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공 산업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해외수출도 날개를 달아 어느새 농식품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감소하고 있는 쌀 소비량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승승장구’ 하고 있는 쌀가공 산업 이면에는 도정미의 품질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쥐 사체부터 알 수 없는 이물질이 발견되는가 하면 보관 잘못으로 인한 품질 불만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부에서도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탓에 전국 각지 쌀가공 업체들은 원료곡의 품질 스트레스로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라는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본지는 쌀가공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2회에 걸쳐 게재코자 한다.

 

■ 글 싣는 순서

 

Ⅰ. 정부 도정미 엉터리 품질, 날개단 쌀가공산업에  ‘찬물’ 

Ⅱ. ‘결국 품질이 답’, 최고 품질 갖추지 못하면 퇴출돼야  

 

 

 

 

정부의 전폭적 지원, 가파른 성장세 쌀가공산업 

지난해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최초로 2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쌀가공식품 수출액은 2억1,723만9,000달러(약 2,9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1억8,182만1,000달러에 비해 19.5%가량 늘어난 것이다. 

가공용쌀 소비도 매년 성장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곡물 소비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업계 쌀 사용량은 81만7,000톤으로, 지난 2022년보다 12만6,000톤(18.2%) 늘었다. 여기다 2022년 기준 쌀가공 산업 매출액은 8조4천억원으로, 매년 10% 이상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쌀가공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가공업체들의 R&D 투자 등이 결합돼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쌀가공 산업의 성장세가 지속될 수 있도록 올해 초‘제3차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오는 2028년까지 국내 쌀가공산업 시장을 17조 원 규모로 키우고 이 분야 수출액을 4억 달러(약 5,400억 원)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농식품부는 국내외 쌀가공식품 시장을 확장해 가공용 쌀 소비량을 2022년 57만톤에서 2028년에는 72만톤 수준으로 끌어올려 쌀 수급 안정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식품 소비 유행을 고려해 간편 가공밥·죽, 도시락·김밥, 떡볶이, 냉동떡, 쌀 증류주, 쌀 음료, 쌀국수, 혼합면, 쌀빵, 쌀과자 등 10대 유망품목을 육성한다.

특히 쌀가공식품 수출 성장을 위해 현재 3개에 불과한 해외 글루텐프리 인증을 받은 쌀가공 업체를 2028년까지 30개로 늘리고, 국내 글루텐프리 인증(KGFC) 기업도 100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외 글루텐프리 인증 등록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고, 해외 식품 박람회에 한국 글루텐프리 제품관을 운영하게 된다.

 

 

쌀가공산업 성장에 발목잡은 정부 도정미

쌀가공산업이 날로 성장하고 있는 이면에는 쌀가공 업체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다. 쌀가공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도정미의 품질이 그야말로‘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숱한 지적이 제기돼 왔지만 도정미의 품질 논란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쌀가공산업에 원료곡으로 흔히들 사용되는 것은‘공공비축미’로, 정부가 수매한지 2년쯤 지나면 가공용으로 저렴하게 판매된다. 쌀가공 업체들은 주로 이때 구입한 원료로 가공식품을 제조한다. 

공공비축미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해 판매되는데 이 도정공장이 말썽이다. 늘 해왔던 대로 일정량을 도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면서 시설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품질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1980년~1990년을 방불케 하는 낡은 시설에서 여전히 도정이 이뤄진 탓에 쌀가공 업체들은 ‘이대로는 안된다’ 는 호소와 함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양곡 가공용쌀은 대한곡물협회 회원사들이 운영하는 도정공장에서 생산하면 쌀가공업체에서 구매하는 방식이다. 국내 전체 쌀가공제조업체 수는 즉석판매제조업체(떡방앗간)를 포함해  1만4,000여 개소로, 이중 쌀가공업체는 3,900개소에 달한다. 이중 정부양곡을 사용하는 쌀가공업체는 1,050개소이며 즉석판매제조업체는 5,000여 개소다.

이들 업체가 가공하는 쌀은 연간 36만톤에 달하지만 매년 사용량이 늘고 있다. 정부는 올해 40만톤, 2025년 50만톤, 2026년 57만톤, 2027년 63만톤, 2028년 70만톤의 정부양곡 쌀을 가공용으로 소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제도개선 통해 정부 도정미 민간RPC로 확대 

공공비축미의 도정쌀의 품질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제도가 엄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의 경우 1년에 한번 엄격한 경영평가를 받고 있지만 도정공장은 3~5년 주기로 한 번씩 형식적인 점검을 받는데다 큰 문제가 없는 한 계약이 유지된다. 

도정공장에서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종신계약이 성립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이 때문에 땅 짚고 헤어치고 있는 도정공장에서 품질 개선을 위한 시설투자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민간 RPC의 경우 시장 선점을 위해 30~40억원이 넘을 정도로 무리한 시설 투자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적자에 허덕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민간 RPC는 최고의 품질은 기본에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도정공장의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지만 제도가 개선되지 못한 탓에 하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도정 선택권’ 요구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도정공장의 변화를 기대하기 보다는 민간 RPC로 영역을 확장해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쌀가공 업체들이 요구하는 가공용 쌀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비축미 도정을 민간 RPC로 영역을 확장해 쌀가공 업체들이 품질 순위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 공공비축미 품질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한 국회의원은 “매년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공공비축미 관리가 오랫동안 수의계약 형태의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저장창고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품질이 떨어진 쌀이 공급되는 문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면서“정부양곡 관리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당시 정부는 정부양곡 품질과 관리 시스템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4년이 지난 현재 개선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쌀가공 업체들의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쌀가공업체 관계자는 “새로운 쌀가공 제품을 개발했다 치더라도 포장디자인, 마케팅 등 추가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항목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언제까지 원료곡 품질을 논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면서 “최고 품질의 도정미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민간 분야를 감안한다면 정부미 도정미 품질 개선은 시대적 흐름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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