편으로 경제사업 활성화를
농민단체와 학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신경분리는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구조개편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경제사업 활성화의 유무다.

우선 산지유통 활성화를 봐야 한다. 농협중앙회는 경제사업에 필요한 자본금을 7.1조원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조합공동사업법인을 시군단위 이상으로 조직하고, 농협중앙회에서 각 법인에 60억원 정도를 출자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시군단위 조합공동사업법인이 200억원 정도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전문판매담당자를 채용,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한다면 산지유통이 획기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

또한 소비지유통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있어야 한다. 현재 농협중앙회가 운용하는 물류센터와 하나로마트는 소비지에서 새로운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대형유통업체의 횡포를 막고 산지가격을 올리는 등 보이지 않는 기여를 하고 있다.

소비지 판매망을 확충하기 위해 하나로클럽의 투자를 확대해야 해야 한다. 최소한 농협중앙회가 산정한 대형판매장 6개소, 중대형판매장 21개소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은 실행되어야 한다.

◆경제사업활성화의 근본목표
농협이 구호로만 ‘전이용(全利用)’을 외칠 것이 아니라 농민조합원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경제사업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을 처음 만들 때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겠지만, 농민조합원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농협과 농민조합원이 서로 믿고 서로 상생하는 경제사업 활성화가 농협개혁의 근본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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