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쇠고기 수입개방


당장 다음 달부터 밀려들어올 미산 쇠고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관련 연구기관도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짜느라 연일 북새통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략대결로까지 미산쇠고기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왠지 ‘쑈’로 보이는 까닭에 농민들은 더욱 분개한다.

각계의 반응은 ‘무조건 안된다’부터 시작되고, ‘결사 항전’으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산지 소값은 10%이상 급락하는 등 메카톤급 진폭이 감지되는 쓰나미가 이런 것인가. 축산업계는 해일의 높이를 셈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정신없는 틈을 타고 이상한 논리의 연구결과와 해결책이 제시되는가 하면, 알맹이 없는 전시용 정책이 판을 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다보면 문제점도 지적될 듯싶다.


□ 전면개방에 통제권 상실

지난 18일 타결된 미국산쇠고기 협상의 골자는 수입허용기준을 없애고, 2단계에 걸쳐 모든 쇠고기를 들여와도 된다는 내용이다. 1단계로 30개월 미만 소에서 생산된 뼈를 포함한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다음 단계로 미국이 사료금지조치를 강화할 경우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인정한다는 것.

사료금지조치를 강화한다는 것은 연방관보에 공포하겠다는 뜻으로, 법제화가 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현재 상태에서 허용기준을 풀어준 꼴이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은 30개월 미만 도축소는 편도와 회장원위부 2개, 30개월 이상은 7개(뇌, 눈, 머리뼈, 척수, 척주, 편도, 회장원위부)로 한정해 수입이 안된다. 허나 이 또한 현재 수출작업이나 검역 여건상 판단이 어렵다. 특정위험물질이 그대로 식탁위에 오른다는 얘기다.

이밖에 다른 문구는 협상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대처방안이 전혀 없다. 사건 발생시 통제권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 검역 대기중인 물량을 감안할 경우 다음달 중순부터는 미산쇠고기가 시장에 활개친다. 뼈있는 고기 즉, LA갈비도 다음달 말쯤엔 할인매장 정육코너에 진열될 예정이다.




□ ‘사탕발림’대책 조차 ‘속빈강정’

농림수산식품부는 협상 타결 3일후인 2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관련 축산업 발전대책’을 신속히 내놨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새로운 게 없다’는 사실. 그간 계획했거나 실시하고 있는 축산관련 정책들을 여기저기서 끌어다가 나열한 수준이다.

대책을 살펴보면 우선 원산지 표시제를 강화하고 둔갑 판매를 막기 위해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 육류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함과 아울러 원산지 단속권을 농산물품질관리원에게도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산지 표시제는 이미 확대 실시하고 있는 것이고, 농관원에 단속권을 부여한다는 것 조차, 막상 현장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다. 오히려 농관원 공무원만 늘리겠다는 발상으로 해석된다.

쇠고기 이력추적제도를 시행하고 직거래 확충으로 축산물 유통체계를 개선한다는 얘기도 이미 ‘재탕 삼탕’으로 우려낸 내용이다. 품질고급화를 위한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계획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예전에 접은 정책을 다시 살리겠다는 것인데, 수컷을 거세해 키우고 1등급을 받으면 마리당 10~20만원까지 농가에 장려금을 지급하겠다는 설명이다. “그 돈 받으려고 5~6개월을 더 길러?”라는 게 일반적인 여론이다. 소 브루셀라 살처분 보상금을 현행 60%에서 80%로 높이겠다는 것도 이미 박홍수 장관 시절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정책이다.

이밖에 가축분뇨처리시설을 늘리고, 도축세를 없애는 정책도 ‘그나물에 그밥’인 얘기다. 결국 발전대책으로 내민 자료는 축산관련단체나 농업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욕먹을 짓’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 검역기관도 연구기관도 ‘한통속’

‘짜고 친 고스톱’이란 비난을 받고 있는 이번 쇠고기 협상 타결에 일등 공신(?)은 수의과학검역원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일 것이다. 광우병 위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협상자료를 제시해야 할 수과원은 일단 함구하고 있다. 광우병 위험이 없다는 것인지, 책임을 아예 포기한 것인지 우물쭈물한다.

최근 강문일 원장은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개방할 경우 그것은 본원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제대로 매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경연 또한 수입개방과 관련, 연구하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22일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확대의 파급 영향과 시사점’이라는 자료를 순발력있게 배포하기도 했다. 문제는 ‘언어의 유희’를 제대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내 축산업이나 농업에 피해가 예상되는 낱말이나 내용을 완만하게, 부드럽게 고쳤다. 일례로 미산쇠고기를 수입할 경우 ‘한육우 사육두수는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언급했다.

사육두수가 줄고 농가가 ‘줄도산’한다는 얘기를 증가율이 둔화된다고 표현했다. 또한 한 연구원은 ‘한미 쇠고기 협상의 결과와 영향은?’이란 질문·답변 형식의 글을 통해 쇠고기 협상 타결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광우병과 관련해 OIE(국제수역사무국)기준은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준수할 의무가 없지 않느냐는 일반인들의 질문에 ‘우리는 OIE 회원국으로서 OIE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이번에 뼈를 포함한 제한조치를 완화한 이유에 대해서도 ‘광우병과 연관된 것은 SRM이므로 뇌, 머리뼈, 척수, 등뼈 등의 부위만 제거하면 99.9% 안전하다고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옹호했다. 그나마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기관으로 인식되던 수과원과 농경연은 이번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에서 확실히 정부의 ‘좌청룡우백호’였다. 역으로 그만큼 농민들에게는 불신 대상이 됐다.

□ 정치 쟁점으로 ‘급부상’

미국산 쇠고기 완전개방은 여야간 정치 이슈로 떠올랐다. 21일엔 야당 대표회담이 열렸다.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3당 원내대표들은 회의를 통해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특히 25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야권이 공동으로 대응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야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고 있다.

지난 24일엔 전국한우협회 회원 1만여명이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규탄 발언과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농가들의 강경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앞서 21일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기자회견을 열고 “굴욕적인 이번 협상을 인정할 수 없다. 전면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는 한국진보연대,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icoop생협연합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이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광우병쇠고기국민감시단 등은 협상 타결이 전해진 18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줄 것 다 준 정부, 빼앗을 것 다 빼앗은 미국”이라며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수입협상 철회’를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식농성 중이다. 이명박정부가 처음 직면한 ‘정책 심판대’로 인식될 정도로, 국가 현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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