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소도 키워라”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물소는 서쪽으로는 이태리에서 동쪽으로는 일본의 오키나와, 북으로는 러시아까지 사육되고 있는 가축이다. 물소를 키우는 목적은 동남아시아에서는 논밭을 경작하는 역용으로, 유럽에서는 물소 젖을 이용코자 키우고 있다. 지금은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피자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 물소 젖으로 만든 모짜렐라 치즈인 것이다.

이런 물소가 조선시대에는 또 다른 용도로 중요시했다. 물소의 뿔은 우리나라 전통의 활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하지만, 물소가 없는 조선은 중국을 통해 전량수입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궁각(물소뿔)을 수출금지품목으로 정하고 조선에 팔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우리조상들이 전략물자인 궁각을 수입하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금수조치를 해제 시킨 것은 한명회에 의해서이다. 성종11년(1480), 한명회는 중국과 협상을 통하여 연간 50개를 수입할 수 있는 무역 쿼터를 만든다. 이 수량으로는 당시조선의 군사력을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밀수를 하기도 한다.

성종 19년(1488)에는 중국으로 파견나간 사신(이욱 유사달)들이 북경에서 궁각 50개를 밀매하다가 적발되어 중국에 체포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에서 돌아온 이들을 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채운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서 한 행동으로 본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도 물소를 키웠다는 이야기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세종대왕은 물소가 보통의 소보다 일을 잘하기 때문에 중국을 통해 구입토록 명령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물소가 조선에 온 것은 1439년에 중국으로부터 암수 4마리를 받은 것이 사육의 시작이고 세조8년(1461)에는 일본으로부터 암수 1마리씩을 조공으로 받아 추운겨울을 따듯한 경상도에서 나게 하고 봄에 창경궁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종10년(1497)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가축사육담당을 하던 사복시(司僕寺)에는 물소 70여 마리가 있었다고 기록도 돼 있다.

그러나 우리조상들은 물소를 키우는 데는 큰 재주가 없었던 듯하다. 좁은 농지에서 덩치가 큰 물소를 키운다는 것이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종은 사복시에서 키웠던 물소를 신하에게 하사하기도 하고, 물소를 잘 키우는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물소의 성질이 포악해 사람을 해한다고 신하들이 진언을 하자 성종은 아침저녁으로 훈련을 시켜서 농경에 이용하라고 명하기도 했다.

연산군 시대에는 전국에 있는 물소현황을 조사하기도 하고 그 용도를 어찌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도 했다. 물소는 더 이상 용도가 없으니 섬으로 유배를 보내서 자연히 죽게 하자고 하는 의견, 추위에 약한 물소를 섬으로 유배시키면 얼어서 죽을 것 같으니 그냥 잘 키우자는 의견 등등. 분분한 논의 끝에 중종 4년(1509)에는 사복시의 물소를 민원에 따라서 민간에 배급하였다.

국가로부터 배급받은 물소를 죽거나 잃어버리더라도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포함했다고 한다.

우리조상들의 번뜩이는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동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은 아닐까?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시험장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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